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가 샌다] 혈세유출의 주범은 '예산 낭비'

허술한 예산집행, 불합리한 과세정책 등 문제점 산적

세금은 정부와 지자체에겐 피와 마찬가지다.

인천지역에서 은행 직원들의 세금 횡령 사건이 잇따라 밝혀지면서 세금이 흘러가는 ‘혈관’이 터졌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세금이 걷혀지는 하부단계인 은행창구에서 발생한 횡령은 인체의 모세혈관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다.

지방세에서 유독 말썽이 많은 것은 징수 시스템이 국세에 비해 낙후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 세무전문 김영생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 국세 징수 시스템은 거의 완비된 상태다.

국세청과 한국은행, 수납은행이 3각 점검을 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국세 과세권이 국가에 있어 단일 전산프로그램으로 세무행정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세는 간접세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아 누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에 반해 지방세는 종류가 많은데다 각급 지자체가 영세규모로 운영하기 때문에 세무공무원의 전문성이 비교적 낮다. 나아가 복잡한 세무업무를 수행할 통일된 전산프로그램도 없는 실정이다.

지방세 부과ㆍ징수는 지방세법이라는 단일법령에 의거하고 있지만 전산프로그램은 248개 각급 지자체가 제각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먹구구식 자금집행이 낭비초래”

성균관대 행정학과 박재완 교수는 은행창구의 도세(盜稅)로 나타난 금융기관 내부의 횡령은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세금납부를 대행하게 하는 제도 자체는 당연하지만, 금융기관 직원이 도덕적 해이로 인해 일을 저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교수는 이 같은 문제는 은행과 세무당국간 환류(피드백) 시스템을 강화함으로써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이 같은 징수과정의 누수는 시스템의 문제라기 보다는 실행상의 문제로서 전체적으로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걷혀진 세금을 사용하는 예산집행 과정의 누수가 크다는것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윤건영 교수도 예산낭비를 혈세 유출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징세 과정의 누수가 모세혈관 파열이라면, 예산집행 과정의 누출은 동맥파열이라는 비유다.

세금과 관련한 돈의 흐름은 크게두 분야로 나뉠 수 있다. 징수 과정과, 예산집행 과정에서의 흐름이다. 징수 과정에는 세금부과와 수납이 포함된다. 은행원 세금횡령이 수납상의 누수라면 부과상의 문제는 이보다 더 크다.

세금부과와 관련된 대표적인 문제는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종합소득세, 즉 급여생활자와 고소득 자영업자간 납세 불균형이다.

윤건영 교수는 “고소득 자영업자에 제대로 과세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할 수 있는 것을 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실련의 이대영 조직국장도 “국세청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영 국장은 나아가 현재의 과세관행 이탈법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자들이 일정비율 탈세할 것을 전제하고 세금을 부과하되, 선별적으로 이를 단속함으로써 일부 세무공무원들이 잇속을 챙긴다는 이야기다. 종합소득세의 경우 누진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탈세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혈세가 빠져나가는 큰 구멍은 역시 예산집행 과정이다.

윤건영 교수는 “가지 않아야 할 곳에 자금이 흘러가고, 자금집행 과정이 주먹구구식 이어서 낭비와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은 주먹구구식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설계 단계부터 비용과 효과 분석이 엉망인데다 감사도 사후적이라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운영도 예산낭비 요소로 거론했다.

계획단계부터 문제였던 새만금 간척사업은 1년여간 공사가 중단되면서 하루에 2억~3억원의 손실을 앉아서 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재완 교수는 준조세 성격인 남북협력기금을 현대의 금강산관광사업에 투입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예산낭비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 낙찰제, BK 21 사업 등이 낭비행정의 표본

박 교수는 아울러 건교부가 최저 낙찰제에 역행하는 조치를 취한 것도 국고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부터 1,000억원 이상의 국가건설공사에 대해 최저 낙찰제를 실시한 목적은 예산절감과 함께 업체의 경쟁력 강화 노력을 진작하는데 있었다.

하지만 건교부는 덤핑수주를 막아 부실공사를 예방하고, 건설업계의 경영난을 덜어준다는 이유로 최저 낙찰가격을 예정가격의 60% 전후에서 73%로 상향조절해 버렸다.

최저 낙찰가격을 60%에서 73%로 13% 올린 부담은 고스란히 국고지출 증가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올해 예정된 1,000억원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 총액은 약 6조원. 결국 이중 13%인 7,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낭비되는 셈이다.

박 교수는 건교부의 조치가 건설업체의 로비전을 불렀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보다는 예정가격을 알아내기 위한 로비에 열중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한 두뇌한국(BK)21 사업도 낭비행정의 실례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간 매년 2,000억원씩 1조4,000억원이 들어가는 BK21 사업은 초장부터 선정ㆍ실행 과정의 불공정성을 드러냈다.

보다 생산성있는 핵심분야에 돈이 투자되지 않는 것은 낭비나 마찬가지다. 감사에서 드러난 BK21 사업의 문제는 관리ㆍ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교육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예산낭비는 정부 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6월13일 제주도 결산검사위원회가 발표한 지난해 세입ㆍ세출예산 검사결과는 구멍투성이나 다름 없었다.

부당전용과 부당한 경상보조금 지출, 각종 사업기금 부실운영 등으로 예산이 낭비됐다. 이 같은 지자체의 방만한 예산 운영은 지자체장의 인기 영합 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시립대 원윤희 교수는 바람직한 세무행정의 조건으로 세무행정의 성실성과 공정성 확보, 건실한 세무행정의 지속, 납세자의 신뢰성 확보 등 3가지를 들었다.

징세와 예산집행 과정의 공정성이 지속되지 않으면 납세자의 자발적인 협력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납세자의 비협력은 조세저항과 탈세를 부추길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6월27일 발표한 ‘2001국가별 부패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91개국 중 42위에 올랐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 아시아 네마리 용은 말할 것도 없고 동남아의 말레이시아 등에도 뒤졌다.정부의 징세와 돈 씀씀이 성적표도 이 순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세의 불합리성, 징세과정과 예산집행상의 혈세 유출ㆍ낭비가 성실한 납세자의 분노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04 19:59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