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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금품 자진 신고 양태] 신고 많으면 난감, 적으면 눈치

[공무원 금품 자진 신고 양태] 신고 많으면 난감, 적으면 눈치

서울시 '클린신고센터', 경찰청 '포돌이 양심방' 운영

올해 3, 4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 공무원들은 '얼굴 없는 100만원 봉투의 주인공이 누구냐'하는 문제로 한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 화제의 인물이 처음 나타난 때는 올해 3월 6일.

이날 종로구 혜화동 사무소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자가 주민등록등본 서류를 발급 받은 뒤 여직원에게 '수고한다'며 음료수 한 상자를 주고는 그냥 사라졌다.

그런데 직원이 안을 열어보니 음료수와 함께 100만원이 든 돈봉투가 들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뒤 한달 가량 지난 4월 2일 동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또 100만원 돈봉투가 들어 있는 음료수 한상자를 놓고 또 다시 황급히 사라졌다.

동사무소 직원이 곧바로 따라 나갔으나 이미 민원인은 사라진 뒤 였다. 종로구는 인근 식품점에서 민원인의 인상 착의 등을 확인했으나 정확한 신원 파악에는 실패했다.

이후 4월 9일부터 17일까지 종로소방서, 중부수도사업소, 지하철공사 혜화역, 종로구청 총무과 등 공공기관 4곳에 똑같이 100만원이 든 음료수와 빵을 놓고 가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신원 미상의 40대 민원인이 6차례에 걸쳐 주고간 600만원은 전액 서울시 클린신고센터에 신고돼 처리 됐다.

서울시 클린신고센터는 이 돈의 주인을 찾으려고 민원자의 인상 착의 등을 조사했으나 결국 주인공을 찾지 못해 일정기간 공고 기간을 둔 뒤 유실물로 처리, 시비로 귀속시켰다.


공직사회 청렴성·신뢰성 회복 취지

일선 공무원들이 공무를 수행하다 보면 종종 난처한 입장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민원인들이 처리 대가로 돈이나 물품을 놓고 갔을 때다.

이런 금품은 업무 청탁과 관련된 대가성에서, 단순히 감사의 성의 표시까지 다양하다. 국가의 녹을 받는 공무원들이 많건 적건 이런 민간인들의 사례비를 받아 챙긴다면 그것은 분명 뇌물 수뢰에 해당하는 범법 사안이다.

아직도 일부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이 제공하는 이런 대가성 뇌물을 '부수입'으로 간주하고 몰래 챙기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공무원 비리에 대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면서 상당수 공무원들이 이처럼 뜻하지 않은 금품 사례로 고민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받자니 뒷 탈이 걱정되고, 공개적으로 돌려 주자니 주변으로부터 괜한 오해도 받을 것 같아'고민하는 공직자가 적지 않다.

더구나 본인 부재 중에 민원인이 놓고 가거나, 민원인이 음료수 등에 돈을 끼어 놓고 갈 경우에는 곧바로 금품을 돌려 주기가 쉽지 않다. 바로 이런 난처한 경우를 생각해 서울시가 지난해 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클린신고센터'가 공무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클린신고센터는 지난해 2월 고건 서울시장이 '복마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이미지를 개선, 공직사회의 청렴성과 신뢰성을 회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금품 자신 신고 센터다.

시 산하 공무원들이 본의 아니게 받은 금품을 자진 신고하게 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깨끗한 공무원 상을 확립하겠다는 의도다.

신고한 공무원은 이 사항에 대한 면책은 물론이고, △각종 표창 심사 시 우선 반영 △금품수수 외의 사안으로 징계 사안이 발생할 경우 관용 및 감경 △제도 정착시까지 시장 격려 오찬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말까지 신고된 것은 현금 78건(1,596만원 및 미화 200달러)과 물품 24건(295만원 상당) 등 총 102건이다.

시행 첫 해인 지난해에는 10개월여간 총 60건, 729만원(미화 200달러 별도)에 그쳤던 것이 올해 들어서는 5개월말까지 42건에 신고 금액도 1,162만원으로 대폭 늘었다.

