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암흑가의 영욕이 담긴 쓸쓸한 진혼곡

■ 갱스터 넘버원

영화 속 갱스터의 국적을 분류해보면 미국, 홍콩, 한국, 일본, 영국이 꼽히지 않을까. 영국 갱스터의 비중이 그리 높은가 의아해 할 분들께 근래 수입된 영국 갱스터 영화 목록을 알려드리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베럴즈> <런던 24시> <랜시드 알루미늄> <하드맨> <젠틀맨 하이웨이맨> <페이스>.

갱스터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영화까지 더하면 목록은 한참 길어진다.

영국 갱스터 영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울증에 걸린 갱스터가 많다고 할까. 무조건 일을 저지르기보다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를, 그리고 사건이 터진후까지를 되새김질하며 존재 의미를 찾으려는, 사색하는 갱스터가 많다.

폴 맥기건의 2000년 작 <갱스터 넘버원 Gangster No. 1> (18세, 콜럼비아)의 주인공 No. 55도 이 성향을 대표하는 갱스터 중의 하나다.

시가와 샴페인, 풀 코스 정식, 그리고 사각의 링에서 벌어지는 권투 시합을 즐기며 한담을 나누는, 한가닥하던 노년의 갱스터들. No. 55(말콤 맥도웰)는 "프레디가 30년만에 출소한다"는 말을 듣고 놀라 화장실로 숨는다.

런던 동부 지역을 주름잡아온 No.55가 샴페인 잔에 오줌을 흘리며 회상하는 과거. 이런 형식이니 <갱스터 넘버원>은 당연히 한 갱스터의 영욕을 그리는, 쓸쓸한 진혼곡이 된다. 추억의 팝 송과 의상도 이런 느낌을 부축인다.

그러나 <갱스터 넘버원>에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말콤 맥도웰의 출연이다.

1943년생인 맥도웰은 린제이 앤더슨의 1968년 작 로 데뷔하였다. 푸른 눈과 짧게 깎은 머리, 고약한 인상은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인물에 잘 어울려, 앵그리영맨 세대를 대표하는 앤더슨 감독의 < O Lucky Man!> < Britania Hospital>에 연이어 출연하게 된다.

그러나 맥도웰의 반골 이미지를 가장 잘 살린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의 1971년 작 <시계 태엽 오렌지>. 국가의 인성 개조 실험 대상이 되는, 폭력과 약에 찌든 청년역은 맥도웰의 최고작으로 기록된다. < 시계- >는 현재까지도 여러나라에서 개봉을 금지하고있으며, 국내에서도 이 영화 장면이 들어간 다큐물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다.

이후 맥도웰은 <카리큘라> <캣 피플>과 같은 화제작에 출연하나, 70년대의 명성을 되살리지 못하고 지리멸멸한 영화의 조연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맥도웰의 이미지를 잇고 있는 배우 게리 올드먼은 존경하는 선배가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은 노동자 계급이라는 성분 탓도 있다고 보고,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했다고 말할 정도.

<갱스터 넘버원>에서 젊은날의 No. 55(폴 베터니)는 맥도웰의 이미지, 특히 <시계->의 주인공 알렉스를 연상시킨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과 음모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이태리제 수제 구두와 실크 양말, 실크 드레스를 갖춰 입고 궁전같은 집에서 살며, 아름답고 지적인 화가 지망생 카렌(섀프론 버로우즈)과 진정한 사랑까지 나누고 있는 두목 프레디(데이비드 튤리스)에 대한 선망과 증오심으로 뭉친젊은 No. 55. 두목을 제거한 No. 55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두목이 즐겨앉던 푹신하고 큰 소파에 몸을 내맡기며 "The King is Dead"라고 선언하는것.

입력시간 2001/08/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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