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신드롬, 복고풍 득세 등 멋의 개념에 변화

부산발(發) 히트 영화 '친구'가 새로운 풍속도를 낳고 있다.깡패를 흠모하는 듯한 분위기가 확산하고, 80년대 교복세대의 촌스러움이 멋이 되는 등 복고풍이 득세하고 있다.심지어 우리말 표기법도 흔들고 있을 정도로 '친구'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친구'는 먼저 '깡패 만세' 시대를 불러왔다.사회 전반에 잠재해 있던 의리 중심의 깡패 선망 심리를 '친구'가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60년대 영화 '맨발의 청춘'이나 90년대 TV드라마 '모래시계' 등 당대의 깡패극 히트 직후에 그랬듯이, '멋'의 개념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전통의 잣대로 잴 때 불량기가 철철 흘러야 젊은층 사이에서 '멋지다'는 반응이 나올 지경이다.


코미디프로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먹들'

암호 같은 그룹명을 내건 숱한 젊은 가수들의 복장은 이미 상식을 벗어난지 오래다. 사이버 룩, 그런지 패션, 밀리터리 룩, 키치 패션 등으로 미화되고 있으나 '쉰세대'의 눈에는 영락없는 깡패 ·거지꼴이다.

패션 전문지 등 젊은층을 겨냥한 잡지들은 표지와 수록 광고부터 범상치 않다.예쁘기보다는 개성이 강한 모델을 앞세워 한껏 인상을 쓰도록 연출한 사진을 싣고 있다.

입을 반쯤 벌리고 교태를 부리며 웃는 미녀 대신 화난 듯 도발적이고 호전적인 눈길과 안색으로 퇴폐미를 강조한 것들이 수두룩하다.좀더 불량스럽게, 좀더 불량기 넘치게..

TV 코미디물에도 주먹들이 단골로 등장한다.사설 경호업체 보디 가드들도 '어깨풍' 분위기로 돌출하면서 한몫 본다.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로 정형화한 건장한 청년들과 아마조네스 같은 여성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 경호를 펴는 외국 보디 가드들과 차별되는 우리 나라만의 신변경호 풍경이다.

'암흑세계에 핀 꽃'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낸 강릉의 여성폭력조직 '7공주파' 두목 김남숙씨(47)도 유명인사로 떠올랐다.로트바일러, 말리노이스, 도베르만핀셔 등 크고 무시무시한 맹견을 선호하는 개 사육 토양도 사회를 감싸고 있는 깡패 선망 붐에 편승해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깡패 개'를 무서워하는 주변인들을 살피며 내심 쾌감을 맛보는 개 주인들이 적지 않다.

'우리 모두 깡패가 됩시다,짠~' 하는 식의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먼저 고실업시대의 막연한 위기의식과 흉흉한 세상 속 생존 욕구에서 비롯된 개인별 무장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해석이 있다.

반면 상냥하고 깔끔한 남자가 호감을 얻는 여성화 시대에 흉내내되 실행 않으면서 대리만족을 찾는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친구' 등 영화는 또 한글 맞춤법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숟가락은 ㄷ받침인데, 젓가락은 왜 ㅅ받침이냐"고.

또 '친구'는 깡패를 가리키는 은어 중 하나인 '깍두기'의 표기법을 혼란으로 몰고 있다.한글학회는 "영화의 영향이 크다"며 새삼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도 "요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서 질문하는 문제"라며 친절히 가르쳐준다.

우선 숟가락과 젓가락은 모두 사이시옷과 관련이 있다.숟가락은 '술(匙)+ㅅ(사이시옷)+가락=?가락'이 됐다가 '?'의 ㄹ이 탈락한 '숫가락'의 발음을 '술'의 ㄹ이 ㄷ으로 바뀌어 된 발음이라 여겨 표기한 것이 '숟가락'이라는 해설이다.

같은 경우를 '이틀+날=이튿날' '며칠+날=며칟날'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젓가락은 '저(箸)+ㅅ(사이시옷)+가락=젓가락'으로 나온 것이다.


은어 만발, 헷갈리는 한글 맞춤법

영화 탓으로 '깍두기'를 '깍뚜기'라고 적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데, 물론 잘못이다.

깍두기는 '무를 모나게 썰어 만든 김치의 한가지'다.이 말은 '깍둑+이'로 분석할 수 있다.'깍둑깍둑 썰다'라는 말이 있고, 이렇게 만든 음식이름을 일컫기 위해 '깍둑'에 이름씨를 만들어 주는 '~이'를 붙여 만든 말이 '깍둑이'다.

그런데 소리가 이어 나 '깍두기'가 된 것이다.맞춤법 23항을 보면 '~하다' '~거리다'가 붙을 수 없는 말에 '이'따위가 붙어 이름씨가 된 말은 그 원형을 밝혀 적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개구리, 귀뚜라미, 동그라미, 매미, 뻐꾸기 등이 그러한 보기다.

이토록 명료한 근거가 있건만 자꾸 '깍뚜기', 심지어 '깎뚜기'라고 틀리게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사회 전반에 걸친 된소리 발음 문제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영원히 깍두기를 고집할 마음은 아니다.다만 "아직까지는 뿌리를 존중해 깍두기라고 적어야 되겠다"며 대세를 살피고 있다.'먹거리'라는 그릇된 용어가 '먹을거리'를 몰아내는 세태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또 대중문화 전반에 복고바람을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영화도, 음반도, 패션도 복고가 휩쓸고 있다.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신세대에게서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무차별적 복고 분위기가 아련한 추억을 넘어 지향해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영화계는 '친구'의 예기치 않은 흥행 돌풍을 복고 돌풍으로 해석한다.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배우들이 내뿜는 이미지는 학창시절의 빛바랜 사진을 연상시키는 향수 그 자체라는 것이다.사투리와 60년대를 연상시키는 거리 풍경도 또 다른 자극제다.


대중음악·패션계에도 복고 바람

이러한 복고풍은 대중음악계에도 강하게 불고 있다.

헌정음반, 편집음반, 그리고 리메이크 음반으로 이어지는 복고바람은 지난해부터 김현식 김광석 들국화로 이어지는 헌정음반으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최근에는 80~90년대 발라드를 모은 편집음반 '연가'가 1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곧 조성모 유승준 김현정 등 가수 13명이 참여한 리메이크 음반과 댄스그룹 '핑클'이 선배 여가수들의 노래를 재편곡해 부른 또 다른 리메이크 음반이 출반될 예정이다.

젊은층에서는 주름치마, 월남치마, 쫄바지가 유행이다.서울 삼성동 벤처타운에서도 근무복으로 복고풍 정장이 인기다.먹을거리와 놀거리에서도 복고는 키 워드다.

옛 초등학교 교실을 연상시키는 테마 카페로 찾아드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흔해졌다.과자도 라면발이나 소라과자를 연상시키는 60~70년대풍이 은근히 많이 팔린다.대학가에선 우유팩 차기가 다시 강세다.

수년 전 유행했다 사라진 파마머리도 여대생들간에 재차 호응을 얻고 있다.대학가 분식점에서는 만화영화 '마징가Z' 주제곡이 울려 퍼지고, 인터넷에선 복고 광고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간다.대중문화의 흐름을 좌우하는 문화 리더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인가 보다.

신동립 스포츠투데이 뉴스부 기자 estmon@sportstoday.co.kr

입력시간 2001/05/0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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