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탈세, 너 잘 걸렸다"

국세청 변칙상속·증여에 과세 칼, 대기업 '벌벌'

재벌의 편법 탈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국세청이 최근 신종 금융상품을 이용한 기업들의 편법 축재와 부의 세습에 대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원리를 적용, 과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게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 사채(BW)에 대한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이런 점에서 적극적인 조세정의의 실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적잖은 기업들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대주주나 특수 관계인 등에게 제3자 배정(사모) 방식으로 BW나 전환사채(CB)를 헐값에 발행, 막대한 부나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국세청은 또 이재용씨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키로 결정한 데 이어 재벌 2ㆍ3세의 주식이동을 통한 변칙 상속ㆍ증여 혐의에 대한 내사작업에도 착수했다.


9월까지 협의내용 철저조사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지난달 법인세 신고때 첨부된 주주의 주식변동 사항 명세서를 바탕으로 전산 분석에 착수했다"며 "서울지방국세청 등 지방청별로 변칙 상속ㆍ증여 혐의가 짙은 조사 대상자들을 9월까지 선정, 혐의내용에 대한 철저한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증여로 간주되는 다양한 행위에 대해 포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포괄적 증여의제 과세제도가 도입되는 등 상속ㆍ증여세법이 개정됐다"며 "이 법에 규정된 증여행위와 유사한 경우에도 과세 대상으로 선정, 친ㆍ인척 등 특수 관계인간 변칙 재산세습을 철저히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전까지는 ▦상속ㆍ증여세법에 규정된 합병시 감자에 따른 증여 ▦특정 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이전 ▦증자에 따른 증여 ▦CB 거래를 통한 증여 등 증여세 과세대상 13개 사례를 구체적으로 규정, 이 범위 내에서만 과세가 가능했었다.

물론 96년 개정된 세법에도 '유형ㆍ무형의 재산이나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이나 권리'가 증여세 과세대상으로 삼고 있었으나, 조세법률주의와 상충하는 측면이 일부 있었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법 조문에 명시돼 있지 않더라도 법의 취지와 목적을 중시해, 유사 행위이면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법무부도 최근 마련한 상법개정안(국회 계류중)에서 신기술 도입이나 재무구조 개선 같은 회사 경영상 목적 외에는 신주(CB, BW 포함)를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배정할 수 없도록 했다.

사법부도 신종 금융상품을 이용한 축재에 제동을 걸고 있는 추세다.

부산지법은 지난 2월 장외에서 주식이 주당 2만5,000원에 거래되는데도 주당 3,000원이라는 헐값에 전환사채(6억원)를 발행한 뒤 이를 인수해 44억원의 차익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벤처기업 M사 대표 정모씨에게 배임죄 등을 적용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바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가 이렇게 강하게 나가는 것은 신종 금융상품을 이용한 기업의 편법 축재가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공모 방식으로 발행된 CB와 BW는 6,737억원이었는데, 이는 전체 CB, BW 발행 물량의 약 5%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사모 방식에 의한 CB나 BW 물량은 공식적으로 통계가 잡히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하지만 지난해 사모 CB와 BW 발행액이 13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종금융상품 이용한 축재에 제동

그런데 CB나 BW는 사모 방식만 택하면 아무런 법적 권리도 없는 오너 2세나 특수관계인이 상장 등을 통해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거나 경영권을 쉽게 장악할 수 있다. CB나 BW는 이사회 결의로 통상 장외거래가나 상법상 산정가격보다 저가에 발행돼 왔기 때문이다.

삼성SDS(BW), 삼성전자, 삼성에버랜드(이상 CB) 등 삼성 계열사들이 재용씨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활용했던 것이 바로 이 방식이다.

SK 최태원 회장의 SK그룹 경영권 장악 과정에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SK의 상속과정이 최근 삼성가의 경영권 승계와 비슷한 점이 있다. 최 회장은 현재 비상장 회사인 SKC&C를 통해 SK㈜와 SK텔레콤, SK해운, SK글로벌 등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다.

SKC&C는 SK의 전산시스템을 관리해주는 시스템통합(SI) 업체로 최 회장을 포함한 오너 가족이 59.5%(최 회장 지분 4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재용씨가 비상장사인 삼성에버랜드의 경영권 확보를 통해 삼성생명과 주요 계열사의 지배주주가 된 것과 유사하게 최 회장도 주로 CB와 비상장 주식의 거래를 통해 SK를 장악한 것이다.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C&C는 총 10.8%의 지분을 가진 SK㈜의 최대주주다. SKC&C는 SK㈜의 CB를 주당 1만2,664원에 주식으로 전환해 8.7%의 주식을 확보했다. 이 CB는 1998년 SKC&C가 1,400억원을 들여 매입한 것.

SKC&C는 지난 1월말 410억원으로 2.1%의 SK㈜지분을 추가로 매입, 총 10.8%의 지분을 확보했고 SK㈜의 최대주주가 됐다. 결국 SKC&C는 3년 동안 1,800억원을 투자, SK의 주축인 SK㈜와 SK텔레콤을 완전히 장악한 것이다.

이에 대해 SK측은 "98년도에 이미 법적으로 끝난 문제이고, 삼성 이재용 상무보와는 경우가 다르다"고 밝혔다.

코스닥 등록 기업들도 최근까지 CB나 BW의 발행규정 미비를 악용,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으로 BW를 발행해 대주주 배만 불리는 저가발행을 일삼아 왔다. '정현준 게이트'때 문제가 됐던 코스닥 등록기업 유일반도체의 BW 헐값 발행이 대표적인 예다.


재계선 "기업경영에 도움안돼" 반발

재계는 이재용씨 등에 대한 국세청의 증여세 부과를 계기로 일단 CB나 BW를 이용한 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들의 주식거래가 수그러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재계는 국세청이 조세 법률주의와 상충되는 포괄적 과세 방침을 강행하는 것은 경제발전이나 기업경영에 도움이 안된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법률보다 앞선 새 금융기법으로 재테크 등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전에 모든 것이 위법일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국세청의 이재용씨에 대한 증여세 부과 결정에 대해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한다"며 "재벌의 변칙증여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또 "이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으로, 앞으로도 이재용씨의 편법 상속ㆍ증여 의혹에 대해 계속 추궁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당장 국세청의 세금부과를 토대로 이재용씨 등에게 BW를 저가에 발행, 회사와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삼성SDS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다시 고발할 방침이다.

『 용어해설 』



신주인수권부 사채(Bond with WarrantㆍBW)

는 채권 만기가 돌아오기 전에 발행회사가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인수자에게 신주의 일부를 배정하는 조건부 사채를 말한다. 전환사채(Convertible BondㆍCB)는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채권을 가리킨다.


윤순환 경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25 15:31


윤순환 경제부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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