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재해와 원칙

지난 주에 서울 경기 지방에 집중 호우가 쏟아져 수많은 이재민과 사상자를 냈다. 시간당 내린 양을 따져보면 강수량을 기록한 이후 세 번째 많았다고 하고 한밤중에 쏟아졌다니 대비가 아무래도 허술할 수 밖에 없었을 듯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네’ 하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고, 일부에서는 집단소송을 준비한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상황이 어땠는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자연의 위세는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온다. 다만 그것을 맞이하는 사람이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미국도 땅 덩어리가 넓으니 만큼 온갖 종류의 자연재해가 들이닥친다.

우리나라에 매년 여름이면 찾아오는 태풍과 같은 허리케인은 플로리다나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노스 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미국 동남부 주를 강타, 미국 사람들의 여름 휴가를 망치곤 한다.

특히 플로리다 주는 허리케인의 피해를 워낙 많이 받는 지역이다 보니 특별히 이를 염두에 두고 건물을 세우도록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중부 내륙지방에는 무서운 토네이도가 있다. 영화 ‘트위스터’에서도 잘 그려져 있듯이, 한번 휩쓸려 들어가면 아름드리 가로수가 통째로 뽑혀 날아가고, 소나 말, 자동차 등도 마치 모닥불위로 불어 올라가는 낙엽처럼 휘말려 들어가 버린다.

또한 서부에서는 지진의 위험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80년대말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일어난 지진으로 고가도로가 무너져 내리고 전기가 끊겨 시내 전체가 암흑 속에서 며칠 밤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해가 닥쳐오더라도 인재라는 비판이나 비난이 제기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행정을 보면 어찌 보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설계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그 설계와 정책에 따라 그대로 시행하여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DC는 포토맥 강을 끼고 있다. 이 강변을 따라서 조지 타운 근처를 가보면 관광객들이나 젊은 연인들이 많이 모이는 워싱턴 하버라는 곳이 있다.

고급 레스토랑과 사무실 및 주거시설이 복합적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포토맥강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워터게이트 호텔과 함께 워싱턴의 명소로 꼽힌다.

그런데 이 워싱턴 하버의 분수대에서 강쪽을 바라보면 약 5㎙ 간격으로 5㎙ 정도 높이의 기둥이 늘어서 있다. 기둥위에는 밤이 되면 켜지는 가로등이 달려 있다. 기둥들은 워싱턴 하버 건물을 성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 기둥들은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홍수를 대비한 것이다. 기둥들은 강이 범람했을 때 건물로 물이 밀려드는 것을 막아주는 수문을 지탱해준다. 자세히 보니 기둥 사이에는 밑에서 올라올 수 있는 철제 갑문이 있다.

물론 실제로 그 수문을 올려야 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만일을 대비하는 미국 사람의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집을 지을 때에는 가장 싸게 입찰에 참여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고 한다. 돈을 낸 만큼 받는다는 것이 미국인의 논리이다. 철저한 경쟁사회에서 값이 싸다면 그만큼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값싸게, 어느 기간 동안 얼마를 이루었냐는 숫자와 업적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던 우리의 방식이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의 참화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목조 가옥들은 상당수가 한 세기가 넘도록 사용되고 있다. 저렴한 비용과 속전속결에 치중한 한국과 달리 안전과 품질이라는 대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결과일 것이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7/2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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