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름 빼고 다 바꾼다

강도높은 사업구조개편, 소비재 중심서 산어재 분야로 '환골탈태'

“구조조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키스틱(Hockey Stick)’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회사가 밸류(value)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주력기업이든 모기업이든 연연해 하지 말고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자르고, 줄이고, 조이고, 파는 이른바 ‘감량경영’을 구조조정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산업재에 그룹이 핵심역랴을 집중하기로 한 두산은 최근
한전기공 등의 인수전에도 뒤어드는 등 '지네발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구조조정이란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핵심역량만 있으면 ‘지네발 경영’도 무방하다.”

박용성(61) 두산중공업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의 자격으로 최근 공개석상에서 남긴 어록들이다. 서로 같은 맥락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말들은 요즘 성공적인 구조조정의 ‘모델’로 통하는 기업 ‘두산’과 연관지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하키스틱 환상’이란 한쪽 끝이 구부러진 하키 스틱의 생김새처럼 경기가 바닥만 치면 무한정 상승할 것으로 지나치게 낙관하는 시각을 지칭한다.

두산은 IMF가 오기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초반부터 ‘최악의 경제상황’을 전제로 일찌감치 구조조정 작업을 개시, 상당한 성과를 거둔 회사. 남들에게 미래에 대한 막연한 장밋빛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충고할 만한 자격이 있다.

‘지네발 경영’ 은 “4대 이하 그룹들이 재벌그룹의 문어발 사업확장을 본떠 지네발 확장을 한다”고 비판한 진념 부총리의 ‘지네발 불가론’을 빗댄 말.

음료와 주류부문을 잇따라 팔아치우고 그룹의 핵심역량을 중공업 등 산업재에 집중하기로 한 두산은 최근 한전기공이나 한국전력기술 등의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지네발’ 늘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핵심역량(산업재)을 강화하기 위한 ‘지네발 경영론’은 그런 점에서 두산의 또 다른 경영전략으로 이해할수 있다.


OB맥주 매각, 주력사업 완전 재편

올해로 창업 105주년을 맞은 노(老)기업 두산이 숨가쁘게 변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깃발 아래 사실상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수술로 치면 눈 고치고 코 높이는 얼굴성형뿐 아니라 여성(소비재)에서 남성(산업재)으로 근본까지 바꾸는 크로스 젠더의 대모험을 감행 중이다.

박 회장도 공언했듯이 오로지 가치 창출을 위해 주력기업과 모기업마저 가차없이 잘라내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기업의 구조조정사는 두산에 의해 새로 쓰여지고 있다고 해야 할 판이다.

두산 구조조정의 클라이맥스는 사실상 ‘모기업’에 해당하는 OB맥주의 매각. 두산은 6월 22일 네덜란드계 투자사인 홉스사와 주식양도계약을 체결, 보유중인 OB맥주㈜ 지분 50% 가운데 45%를 약 5,600억원에 매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1998년 벨기에 인터브루사에 OB맥주 지분 50%를 매각한 뒤 3년만에 사실상 지분 전량을 매각함으로써 맥주사업에서 손을 뗀 것이다.

OB맥주는 1896년 지금의 종로4가 배오개에서 포목업으로 사업을 시작한 두산을 오늘날 재계 순위 11위로 끌어올린 핵심 계열사. 두산에 대한 각종 이미지 조사에서 대다수 응답자들이 두산을 ‘주류회사’로 인식하는 것도 바로 OB맥주 때문이다.

OB맥주의 매각에 따라 두산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두산중공업과 ㈜두산, 두산건설, 두산테크팩, 오리콤 등 5개사로 줄어 들었다. 주력사업도 주류나 식음료 등 소비재 중심에서 중공업 등 중간산업재 위주로 완전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고있다.

㈜두산 관계자는 이와 관련, “OB맥주의 지분 매각은 두산의 미래 성장과 수익성 제고를 위한 일련의 강도높은 구조조정 작업의 결과”라며 지난해 말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에 이은 사업구조 개편작업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산은 현재 한전 계열의 한전기공과 한국전력기술의 인수전에도 뛰어든 상태라 이번 맥주 부문 매각으로 사실상 그룹의 핵심역량이 발전ㆍ중공업ㆍ기계 등 기간산업 부문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이러한 구조조정 작업의 연장선 상에서 두산이 맥주에 이어 소주사업까지 정리한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

△ 두산이 모기업에 해당하는 OB맥주를 매각하는 고강도의 구조조정으로 그룹의 뼈대를 교체하고 있다.

