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망대] 아직 허리띠 풀 때 아니다

최근의 우리 경제를 '용수철 이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관가에서 유행하고 있다.

그동안 네모난 밀폐 공간 속에 부실기업 및 금융기관, 어두운 회색빛으로만 칠해졌던 거시 및 실물경기지표 등으로 밑바닥까지 짓눌려 있던 용수철이 최근 꿈틀대며 뚜껑이 열리기 직전에 있다는 것이다.

GM과의 대우차 매각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고, 현대건설 등 현대부실 '3인방'의 처리도 급류를 타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투자자에게 희망의 장세 '600선 돌파'

1/4분기 성장률의 상향조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기업경기실사지수(BSI)의 6개월 연속 상승세, 실업대란의 위기를 잠재운 4월 실업자수의 격감, 소비자 기대심리의 상승세도 터널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인이라는 분석이다.

증시도 모처럼 지난주 600선을 돌파하며, 투자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주초장세도 강세로 출발, '여름 기운'을 타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정부의 분석과 예측은 우리경제 현상 중 '보고싶은 것만'본데 따른 장밋빛 전망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설비투자가 깊은 겨울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어 앞날을 불안케 하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기조는 수출과 수입이 동반감소하는 '경제의 왜소화 현상'에 따른 바람직하지 못한 양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4월 실업자수 격감도 따져보면 질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실업자수가 3월 103만명에서 4월 84만여명대로 급감한 것은 대량해고에 따른 생계형 창업과 비정규직 서비스업 종사자 및 농사철에 따른 농업부문의 인력 수요의 일시적 증가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제조업 부문의 인력증가는 사실상 제자리걸음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랫목(고소득층)과 윗목(저소득층)간의 온도차(소비 양극화)는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경제의 알파요 오메가'인 미국 경제도 어둠과 빛이 뒤섞여 있어 섣부른 경기회복 시기를 점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5월15일 금리인하(0.5%포인트)를 단행한 이후 월가에 다소 생기가 돌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실적둔화, 노동생산성 하락, 무역적자 확대 등의 부정적인 단면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경제상황을 완전히 회복국면에 들어섰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이번 주는 국내외 경기의 향방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한은은 22일 1/4분기 성장률을 당초 예상치(3.5%)보다 상향조정, 앞으로의 투자심리 회복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눈을 밖으로 돌리면 25일 발표되는 미국의 1/4분기 성장률은 당초 잠정치(2%)보다 낮은 1. 6%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해 미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불안 심리가 형성될 것으로 보이지만, 각종 선행지표에 나타난 회복기대를 뒤엎을 정도는 아닐 것으로 시장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현대투신 등 현대금융계열사의 매각을 위한 정부와 AIG간 외자유치 협상은 우여곡절끝에 28일부터 본격화한다. 그러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건설 등 부실 계열사를 다 내놓게 된 상황에서 '최후의 보루' 현대증권만은 내놓을 수 없다며 버티고 있어 막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대우차 처리도 분수령을 맞고 있다. GM측이 23일 인수제안서를 채권단에 제출한 것을 계기로 복잡한 방정식이 필요한 매각방식 및 시기, 대금, 고용승계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기업규제 완화 '뜨거운 감자'

이번 주 최대 화두는 역시 기업규제 완화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주 정부ㆍ재계 간담회 합의에 따라 정부와 기업대표들이 참여하는 '태스크 포스'가 구성돼 출자총액 제한, 30대기업 집단 지정제 등 금융, 세제, 공정거래분야의 '뜨거운 감자'를 다루기 위한 방안이 주중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관료들은 이번 간담회를 계기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었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밥그릇은 고수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 피부에 와닿는 규제개혁카드는 나오기 힘들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20일 방한한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관계자들은 한국의 정부와 재계 인사들은 잇따라 만나고 돌아갔지만, '선물'을 주고 가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고대해온 국가신용등급의 상향조정은 당분간 없을 것이란 찬물을 끼얹고 돌아간 것이다.

무디스측은 부실기업의 처리속도가 더디고, 천문학적인 금융기관의 부실해소도 진전이 없는데다, 미ㆍ일경제의 불안이 여전히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점을 무디스측은 새삼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의춘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5/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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