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안정] 국민희생 강요하는 땜질식 처방

근본대책 없는 임시방편, 의료계·국민 모두 반발

결과는 우려대로였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국민건강보험 재정 안정 대책의 스토리는 '또 국민 호주머니 털기'로 결말을 맺었다.

"실추된 복지부의 위상을 탄탄한 재정안정 대책 마련으로 만회해보자"는 복지부측의 다짐은 수포로 돌아갔다. 복지부가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사실 복지부는 이번 건강보험 재정 안정 종합대책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 운용실태를 특별 감사한 감사원에 의해 현직 차관을 비롯한 실무 책임자 7명이 무더기 징계 요구를 받는 '수모'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듯, 김원길 복지부 장관은 재정안정 대책 발표 머리말에서 이렇게 운을 뗐다. "앞으로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다시 오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고, 우리와 우리 후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약분업이 조기 정착될 수 있도록 저와 직원 모두는 혼신의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재정 안정 대책이 의약분업 정착과 보험 재정위기를 동시에 해결하는 '특단의 해법'이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한 셈이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국민 주머니 털기'

김 장관의 말대로 이번 대책을 앞두고 복지부 직원들이 쏟은 '정성'은 어렵지 않게 감지됐다. 25쪽으로 되어있는 '건강보험 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이라는 자료 말미에 '종합대책추진 사업별 담당자' 명단이 게재됐다.

'보험정책과장 박하정= 보험료 수입증대 및 관리운영 효율화, 정부지원 확대, 보험급여과장 노연홍= 진찰료 처방료 통합 등 급여기준 개선, 보험약가 조정 등 약제비 절감',.

이를 두고 한 복지부 직원은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목적이 1차적으로 있고, 복지부 전 직원이 매달려 만들었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2개월여동안 밤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간적이 없다"는 복지부 한 고위간부의 말처럼, 정부는 물론 당도 간여해 만든 재정대책이 왜 '땜질 처방', '졸속 대책'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휘청거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의약분업과 건강보험 재정 위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당연히 궁금해진다.

보험재정 안정 대책이 낙제점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들의 정서를 전혀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책의 포인트를 수입증가와 지출억제에 두는 '총론'을 작성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의 추가 부담이라는 '각론'은 실패작이었다.

"의약분업 시행을 전후해 진료수가를 무려 5차례나 멋대로 올려 보험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정책 잘못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떠 넘기려는 발상"이라는 지적을 복지부는 염두에 뒀어야 했다.

국민들의 추가 부담은 이렇다. 당장 7월부터 동네의원 및 약국을 찾을 때 내야하는 환자본인부담금이 종전보다 40.6%나 늘어난다. 2,200원을 내던 동네의원 본인부담금은 800원 올라 3,000원, 1,000원을 지불했던 약국 본인부담금은 1,500원으로 각각 오른다.

문제는 내년부터 국민들, 특히 직장인들의 '보험료 저항'이 더욱 거세질게 뻔하다는 점이다.

내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매년 보험료가 8~9%씩 뛰는데다, 임금인상과 연동할 경우 직장인 보험료 부담은 지금보다 50%이상 커진다. 건강보험공단 직장의보 노조 관계자는 "6개월 후인 내년 1월에 보험료를 올리면서 '금년중 보험료 인상은 없다'고 말한 복지부의 설명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 추가 부담의 실상이 이런 반면 재정파탄 원인인 '수가인상'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의사와 약사들에 대한 '고통분담' 부분은 미비하기 짝이없다.

정부는 금년 중 각종 급여제도 개선으로 의사로부터 2,825억원, 보험약가 인하 등 약제비 절감으로 약사로부터 1,291억원의 급여비 지출을 억제할 방침이다. 쉽게 말하자면 총 4,000억원 이상에 달하는 의사와 약사의 수입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핵심 빠진 대책안, 실효성에 의문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방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1,040억원을 절약하겠다는 진찰료 및 처방료 통합의 경우 오히려 단기처방 남발로 급여지출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즉 통합 진찰료 시행에 따라 의사 수입이 줄게 뻔해 종전 3일치 처방 중심에서 1~2일치 처방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동네의원이 하루에 환자를 75명 볼 경우에 한해 청구한 진료비를 100% 지급하겠다는 '진찰료 조제료 차등수가제'도 졸속이다. 하루 환자수가 75명을 초과하면 보험급여비가 깎이는 판에 의사들이 '76번째 환자'부터 진료를 제대로 하겠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료서비스의 질 저하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더 이상 대책은 우리로서는 무리"라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는 "무조건 비판만 하지말고 당분간 지켜보아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수입감소가 뻔한 의료계와 약계가 가만있을리 없다. 시민단체들도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 절대 반대'를 외치며 구체적인 행동에 옮길 조짐을 보이고있다.

당장 일요일인 6월 3일 정부과천청사앞에서는 지난해 9월 서울보라매공원 전국의사집회 이후 10개월만에 처음 2만명이 넘는 의사들이 모여 정부를 집중 공격했다. "정책의 잘못을 수가인하로 메우려 하지 말고, 의료법 개정을 통한 의사 탄압을 즉각 중지하라"는게 의사들의 요구였다. 이날 집회에 참석했던 한 전공의(레지던트)의 말.

"분위기가 점점 좋지않은 쪽으로 가고있어요. 이러다가는 작년 의료계 파업이 재연될 수 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약분업 준비 미흡'이라는 잘못 꿴 단추 하나가 2000년 한해도 모자라 2001년 상반기를 또 발목 잡으려는 불길한 예감이 들고있다.

김진각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6/06 15:09


김진각 사회부 kimj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