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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김추자(下)

[추억의 LP여행] 김추자(下)

매머드급 소문·사건… 영원한 슈퍼스타

자격정지 3개월은 김추자에게 지독한 악몽이었다. 특히 이 시기에 불거져나온 악성 루머와 폭력 사건은 가혹한 시련이었다.

먼저 온 국민을 경악케 했던 '김추자 간첩설'. 방송 펑크를 낼 때마다 번번히 '이사를 갔다'는 따돌리기로 PD들을 골탕먹이던 김추자에겐 '간첩처럼 이사를 자주 다닌다'는 소문이 어느샌가 방송가에 돌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던 소문은 급기야 '간첩들이 사용하는 난수표 발견' '거짓말이야를 부를 때 손짓은 암호송신 때문' 등으로 눈덩이처럼 부풀려졌다.

당시 김추자 외에도 신 상품과자로 선풍적 인기를 끌던 '라면땅'의 북한 관련설로 온 나라는 벌집 쑤신 듯 어수선했다.

고향 춘천에 은둔하고 있던 김추자는 조카가 내뱉는 '이모, 간첩이야?'라는 한마디에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급거 상경해 자신의 무고함을 해명하며 사태의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자격정지이후 결별했던 매니저 소윤석이 앙심을 품고 저지른 '깨진 소주병 난자사건'이 또 터졌다. 얼굴과 손등에 100바늘이 넘는 성형수술을 여섯차례나 했을 정도로 대형사건이였다. 시민회관 컴백 리사이틀로 재기를 꿈꾸던 김추자는 연속적인 소문과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됐고, 절망했다.

그러나 그녀는 프랑켄쉬타인같이 온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은 모습을 한 채 무대에 섰다. "지난 허물은 아직 어린 탓입니다.

오늘은 쓰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오로지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 섰습니다" 라며 통곡했다. 진한 감동을 받을 관객들은 노래할 때보다 오히려 더 큰 박수로 격려와 함께 면죄부를 주었다.

그녀의 대표곡은 1970년에 발표한 신중현곡 <님은 먼곳에-유니버샬 KLH16, 1970년 6월26일>이다. 원래 패티김을 염두에 두고 만든 동양TV의 주말연속극 주제가였지만 그녀가 '그런 리듬의 곡은 부르지 않겠다'고 거부해 급한 김에 김추자가 대타로 부르게 됐다는 사연이 있다.

지금도 꾸준히 애창되는 '님은 먼곳에'는 김추자를 일약 최고인기가수로 급부상시킨 출세곡. 14년후인 1984년 패티김은 '님은 먼곳에'를 재취입함으로써 이때의 아쉬움을 끝내 드러내고 말았다.

신중현 그룹 '퀘션스'의 첫 녹음이기도한 이 음반엔 현재 인기 MC로 활동중인 임성훈의 데뷔곡 '명동거리'도 수록된 희귀음반이기도 하다.

음반은 가요음반사상 최초로 영국의 세계적 레이블인 '데카'와의 계약으로 제작된 외국 수출 1호 음반.

국내에서 취입한 마스터를 영국에서 리마스터링하고 자켓 디자인까지 제작해 외국서 발매된 원판과 동일한 규격의 녹음수준을 뽐내는 명반이다. 그 주인공 또한 김추자였다.

재기후 시도한 1972년 12월 시민회관 리사이틀. 선전간판을 걸기가 무섭게 화재가 발생해 무기 연기되는 리사이틀 공포증을 다시 겪는다.

그러나 73년은 자신의 이야기가 '마음은 짚시'라는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최절정기였다. 75년 12월 또다시 들이닥친 메머드급 시련. 가요정화운동으로 떠들썩했던 '대마초 가수 사건'으로 김추자는 신중현, 봄비의 박인수, 이장희, 어니언스의 임창재 등과 함께 구속되었다.

다행히 벌금 20만원에 약식기소되어 풀려나 강원도 산속에서 두문불출하던중 이번엔 연예협회로부터 무기한 제명처분이 내려졌다. 2년후 방송, 음반을 제외한 밤무대에 한해 해금이 되었다. 78년 5월 대한극장 재기 리사이틀은 총관객 3만명이 북적거린 대성황을 이뤘다.

김추자는 자신의 건재를 알리기 위해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춤을 춰 드레스가 흘러내려 가슴이 노출된 것도 몰랐을 정도.

그러나 새로움이 없는 공연이후 김추자의 인기는 하강곡선을 그리며 정상에서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81년 그녀는 동아대 정치학과 교수 박경수와 평범치 않은 결혼으로 다시한 번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았다. 첫딸 출산 후 86년 KBS 백분쇼에 출연하여 옛 영광을 회복하려 시도해 보지만 비만해진 그녀의 모습에 팬들은 나이 들어 만난 첫사랑에 실망하듯 허탈했다.

'음폭도 기교도 예전에 미치지 못하고.. TV에 출연하지 말고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나 들려주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당시 언론에 표출된 팬들의 솔직한 반응이다.

그후에도 여러 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가요사상 최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슈퍼스타 김추자는 이때의 서늘한 반응이 어색했던지 지금까지 10여년이상 가요계와 단절하고 있다.

어쩌면 그 단절의 시간은 개인 김추자에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녀도 50줄. 올초 또다시 컴백설이 나돌았다. 대중 곁으로 돌아온다면 80년대 후반에 보여주었던 외적인 화려함보다는 완숙하고도 깊이있는 음악적 성숙함이 무르익은 빛깔이면 어떨까.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입력시간 2001/06/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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