두산은 이에 대해 “신제품 ‘산(山)’ 소주의 인기에 불안감을 느낀 경쟁업체들의 음해공작”이라며 소주사업매각설을 일축하고 있지만 소문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떠돌고 있는 두산의 소주 매각설은 상당히 구체성을 띠고 있다. 대기업인 L사에서 인수전담팀까지 구성, 300억원의 초기자금을 확보한 상태에서 두산주류 인수를 추진중이라는 것.

심지어 “두산과 L사가 소주부문 인수협상을 사실상 마무리 짓고 가격문제에 대해 최종 조율중”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더욱이 두산의 구조조정을 조언하고 있는 매킨지컨설팅은 두산이 소비재부문을 완전 정리하고 전자·기계·포장·건설등 중간산업재에 집중할 것을 권고해 온 터여서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같은 소문은 두산의 구조조정 작업이 얼마나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구조조정

두산은 95년창립 100주년(96년 8월)을 앞두고 “향후 100년을 준비하자”며 사업구조조정 장기계획을 발표, 구조조정의 닻을 올렸다.

초창기엔 3M, 코닥, 네슬레 등 우량기업이었지만 경영권이 없는 회사의 지분을 과감하게 팔아치우며 구조조정의 시동을 걸었고 이후 ▦ OB맥주 영등포공장 부지 매각 ▦ 코카콜라 영업권 양도 ▦ 을지로 본사 사옥 매각 ▦ OB맥주지분 매각 ▦ 한국중공업인수 등으로 회사의 면모를 바꾸어 왔다.

가혹할 정도의 구조조정으로 95년 624%에 달하던 부채비율은 96년 688%, 97년 590%, 98년 332%, 99년 159% , 지난해 149% 로 급격히 낮아졌다. 모기업과 주력기업까지 팔아치우는 동안 그룹 전체는 회생을 길로 접어든 것이다.

두산은 최근 해외에서 대규모 사업권을 따내며 구조조정의 ‘열매’를 맛보기 시작했다.

두산중공업이 치열한 입찰경쟁률을 뚫고 세계 최대 규모의 UAE 후자이라 담수 프로젝트를 수주하는데 성공한 것. 후자이라 담수 프로젝트는 일산(日産) 1억 갤런 규모의 담수공장과 660MW급 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공사로 두산중공업이 민영화 후 첫 번째로 도전한 해외대규모 입찰건이었다.

주류회사에서 중공업회사로 그룹의 뼈대를 교체하고 있는 두산. 그 숨가쁜 구조조정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결말이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두산 구조조정 추진일지

1993년 1월   두산의 사업군을 3개의 사업군으로 구분(생활문화/기술소재/정보유통 사업군)
1994년 1월   연봉제 실시(국내 기업중 최초)
1995년 12월  두산 사업구조조정 계획 발표(계열사 일부 통폐합 및 사업이관)
1996년 1월   대단위 팀제 도입ㆍ토요격주 휴무제 실시
4월   동아인쇄,두산동아에 합병
8월   한국 네슬레주식 153만9,000주 매각(235억원)
9월   두산종합식품, 두산음료에 흡수 합병
11월   한국3M주식96만주 매각(900억원)
12월   한국코닥42만3,000주 매각(500억원)
OB맥주 영등포 공장매각(1,124억)
1997년10월   OB맥주와 두산음료합병
11월   두산개발과 두산농산 합병
음료사업부문 美 코크사에 매각(4,322억원)
1998년 2월   두산그룹본사 사옥 두산빌딩 매각(690억원)
3월   오리콤 케이블TV DSN 영업권 양도(55억원)
4월   2단계 구조조정 착수(주력 핵심사업 4개사로 축소)
6월   두산씨그램 주식 매각(1,275억원ㆍ외자유치 9,000말 달러)
9월   OB맥주 합작회사 설립(3,500억원ㆍ외자유치 2억7,000만달러)
(주)두산 출범(9개 계열사 1개사로 흡수통합)
12월   두산 전분당 사업 양도-美 CPI사와 합작
2000년12월   한국중공업 인수(지분 36% 3,057억원)
2001년 6월   OB맥주 45%지분 매각(5,600 억원)        

입력시간 2001/07/1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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