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보파탄] 거덜 난 의보재정 동네병원은 수입 늘어

공단 부담금, 분업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

의료 질의 향상, 연간 2조원의 비용절감 등의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에 둘러싸여 있던 의약분업이 채 시행 1년이 안돼 연간 4조원의 적자가 나는 '밑빠진 독'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를 비롯해 보건복지부 간부, 의약분업을 주장한 학자들이 간과한 의약분업의 허와 실은 무엇인가. 그 해답은 의약분업 후 달라진 일선 병원과 약국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경기도 부천에서 6년째 가정의학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차상만(41ㆍ가명) 원장은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병원을 접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의약분업이 되면 그렇지 않아도 줄어든 수입이 더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1999년부터 의약품에 대한 실거래가 제도(보험수가를 실제 거래되는 가격으로 낮춰 지급하는 제도)가 실시돼 마진이 줄어든 데다 조제 수입까지 약국에 넘겨주면 채산은 더욱 악화될 것 같아 두려웠다.

하지만 뜻밖에도 분업실시 후 차원장의 월 수입은 오히려 30% 정도 늘었다. 예전 같이 항생제나 스테로이드 같은 전문의약품을 약국에서 살 수 없게 되면서 내원 환자수가 20%나 순증했다.

게다가 의보수가가 의약분업 전에 비해 43%나 오르는 덕에 약 처방료와 주사제 처방료로 버는 수입이 예전 약 조제ㆍ판매 마진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잠잠해진 이유는 '수입증가'

"솔직히 의약분업 이전 병원이 약 조제까지 하던 시절 모 제약사의 정가 100원짜리 진통 소염제 500정을 사면 1,000정 정도를 덤으로 받는 게 관례였다. 심지어 카피 약을 팔던 한 영세제약사는 무려 10배에 달하는 이런 할증 혜택을 주기도 했다.

이것이 병원 수입의 큰 부분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의약분업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8개월여가 흐른 지금 당초 예상과 달리 수입은 더 좋아졌다. 의사들이 최근 잠잠한 것도 이런 연유다." 차 원장의 솔직한 말이다.

의약분업의 구체적 내역을 살펴 보면 의보재정 파탄의 이유는 더욱 명백해진다. 서울 소재 S내과의원의 경우 의약분업전인 1999년 겨울 20대 성인 남자가 감기로 주사제 투약과 이틀분 약을 지어갔을 때 총 진료비는 1만1,080원이었다.

이중 환자 부담액은 총진료비의 30%인 3,200원이고 나머지 70%인 7,880원은 의료보험공단측이 병원에 지불했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실시된 올해 1월에는 총 진료비가 의보수가 인상으로 65%가 늘어난 1만8,320원이 됐다.

이중 환자 부담금은 올해 1월부터 적용된 환자본인부담 정액적용 상한제로 의약분업 전인 3,200원 수준으로 동결된 데 반해, 공단 부담금은 무려 1만5,120원으로 분업 전에 비해 거의 두배가 늘었다. 이 증가분은 의보재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어 부실의 주요 원인이 됐다.

약국을 살펴 봐도 재정부실의 원인은 자명하게 드러난다. 예전 약국의 가장 큰 수입원은 감기나 소화불량 같은 일반 조제 수입이었다. 이런 환자의 절반은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고 하루 이틀치 분의 약을 본인 부담으로만 구입했다.

하지만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감기나 소화제 같은 전문 의약품은 반드시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예전 같은 임의조제가 불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약국을 찾는 환자들은 거의 대부분 처방전을 가지고 온 보험 적용자다. 당연히 공단이 약국에 지불해야 하는 조제료 액수가 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구에서 대형 약국을 경영하는 한 약사는 "의약분업 전에는 환자들이 간단한 약은 의료보험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자비로 샀는데 지금은 90% 이상이 처방전을 통한 의보적용자"라며 "그로 인해 의약분업 전에는 공단에 신청하는 보험료가 월 300만~400만원 수준이었는데 분업 후에는 무려 3,000만원으로 10배 가량 급증했다.

하지만 외형만 커졌지 수입 대부분이 조제료 뿐이어서 오히려 줄었다"고 말했다.


고가 약 처방 등으로 부담금 갈수록 증가

재정부실의 원인 중 하나로 의사들의 고가 약 처방을 들 수 있다. 본래 '오ㆍ남용을 줄이는 대신 양질 의약품을 통해 의료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의약분업 실시가 노린 이점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이것은 역으로 의보재정을 멍들게 하는 한 요소가 됐다.

한 예로 성남에서 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제갈모(38ㆍ가명) 원장은 의약분업 전에는 자신의 병원에 오는 소화기 환자에게 한정에 50원 하는 A제약사 약을 처방해주었다.

소화제는 정당 최저 30원짜리에서 최고 150원까지 다양한데 공단에서 정당 100원 이상인 약을 처방하고 지급을 청구하면 '고가약 과잉 진료'라며 삭감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분업 이후 제갈 원장은 정당 150원하는 고가 약을 처방한다.

분업 이후에는 어차피 본인은 처방료만 받기 때문에 아무리 고가 약이라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더구나 고가 약은 약효도 뛰어나 굳이 자신의 환자에게 싼 약을 처방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항생제도 예전 같으면 정당 70원하는 Y제약사의 저가 약을 썼지만 지금은 700~800원하는 D제약사 정품 처방을 내린다. 그러다 보니 공단의 의료비 지출이 기하급수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적인 증가요인 외에도 일부 부도덕한 의사의 부당청구 행위도 재정부실을 부추겼다.

지난주 한 고교동창 모임 연락을 받은 김모(34)씨는 전화를 한 친구로부터 난데 없이 "지난달 치과를 개업한 한 동창의 병원에서 우선 모여 회식장소로 갈테니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오라"는 말을 들었다.

'개업식에 웬 의료보험증'이라는 의아한 생각을 했던 김씨는 현장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개업을 축하해 매출을 올려준다는 뜻에서 친구 전원이 치료를 받은 것처럼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씨와 다른 친구들은 그 병원에서 환자 기록 카드를 만든 뒤 하지도 않은 스케일링을 한 것처럼 꾸몄다.

물론 그날 저녁은 개업한 원장이 샀다. 예전 같으면 별 도움이 안되지만 최근 의보수가가 올라 위장치료를 받은 것처럼 해도 진찰료, 처방료 등 적지 않은 금액을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의사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부당청구로 인해 보험재정이 새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부당청구등 구조적 모순점 개선돼야

복지부는 이런 엉터리 청구와 심사 소홀로 빠져나간 금액이 전체 급여비의 10%가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올해 연간 지급액이 총 13조5,700억원으로 추산할 때 1조원 이상이 부당하게 새나간 셈이다. 그럼에도 부당청구를 가리는 진료비 삭감률은 0.7%에 불과하다. 미국 등 선진국의 10%대와 비교할 때 턱없이 미미한 수준이다.

의약분업은 고질적인 약값 리베이트를 차단하고 투명과세의 틀을 만들며 저가 의약품의 오ㆍ남용을 줄이는 등 의약계의 고질적인 폐단의 고리를 자르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익집단에 끌려다니다 정책 시행으로 야기되는 부작용에 치밀히 대처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의약분업의 본질까지 훼손한 정부 당국의 잘못은 아무리 변명해도 용서되기 힘들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8 20:0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