[셀위 댄스] 걷히지 않는 탈선의 그림자

사설 댄스 교습소, 불법·탈법의 그림자 여전

서울 중구 신당동 중앙시장 인근의 A무도장. 빽빽이 들어선 노점상들로 어수선한 시장 길 한켠의 허름한 건물에 `00무도'라는, 찾기도 힘든 작은 간판 하나가 달랑 걸려있는 곳을 겨우 찾아들어갔다.

안에 들어서자 직원으로 보이는 40대 후반의 남자가 다가와 “혼자 오셨습니까. 여성 파트너 한분 불러드릴까요”라며 기자를 맞았다. “우선 분위기 좀 봅시다”라며 정중히 사절을 한 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홀안으로 들어갔다.

60평 남짓한 내부는 춤추는 사람의 얼굴을 거의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벽은 유리로 둘러져 있었고 강한 트로트 음악이 때리고 있었다. 이런 음습한 공간에서 중년남녀가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손님들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60대까지 다양했으며 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음습한 공간, 뒤엉킨 중년남녀

한참 분위기를 보고 있는데 돌연 뒤쪽에서 한 중년 여인이 다가오더니 대뜸 “한곡 추시지 않겠어요”하는 프로포즈해왔다.

“그냥 구경만 하러왔다”며 한발 물러서자 그 여성은 “춤을 못 추셔도 아무 상관없어요. 그냥 나만 따라하면 돼요”라고 되받아쳤다. 계속 고사하자 이 여성은 포기하고 다른 남성 손님과 함께 플로어로 들어갔다.

오후 6시가 무렵이 되자 손님이 하나둘씩 퇴장하기 시작했다.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6시 이후에는 개인교습을 받는 손님이 찾아오는데다 아줌마들이 남편의 귀가시간이 다가와 집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춤 교습을 받는 사람은 대략 10여명. 주로 사교춤과 볼룸 댄스를 배운다고 했다. 교습생들이 들어오자 짧은 투피스 차림에 뾰족 구두를 신은 40대 여성 강사(이곳에서는 `선생'이라고 호칭함)가 손을 잡아주며 춤을 가르쳤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자연스런 여강사의 리드에 남자 손님은 다소 어색한 동작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곳은 최근 유행하는 댄스 스포츠와 사교춤을 가르치는 사설 무도학원이다. 무도학원이란 1970년대부터 일부 중년남녀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소위 `춤바람'을 이끌었던 사설 춤교습소가 명칭만을 바꿔단 것.

예전의 춤교습소는 대부분 불법으로 운영돼 탈법의 온상으로 지목돼왔었다. 교습소를 위락 시설로 간주해 `풍속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리ㆍ감독하다 보니 대다수가 불법적으로 운영돼왔다.

자연히 음지에서 몰래 사설 교습이 이뤄졌고 자연히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댄스 스포츠가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고 춤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도 많이 달라지면서 정부에서도 양성화로 정책 방향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부터 정부는 그동안 위락시설로 돼 있던 무도학원을 체육시설로 간주, 관리ㆍ감독권을 경찰서에서 구청 문화공보과로 넘겼다. 또 허가제였던 설립 요건도 `체육시설 설치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 22조'를 적용해 신고제로 전환했다.


정부양성화정책 불구, 주부 탈선 조장

하지만 이런 양성화 정책에 불구하고 댄스 교습소들은 예전의 구태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현행 체육시설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무도학원은 강습 이외에 영업장으로는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상당수 무도학원은 교습 외에도 하루 춤만 추는 것으로 입장료 1,000원 또는 한달에 2만~3만원 정도의 회비를 받으며 사실상 무도장 영업을 하고 있다. 더구나 허가를 받지 않은 몇몇 사설 교습소들은 아예 춤만 추는 영업장으로 변신, 대낮부터 주부의 탈선을 조장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상왕십리동에서 성도 무도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정안(62) 원장은 “지난해 7월부터 무도학원이 관할 구청으로부터 허가를 얻어 운영을 해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무허가 사설교습소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 무도학원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무허가 업소들은 정부가 규정한 조명 밝기나 회원제 강습 등 규칙을 어긴 채 불법 영업을 일삼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손님이 이런 음침한 곳을 더 좋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영업하는 업소만 손해를 보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20년간 교습소를 운영해왔다는 또다른 업주도 “예전에는 경찰서 유치장을 내 집처럼 들락거렸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허가를 받고 영업을 하게 돼 한결 마음은 편해졌다”며 “그런데 아직도 미허가 교습소에서 손님의 음란행위를 조장하는 시설을 설치해놓고 버젓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는데도 행정당국은 일손을 놓고 있다. 국내에서 춤이 아직도 불건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불법업소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허가 남립, “정식허가업소만 손해” 불만

이처럼 불법교습소가 판을 치는 데는 법적인 불합리성도 한 원인도 되고 있다. 무도학원에 대한 적용 법률이 체육시설 설치에 관한 법으로 이관됐는데도 아직 무도학원에 대한 건축법상 용도는 체육시설이 아닌 위락시설로 남아있다.

따라서 주차장 면적 확보 등 설립시에 각종 규제를 받는다. 이런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무도학원은 `어차피 불법인 바에야 단기간에 돈이라도 벌자'는 요량으로 불법과 탈법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구청의 담당 관계자는 “최근 들어 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무도학원에 대한 정부의 양성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설립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사설교습소를 허가업체로 끌어들여 관청의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건축법상 용도는 예전처럼 위락시설로 남아있어 상당수가 입지조건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설교습소 외에 노인교실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본래 노인교실은 정부가 갈 곳 없는 노인에게 건전한 여가생활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취지에선 만들어진 문화공간의 하나였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노인교실은 제 기능을 상실한 채 춤을 추기 위한 사설 춤 교습소처럼 운영되고 있다. 본래 입장비를 받아서는 안되는데도 춤을 추고 남녀 짝짓기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월 5,000원에서 1만원까지 회비를 받는 불법영업을 하고 있다.

더구나 노인교실은 국민복지 증진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해당 시·군이나 구청으로부터 월 10만~20만원의 보조금까지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진정한 레저스포츠로 자리잡아야

사교춤(Social Dance)은 이제 올림픽 시범종목 진입을 바라볼 만큼 세계적 레저 스포츠로 자리잡고 있다.

정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춤을 양지로 끌어내려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 그늘에서 음성적으로 커왔던 우리의 사교춤 문화를 바뀌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불륜과 타락의 온상으로 여겨져 온 부정적 인식이 너무도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춤은 원초적 쾌락의 하나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춤 자체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쾌락을 얻기 위한 도구로 춤을 이용해왔다. 이제 춤, 그 자체를 즐겨야 할 때가 됐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11/07 15:3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