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소동] 호랑이 찾아 8개월, "악적고투가 따로 없었다"

대구문화방송(MBC)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한국호랑이를 찾아 처음 산을 타기 시작한것은 지난해 12월 중순. 30년만의 대설로 모든 산들이 무릎에서 가슴팍까지 차 오르는 눈으로 뒤덮여 위험 천만 이었다.

게다가 대구문화방송사로서는 창사이래 최대 규모의 제작비(2억원)와 인력 장비 등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어떻하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 같은 상황속에 기약 없는 긴 등정이었지만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발걸음은 자신만만했다.

“한국 호랑이는 분명 살아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실제 제작팀은 호랑이 찾기에 앞서 3개월간 현장 주민들의 증언 등 철저한 자료수집과 분석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9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서 일주일동안 6마리의 개를 물어간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주민목격담과 동물발자국 및 배설물 분석, 야생동물보호단체와 관계 전문가의 연구 등 3개월간의 추적조사결과 평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동물과는 확연히 다른 맹수류가 서식하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이다.

장정에 나선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총 17명. 호랑이 특별취재팀 기자와 카메라 촬영기자 그리고 14개 야생동물보호연구단체가 모여 만든 야생동물연합소속 전문가 등으로 짜여졌다.

등정에 앞서 1주일간 “호랑이를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한 이들은 우선 인원구성을 현장 추적팀(13명)과 지원팀으로 나누고 추적팀은 다시 2인 1조 6개 팀으로 분류, 산을 타기로했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처음 도착한 곳은 경북 문경. 호랑이가 살아있다면 백두대간 이주 이동경로일 것으로 분석한 제작팀은 백두대간의 중간지점인 경북 문경부터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조사는 우선 주민목격담을 청취한 뒤 현장 추적팀 6개 팀이 분산해 산에 올라 동물의 이동경로와 흔적을 찾고 신빙성이 있는 흔적이 발견되면 전문가들이 모여 종합조사를 실시해 카메라 촬영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맹수가 아닌 일반 야생동물의 흔적이더라도 꼼꼼히 챙겼다. 아직까지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남한지역 백두대간의 야생동물 첫 서식 밀도조사 차원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문경에 이어 영호남과 충청도 등 3개 지역의 접경지역으로 잘 알려진 삼도봉을 거쳐 경북 봉화 청송 영덕 영천 등으로 남하했다 다시 강원도로 들어가 오대산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민통선을 넘어 비무장지대(DMZ)까지 다달아 1차 조사를 마쳤다.

이 때가 2001년 4월초. 조사에 나선지 꼬박 4개월이 지난 때였다. 제작팀의 총 이동거리만 670km. 제작팀이 오른 면적은 백두대간 10%. 남한지역 백두대간의 주요 산줄기는 모두 오른 것이다.

또 믿을 만한 주민들의 맹수 목격담도 150건이나 청취했다.

무수한 위험의 고비도 넘겼다. 동물들의 이동경로를 찾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니지않은 산길을 헤집고 다녀야했고 2-3시간 들어간 깊은 산속에서는 언제 어느 때 큰 짐승이 들이 닥칠 지도 모른다는 두려임이 상존했다.

해빙기에는 등반도중 돌이 굴러 내리는 일이 잦아 더욱 위험했다. 실제 제작팀의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제작팀은 1차 조사를 종합한 중간회의 결과 맹수의 서식 가능성이 가장 높은 3곳을 선정했다. 1곳은 호랑이 2곳은 표범이나 스라소니로 예상했다.

여기에는 동물의 발자국과 배설물 등 흔적에다 지역주민 신빙성 있는 목격담이 주된잣대가 됐다. 제작팀은 이들 3개 지역에 먹이를 주기적으로 공급하고 무인 카메라 13대를 집중 설치했다.

모두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도입한 최첨단 무인센서카메라들이 었다. 1주일에 한번씩 현장을 찾아 카메라 촬영내용물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야생동물들의 신비한 모습들이 끊임없이 포착됐지만 제작팀이 고대하던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청송서 촬영 후 40여일간 정밀조사

그러던 지난 6월25일. 장마에다 잦은 폭우로 동물들이 이동을 꺼려 큰 기대없이 경북 청송에 설치된 카메라를 확인하는 순간 제작팀은 화들짝 놀랐다.

지금까지 카메라에 포착된 동물과는 전혀 다른 물체가 드러난 것이다. 6월22일 새벽3시 34분에 찍힌 이 동물의 움직임도 전혀 달랐다.

그동안 카메라에 잡힌 대부분 동물들이 포착순간 발생하는 플래쉬에 놀라 카메라쪽을 응시하거나 달아나는 모습이었으나 이 괴물(?)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오히려 카메라 반대쪽을 1분가량 주시하며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이 동물을 분석한 결과 1차적으로 호랑이 스라소니 삵 등 3동물 가능성으로 압축했다.

2차로 화면정밀 분석작업과 외부전문가 등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어린 호랑이라는 최종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스라소니는 꼬리가 짧아 카메라에는 잡힌 S자 모양의 꼬리에 비춰 배제됐고 살쾡이는 커야 60cm(일부에서는 90cm라고 주장하나 잘못된 것이라고 함: 대구MBC주장)인 점으로 볼 때 1m20cm에 달하는 카메라내 동물과 비교할 때 맞지않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풀리지않은 숙제가 있었다. 호랑이라면 몸전체에 나타나야할 줄무늬가 카메라에 포착된 동물의 경우 다리안쪽과 가슴 등에는 보이나 등이나 꼬리 다리 바깥 등 에는 뚜렷하게 나타나지않는 것이었다.

제작팀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만간 해답을 찾았다. 동물원의 호랑이를 무인센서카메라로 같은 조명으로 촬영한 결과 비슷하게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의 조사결과 밝기가 다른 두색이 서로 영향을 받아서 밝은 색을 더 밝게 어두운 색은 더 어둡게 보이는 명도대비현상이 있는데다 직접 조명이 아닌 반사광에 찍혔기때문이라는 해석을 얻었다.

외국전문가의 인정도 받았다. 지난달 29일 대구문화방송을 방문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역 연구소 시장인 피크노프 박사와 니콜라에프 박사가 화면에 잡힌 동물의 모습과 주민들의 목격담, 그동안 찍은 발자국 화면 등을 검증하고는 어린 호랑인 것 같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앞서 올 5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극동표범 보호세미나’에 참석한 70여명의 야생동물 전문가들도 대구문화방송이 갖고간 자료에 대해 “완벽한 대형 고양이과 동물 발자국”이라고 검증했다.

하지만 대구문화방송이 이달 1일 이 같은 한국호랑이 촬영사실을 전국적으로 방송한뒤 “호랑이가 아니다”라는 주장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무엇보다도 카메라에 잡힌 모습이 호랑이와는 다르고 살쾡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들이었다.

다큐멘터리촬영 특별취재팀 현장 팀장역할을 맡은 대구MBC 오태동(33)기자는 “이번 다큐멘터리 촬영은 다소 작위가 있는 기존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촬영이었고 특히 주민목격담과 동물발자국 배설물등 자료들을 외국인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 ‘결코 살쾡이가 아니며 어린 호랑이다.’고 주장했다”며 “관계 당국의 정밀조사와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유명상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8/08 16:29


대구=유명상사회부 msyu@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