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키보이스 (下)

아직도 '해변으로 가는' 영원한 오빠들

핵분열은 1967년 차중락, 차도균으로부터 시작됐다. 잘생긴 외모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젊은 여성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차중락. 사촌형 차도균을 따라 ‘코끼리 브라더스’ 멤버였던 조영조의 ‘가이스 & 돌스’에서 리드보컬로 잠시 활동했지만 솔로로 독립하라는 유혹은 집요했다.

차도균 역시 솔로로 데뷔해‘철없는 아내’ 등 히트곡들을 통해 요절한 사촌동생인 차중락의 향수까지 달래 주었다. 이들의 빈자리는 장영, 박명수로 메워졌다.

핵분열의 중심은 김홍탁과 윤항기였다. 당시 지미 핸드릭스의 비트 강한 음악에 심취했던 김홍탁은 키보이스의 스탠더드한 음악노선에 심한 갈등을 느꼈다.

결국 탈퇴 후 한웅이 창립한 록그룹 ‘히5, 히6’의 팀 리더로 추대되었다. 김홍탁의 탈퇴로 영입된 조영조. 그에 관한 평가는 사실 미미하다.

그러나 이미 8군 시절 미군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정감어린 연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1회 플레이보이 컵 쟁탈 전국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최우수 개인 연주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쟁쟁했던 기타 리스트였다.

또한 박명수와 더불어 후기 키보이스의 실질적 리더로 거듭났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윤항기는 69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전국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는 문제로 탈퇴했다.

파월논쟁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던 70년, 월남 위문 공연단 'ROCK & KEY'를 창립한 뒤 홀연히 베트남으로 떠났던 윤항기는 귀국후 ‘키브라더스’를 결성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의 공백은 미8군 ‘고고쇼’ 멤버인 우승기가 메웠다.

오리지널 멤버 중 가장 늦게까지 키보이스에 남았던 만능 연주자 옥성빈은 69년9월초 후기 멤버들과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시민회관 소울파티 무대를 마지막으로 탈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오리지널 멤버가 키보이스를 모두 떠났다. 이때 불거져 나온 신구멤버간의 팽팽했던 대립은 단연 세간의 화젯거리였다. 오리지널 멤버들은 그룹명 키보이스를 영구보존하기로 결의하고 ‘창단멤버가 한명도 없는 키보이스는 가짜'라며 그룹명 사용불가라는 철퇴를 내리쳤다.

후기 멤버들은 새로운 그룹명을 모색했지만 키보이스라는 그룹명이 가지는 상품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장 밤무대수입이 3분의 1로 줄어들 판이었고 킹레코드와 계약한 3장의 음반계약도 파기될 차가운 현실에 부닥쳤다. 궁지에 몰린 후기 멤버들은 ‘창단멤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 이름을 고수하고 개발시킨 우리는 그룹이름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어엿한 진짜 키보이스’라고 강하게 맞섰다.

쉽게 무너지기엔 후기 키보이스의 대중적 인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해변으로 가요’, ‘바닷가의 추억’, ‘뱃노래’등 바다를 주제로 한 노래로 젊은이들에겐 해변가의 제왕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조영조, 박명수, 장영 등으로 구성된 후기 키보이스들은 개인적 기량이 출중했던 1기와는 달리 탄탄한 팀워크로 구성된 연주와 구성진 하모니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차중락이 혼자 불렀던 ‘정든배는 떠난다’를 멤버전원의 정겨운 하모니로 무장, ‘정든배’로 재구성하여 지금껏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 대중들이 기억하는 키보이스의 히트곡들은 대부분 후기 멤버들의 노래가락이다. 그 중 ‘해변으로 가요’는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불리어지는, 영원한 젊은이들의 주제가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다.

71년 키보이스는 7인조로 거듭났다. 이때 멤버는 조영조, 오정소, 백승진, 이광일, 조기상, 장영, 박명수. 브라스 연주를 가미한 음악적 변신은 ‘시카고 사운드’라는 새 유행어를 낳았다. 당시 모든 국내 록그룹들은 브라스 밴드로 유행처럼 변신하고 있었다.

트로트 록을 구사한 후기 키보이스는 3장의 독집음반과 여러 버전의 히트곡 집을 발표했다. 1집은 더블자켓으로 임희숙과 함께한 김희갑 작곡집 <멀어저간 사랑/그사람-유니버샬, KLG가1003,69년> 이다.

이 음반은 공전의 히트몰이를 하며 순식간에 싱글자켓 재판을 찍었을 정도. 2집은 2회 전국 보컬그룹 경연대회 최고인기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출시된 <해변으로 가요/바닷가의 추억-유니버샬, K APPLE가 20, 70년 7월25일>.

트로트 록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친숙한 사운드의 음반이다.

특히 1면에 수록된 ‘미련’은 추천하고픈 명곡. 3집은 더블자켓으로 발표된 김영광 작곡집 <키보이스 스테레오앨범 VOL.3-유니버샬, K APPLE가 27, 71년2월25일> 이다. 수록된 모든 곡들은 옛추억을 되살려 주기에 충분한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아는' 아련한 곡들.

국내 록그룹들의 모태라 할만한 키보이스가 개척하고 들려준 음악은 비록 음악적 한계는 있다 하더라도 처음 시도되는 트로트와 록이 접목된 구성진 노래가락이었다. 그들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록그룹들은 키보이스가 부정할 수 없는 한국 록그룹의 개척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최규성 컬럼

입력시간 2001/07/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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