지난해 동기에 비해 건수로는 40%, 금액으로는 55% 가량이 늘어났다. 유형별로는 감사 표시가 49건으로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업무 관련 청탁(33건), 단순 제공(20건) 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단순 수치상으로 계산한다면 한번 신고 건수 당 신고 금액은 평균 18만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미풍양속성 사례도 많아

신고된 개별 사항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생활 보호대상자인 정신지체 장애 아들을 친절히 보살펴 준데 대해 감사한다며 참깨 봉지에 현금 20만원을 넣어준 장애인 모친, 우편 접수한 자동차 구조변경 신청을 잘 처리해줘서 고맙다고 오징어 한축(1만원 상당)을 보낸 민원인, 공공근로사업으로 추진중인 유치원시설 지원 사업에 공공인력 지원을 해줘서 고맙다며 케익 한상자와 샴페인(1만5,000원 상당)을 보낸 유치원 선생님 등 우리 국민들의 보은 전통에서 우러나온 성의 표시성 사례들이 많다.

물론 신고된 것 중에는 대가를 염두에 둔 뇌물성 사례가 많다. 소규모 노점상인이 노점상 단속 업무를 하는 건설관리과 직원에게 딸기 한 박스를 제공한 것을 비롯해 불법 영업 성인 오락실의 영업정지 처분을 봐 달라며 30만원을 담당 직원에게 보낸 것, 무단 벌채 통보를 받은 자가 해당 공무원에게 100만원을 건넌 경우, 건물 벽면의 TV 광고물을 가리는 가로수의 전지를 요구하며 3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간 건물주 등 다양하다.

이곳에 신고된 금품 내역을 살펴보면 청탁과 관련된 대가성 민원은 대개 20~30만원 수준, 단순한 감사의 표시는 음료수나 2만~10만원대가 많았다.

클린신고센터의 신고 민원 처리 담당자인 오미정(39)주사는 "신고하는 공무원 보다는 오히려 돈을 돌려 받은 민원인들이 더 어색하고 쑥스러워 한다"며 "일부 민원인들 중에는 '사례를 한 것이 밝혀져 혹시 리스트로 관리돼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말했다.

오 주사는 "클린신고센터에는 부재중이거나 민원인이 돌아간 후 알게 된 금품 같이 어쩔 수 없이 받은 금품만 신고를 받는 것이지, 본인의 의사로 받았다가 나중에 문제가 되거나 양심의 가책이 돼 반납한 것은 뇌물로 간주해 신고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클린신고센터가 호응을 얻으면서 경찰청에서도 지난해 4월부터 '포돌이 양심방'이라는 자진 신고 센터를 설립, 운영중이다.

포돌이 양심방은 운영 1년만에 현금 1,000여건에 총 1억5,000만원, 그리고 물품 100여건이 접수됐다. 무더운 날씨에 경찰차로 장까지 태워다 준 경찰관에게 '차비'라며 1인당 1,000원씩 2,000원을 놓고 내린 70대 포천 할머니 두 분, 그리고 결혼식 축의금이 부조의 한계를 넘었다면 반환한 경찰관 등 각가지 형태의 신고 유형이 있었다.


신고자·내용에 대해 색안경 낀 시선도

서울시와 경찰청의 금품 자진 신고 제도는 공무원의 청렴도를 대내외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 운영 기관들은 내심 동전의 양면 같은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고자와 신고 금액이 폭주할 경우 자칫 외부로부터 '역시 서울시와 경찰 조직은 듣던 대로 뇌물이 판치는 복마전이구나'하는 지탄이 쏟아질 것이고, 그렇다고 신고자와 신고액이 적으면 '실용성 없는 전시용 탁상 행정의 표본'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에서는 이곳에 신고된 것들이 주로 '여러 동료들에게 공개돼 사적으로 취하기 힘든 금품이나, 차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소재가 불투명한 금품들만 형식적으로 신고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받아도 될만한 금품은 혼자 착복하고, 뒷 탈이 생길 염려가 있거나 공개된 금품만 이곳으로 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시 정상문 민원조사담당관은 "사실 시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 100% 신고된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공무원과 민원인들에게 퍼짐으로써 장기적으로 부당한 금품 수수가 줄어드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철밥통 공무원의 자체 정화 노력이 과연 얼마나 효력을 거둘 지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1/06/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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