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국악] 국악, 대중 속으로…

대중국악을 실천하는 젊은 국악인들

1993년 서태지가 '하여가'에 김덕수의 태평소 가락을 삽입했을 때 많은 사람은 감탄했다. 그것은 국악을 이용한 서태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고리타분하게만 여겨졌던 국악이 랩이라는 최첨단의 대중 음악과 놀랍게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악과 대중음악의 결합, 보다 본질적으로는 국악과 비국악의 결합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른바 대중국악, 혹은 생활국악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흐름이 젊은 국악인 사이에서 일고 있었던 것.

대중국악의 시초는 1985년 '슬기둥'에서 시작된다. 그해 창립된 KBS 국립관현악단의 단원 중 일부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국악, 재미있는 국악'이라는 모토로 실내악단을 결성한 것.

창단 멤버인 이준호씨는 "대중이 막연하게 어렵다고만 생각하는 국악에 쉽게 접근하도록 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국악기와 기타, 신디사이저 등의 양악기를 결합한 크로스오버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이들은 팀 내에서 곡을 만들었고 '꽃분네야', '산도깨비' 등의 노래는 국악가요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


새로운 장르 국악가요 탄생

이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당시 국악계에서는 말이 많았다. "국악의 전통을 파괴한다", "양악을 등에 업고 인기를 얻으려는 계산"이라는 등의 비판이었다.

심지어 "슬기둥 멤버들은 국악인이 아닌 딴따라"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당시만 해도 누구의 제자냐가 가장 중요했던 국악계에서는 수백년간 내려온 전통을 거부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음악을 하는 이들이 이단자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슬기둥의 결성에서부터 시작된 대중국악은 이제 무시못할 음악의 한 종류로 확실하게 뿌리를 내렸다. 슬기둥은 1993년과 1996년 멤버 교체를 거쳐 현재 3기 멤버가 활동중이고 그동안 국악 캐럴을 비롯,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선보였다.

이들이 이제까지 발표한 음반은 모두 8장. 1년에 1,000여장씩 꾸준히 나간다. 한달 사이에 몇만장의 대박이 나오는 가요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국악 음반으로는 꽤 성적이 좋은 편이다.

또 지난해 11월 역삼동 LG 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슬기둥의 15주년 기념공연은 지방에서 올라온 관객까지 가세, 1,000석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확실한 고정팬이 있다는 얘기다.

슬기둥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국악 전공자 중에서 대중국악을 지향하는 사람이 속속 그룹을 결성했다.

공명, 푸리, 사계, 상상 등이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팀이다. 이중 푸리는 1996년 슬기둥의 2기 멤버였던 원일이 만들었고, 공명 역시 슬기둥의 3기 멤버가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슬기둥이 서정적인 음악을 한다면 후배인 푸리와 공명은 타악기 위주의 동적인 국악을 들려준다.

특히 공명은 대나무를 잘라 새로운 악기를 만들기도 하고 쌀을 켜는 키나 플라스틱 물병 등 일상소품을 이용,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계는 서울음대 출신의 여성 4인이 모인 가야금 앙상블. 12현의 전통 가야금 외에 17, 21, 22, 25현의 개량 가야금을 연주한다. 이들의 연령은 20대 후반에서 40대까지다.


전통의 재창조와 재해석

이들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전통의 재창조와 재해석을 이야기한다. 전통을 파괴한다는 일부의 비판과는 달리 전통국악에 뿌리를 두고 새로운 요소를 받아들인다는 것.

이준호 대표는 "전통이라는 뿌리가 튼튼해야 새로운 요소도 더 잘 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새로운 요소가 반드시 양악일 필요는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 양악은 단지 전통 국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만드는 사람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고 듣는 사람에게도 가장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뿐이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매니저를 거쳐 7년째 국악공연만을 기획하고 있는 T&C 매니지먼트 전무영 대표는 "요즘 사람이 우리 음악보다 서양음악에 익숙해있는 현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죠.

라디오를 듣다 국악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에게 무조건 우리 음악이라며 전통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통을 다시 보고 새롭게 하자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양악과의 결합 외에도 다소 정적인 국악을 리듬을 강조해 요즘 감각에 맞는 강렬함과 빠르기를 살린다든지,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기 힘든 국악의 노랫말을 요즘 정서에 맞게 짓는다든지 하는 것도 대중국악이 즐겨 사용하는 새로운 요소다.

확실히 이들이 연주하는 대중국악은 그 형식에 관계없이 귀에 쏙 들어오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어깨를 들썩이게 할만큼 신난다.


국악의 세계화

대중국악의 궁극적인 지향은 국악의 세계화다. 단지 현대의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에 기반한 새로운 월드 뮤직을 만들려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통인 켈틱 문화에 근거한 시크릿 가든의 음악이나 리버 댄스는 이들에게 좋은 사례가 된다.

전무영 대표는 "독특한 자기 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대 감각에 맞는 각국 음악이 나라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며 "대중국악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중국악의 앞날이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국악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는 대중의 귀를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처럼 국악기와 양악기가 함께 쓰이기만 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다. 어설픈 크로스오버는 더이상 대중의 관심을 끌지못한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요구에 부응할 창작 인력의 부족.

무엇보다 연주실력을 가진 사람은 많은데 작곡과 연주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는 절대적으로 모자란다. 이제까지 많은 대중국악팀이 공연에서 자기 곡보다는 남의 곡, 혹은 국악화한 다른 장르의 곡을 더 많이 선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15년 경력의 슬기둥이라고 해봐야 순수 창작 레퍼토리는 30~40여개에 불과하다. 1집을 낸 푸리나 이제 음반을 준비중인 공명 같은 팀은 말할 것도 없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국악곡은 몇개 되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

이러한 내적인 문제 외에 대중국악을 둘러싼 환경도 열악하다. 짧은 기간에 대박을 기대하는 음반사들은 수년에 걸쳐 꾸준하게 팔려나가는 대중국악 음반을 자금회수율이 늦다는 이유로 기피한다.

또 양악이나 가요, 심지어 전통국악과 비교해서도 창작인력 부족을 덜어줄 마땅한 신인등용문이 없다. 지난해 KBS가 대학국악제를 열어 이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스폰서의 난색 표명으로 1회로 중단되고 말았다.

방송국 주최의 행사가 이 정도니 대중국악을 하는 사람이 마음놓고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많은 경우 대중국악 밴드의 멤버들은 대학 국악과에 교수로 재직하거나 국립국악원 등의 국악단체의 일원을 겸하고 있다. 각종 공연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의 재해석과 탈장르라는 대중 국악의 지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중국악만으로는 생활고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 모든 장애는 창작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좋은 대중국악곡이 나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청중을 끌어들일 수 있고 해외무대로 진출할 수도 있다. 음반과 방송은 그 다음 문제다.

또 보다 많은 창작이 이루어져야만 어렵게 이루어온 대중국악이 한때의 변종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국악이라는 본래의 지향을 지켜낼 수 있다. 전통과 새로운 것의 공존은 국악 전체를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 국악과 대중과의 사이를 좁히는데 많은 공을 세운 대중국악은 이제 형식보다는 내용을 통한 전통의 재해석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새로운 단계를 맞고 있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27 20:54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