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경기 급랭, '3亂' 엄습

우리 나라 정부 '곳간'에 달러가 완전 고갈돼 미증유의 환란 고통을 겪었던 1998년 초 샐러리맨들 사이에선 '3감(減)'이 유행했다.

정든 직장을 뒤로 한 채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던 기업들의 가혹한 감원 및 감봉은 월급쟁이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줬다. 기업들도 일감이 없자 생산량을 줄이는 감산으로 '경기빙하기'에 살아남기에 허덕였다.

그 뒤 98년, 99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2년간 1,000억 달러대의 외환보유고 달성, 증시 1,000포인트, 반도체 경기의 반짝 호황 등에 힘입어 우리 경제는 마치 IMF 터널을 빠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정부도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국민과의 대화에서 우리경제가 IMF체제를 졸업했다고 선언했다. '아랫목 훈기'가 조만간 '윗목'까지 확산될 것이라며 환란의 고통에 시달렸던 국민을 달랬다.


부도대란, 퇴출대란, 실업대란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우리 경제는 싸늘히 식어버렸다.다시금 제2의 환란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한파는 이미 경제 전반에서 확인되고 있다. 자취를 감추었던 '3감'이 다시 망령처럼 샐러리맨들을 엄습하고 있다.

님(호황)은 '날카로운 키스(반짝 경기)'만 남긴 채 다시 저 멀리로 떠나 버린 것이다.

동아건설을 비롯한 부실기업들의 퇴출 파동, 부실 공룡인 대우차의 법정관리, 지긋지긋한 현대건설 처리 혼선 등이 또 한번의 '3감'시대를 가져오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온산을 진홍빛으로 물들였던 단풍도 끝물에 접어들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 초입에 샐러리맨들은 또 한번 '퇴출'공포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우리 경제는 요즘 호재는 없고, 악재로만 둘러싸인 양상이다. 경기 급냉에 따른 부도대란, 동아건설, 대우차 등 퇴출대란, 실업 대란 등 '3란(亂)'이 우리 경제를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샐러리맨들이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것은 대규모 실업사태. 재정경제부는 11월 3일 단행된 부실기업 퇴출, 대우차 법정관리, 은행 등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으로 새로 6만여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으로 추정했다.

내년 3월에는 실업자수가 현재의 60여만명에서 최대 120만명으로 두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환란 당시 일자리를 잃고 서울역 바닥 등에서 거적 깔고 지내던 노숙자 행렬이 다시금 재현되고 있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현상이다.

주식시장도 이번 주에 기대할 게 별로 없다. 증시의 최대 악재는 무엇보다 미국발(發) 대선 악재.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백악관을 향해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서 나스닥이 연중 최저치 수준으로 떨어졌다. 나스닥 약세는 국내증시에도 치명타를 가하고 있다.

거래소 주가는 주초부터 급락세로 출발, 500선 지지여부가 의문시되고 있다. 코스닥도 80선이 위협받을 정도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증시는 미국 차기대통령의 당선자를 판가름할 플로리다주 최종 개표결과가 발표되는 17일까지는 약세권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목표 한곳에 집중해야

시장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현대건설과 대우차 처리문제도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대한 현금확보에 치중하는 보수적 투자가 최선이며, 실적 우량주 및 은행주, 경기방어주에 대한 단기매매를 고려해 볼만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13일부터 시작된 여야의 공적자금 국정조사도 민감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여야가 공적자금 조성에 합의할 경우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적자금 사용 및 집행을 둘러싼 여야간 공방전으로 국회동의가 지연될 경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정책목표를 한곳에 집중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시장안정, 성장 등 세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는 모두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유능한 포수는 하나의 길목을 지키고, 초보 사냥꾼은 온 산을 뒤지는 법이다. 지금은 정부가 한마리 토끼라도 제대로 잡아 시장의 불안심리를 불식시켜야 할 때이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0/11/14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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