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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황무지를 일구는 '연극쟁이'

문화의 황무지를 일구는 '연극쟁이'

강남의 유일한 연극 공연장 유시어터와 유인촌

연극 전용 극장 유시어터는 강남 유일의 연극 전용 공간이다. 강남쪽의 문화 공간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가는 이대로의 추세라면, 머잖아 강남 유일의 문화 공간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2년전이나 지금이나, 사정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턱밑까지 패션 몰과 일식집같은 것들이 밀고 들어 오지만 유시어터는 살아 남아 앞으로 나아갔고, 나아갈 것이다.

△ "강남 유일의 공연장이라는 사실. 이 점만은 역사에 남을 겁니다." '역사 스페셜'의 인기 진행자. 유인촌씨가 '역사'를 말할때, 그 울림은 남다르다.<박서강/사진부기자>

유인촌(50)이라는 백전노장이 극장을 오르내리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한은.

단, 서울, 그것도 강남이라는 거대한 소비ㆍ배설 구조에 파묻혀 얼른 눈에 띄지 않을 따름이다.

“깨끗하고 기술적인 면이 많아 괜찮아 보인다.” ‘홀스또메로’로 유시어터와 연을 맺은 여자 회사원(33)의 말이다. “인상적이었다.” ‘택시 드리벌’을 여기서 봤다는 정통 연극팬(38)의 소감이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좀구석진 곳이긴 하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다. 특히 친절해서 좋다.” 극단 유와 유시어터가 매 공연마다 실시해 온 설문 조사지를 묶어 둔 철에서 몇 건 임의로 건져 올린 위의 진술들은 그곳의현재를 제법 잘 반영해 준다.


‘강남 문화의 보루’ 자부심

“폐관의 위기 의식이야 기본적으로 갖고 있지만, 내가 티를 안 낼 뿐이죠.” 대표 유씨의 말은 발성법(diction) 좋은 목청만큼이나 막힘 없다.

“2층 햄버거집에 오는 사람들이 한건물 지하에서 연극 한다는 사실은 모르더군요.” 이럴 때, 그는 당황보다는 씁쓸해진다. 아직까지는 강남쪽 사람들보다 인천ㆍ강북ㆍ수원 등지의 관객들이 절대다수다. 뒤늦게 찾아온 강남쪽 주민들은 ‘선전 안 해 몰랐다’며 아는체를 하기 일쑤.

“저도 말로야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 못해먹겠다, 매일 그러죠. 그러나 믿고 따라주는 단원들을 보면 기분 좋고 고마워요.” 말마따나 연극은 이 시대 독특한 공동체적 생존 방식이다. LG 아트 센터, 몇몇 음악홀을 빼면 강남 유일의 연극 공간이라는 버거운 사실은 그들에게 오히려 하나의 자부심이다.

1999년 개관 기념으로 ‘햄릿 1999’를 공연한 이래 아동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까지, 지금까지 극단 유는 모두 12편의 작품을 띄워 올렸다.

그 중 두 편은 ‘하늘, 땅, 그리고 바다 이야기’ ‘백설 공주를…’ 등 아동극이다. 특히 ‘하늘…’은 작품상ㆍ연출상 등 99서울어린이연극상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최근 막내린 ‘한여름밤의 꿈’ 공연은 1회 평균 140명이 들었다. 1층 좌석은 다 찬 셈이다. “년중무휴로 연극만 해 왔군요.” 유시어터만 그래 왔을까.

그 자신의 삶 역시 그가 맡아 온 다양한 극중 인물을 닮아 다면적이다. 극단대표로서의 활동은 물론, MBC-TV의 국민드라마 ‘전원일기’, 2년째 진행해 오고 있는 KBS1-TV의 ‘역사스페셜’, 공익성 광고 출연 등 TV 출연,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 등 듬직한 일꾼으로서의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켜 오고 있다.

특히 ‘역사 스페셜’ 진행자로서의 유인촌은 ‘조선왕조실록’ 진행자로서의 깔끔한 이미지와 겹쳐, 그를 고고학자로 추대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한 고고학도가 한국고고학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유씨를 명예고고학자로 추대하면 고고학계의 이미지 강화와 대외홍보는 물론, 고고학의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힌 것이다.

사회적 수요가 높아져 가고 있는 요즘, 그는 강원도 봉평땅에 벌여 놓은 자신의 연극 학교 ‘광대무변’의 개교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의 활동을 눈여겨 봐온 봉평군이 제의,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고향 마을땅을 연극 캠프로 재탄생시켜 달라는 제의에 응한 것이다. 이효석의 고향에서 3㎞ 남짓 떨어진 거리다.

학생이 없어 폐교된 구거초등학교의 교실, 관사, 창고 등을 연극인의 터로 재탄생시켜내는 작업의 정점에 그가 있다.

교실 2개는 의상ㆍ소품ㆍ무대 세트 등을 정리해 전시실로, 또 교실 2개는 스튜디오 연습실 공연장으로, 나머지 교실1개는 세미나실로 개조되고 있다. 숙소, 샤워장, 주방 시설 등 거점으로서 필요한 시설도 들여 놓을 작정이다. 캠프 이름은 넓고 변두리 없다는 뜻과 어릿광대들의 끝없는 세상이라는 뜻이 동시에 어우러져 있다.

현재 화가를 중심으로 예술가촌이 형성되고 있는 이곳은 유씨의 합류로 자연속의 강원도를 대표하는 예술 거점이 될 전망이다.

이로써 국내의 연극 마을은 이윤택의 밀양연극촌과 김아라의 죽산 무천 캠프를 포함, 모두 3개가 된다. 밀양연극촌과 죽산캠프가 자급자족적 체계라면, 그의 학교는 지역민과 함께 하는 캠프이다.

이 학교는 9월 봉평읍의 효석문화제와 맞춰 개막, 각종 퍼포먼스ㆍ연극 등의 공연으로 한껏 분위기를 띄울 계획이다. 인기연예인, 사회 저명인으로 치부해도 좋은 그가 자신을 굳이 연극인라고 규정하는 데에는 이렇듯 그만한 이유가 다있다. 극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것도 이 사이버 시대에?


“연극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원한 아날로그”

“이 시대, 연극은 영혼이죠.” 정보 통신, 기계ㆍ컴퓨터가 극단으로 발달한 시대라지만 연극만은 배우 즉 인간이 할 수 밖에 없다는 그의 명쾌한 논리다.

연극은 그래서 영원한 아날로그라는 지론이다. “연극은 인간의 정서와 인생을 대변해 주는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라고 그가 정의했을 때, 그 말속에는 테크놀로지가 배제된 순수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살아 굽이친다.

연극에서 잔뼈가 굵었고 굵은 획을 긋고 있는 그의 이력이 헛것이 아니라면 유시어터는 연극의 황무지 강남땅에서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건져 올릴 것이다. 척박한 모래땅에서 튼실하게 자란 무가 달큰하고 시원한 즙으로 갈증을 달래주듯.

“강남 사람들, 놀고먹는 문화에만 익숙해져, 연극 보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은 거죠. 우리는 지속적으로 좋은 작품 올려, 방점을 찍어 나갈겁니다.” 그는 다짐한다.

연극이란 결국 세월과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그는 일치감치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빠른 편이죠. 유시어터가 자리 잡으려면 한 5년 걸리겠거니 했는데, 2년만에 이 정도니 고맙죠.“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투입한 것(in put)만큼, 아니 그 이상 산출(out put)해 내야 한다고 배운 요즘 젊은 기획자들이 보면 숨통 터질 노릇이다.

“총 200석중 하루 100명 이상 관객이 들었던 ‘한여름밤의 꿈’의 경우, 관객의 75%만이 유료로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기획자 손은영씨는 털어 놓았다. 강남이라는 사실뿐, 지하철도, 외지인에게 잘 알려진 곳도 없는 극히 평범한 장소 아니던가.

지난해 4~6월 연일 만원을 기록, 최다 관객을 동원했던 ‘택시드리벌’조차도 제작비를 못 건졌다. 더욱이 1999년 10월 성수대교 확장공사 현장 특설 야외 무대에서 강행했던 ‘철안붓다’는 연극을 한다는 자존심과 함께, 1억5,000만원의 적자를 되돌려 주었다.

“장사나 기업이라면 당장 문 닫아야 해요.” 이쯤해서 기획자들은 목소리를 돋운다. 매주 목요일, 주말마다 하는 기획 회의에서 오죽하면 “유시어터를 알리기 위해서는 대형 사고가 한 번 터져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소비천국에서의 문화실험

이제 문제는 유시어터, 강남 유일의 연극 공간이 과연 살아 남을 것인가 하는데 있다. 이 점은 유시어터뿐 아니라, 소비의 천국 강남이 맞닥뜨린 시험대이기도 하다.

강남의 문화는 언제까지나 마시고 흔드는, 졸부 문화에 머물러야하는가. 유시어터는 그래서 강남의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극장은 이제 자체 제작 원칙을 탈피, 외부와의 연계를 모색해 나갈 작정이다. 9월 4일부터 한달 동안 극단 한양 레퍼터리가 이곳서 공연할 ‘러브 레터’는 첫 대관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유씨가 극장을 짓기 위해 쏟아 부은 전재산(3억) 중 현재 극장으로 4,000만원, 극단쪽으로는 2,000만원 남아 있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젊은 기획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에도 그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며 되풀이 할 뿐이다.

사실, 회의 시간에 그가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공연중인 작품과 다음작품에 관한 것이지만.

30년 연극 세월은 유씨에게 ‘아날로그 예술, 연극이란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결국은 연극을 택한 ‘만능 연예인’ 유씨는 보기 좋게 땀이 배인 헐렁한 T 셔츠를 여민다. 그는 다음 기다림의 작업을 위해,저 알 수 없는 뜨거운 도시로 발을 옮겼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1/07/1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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