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와 길흉화복] 경복궁과 청와대

풍수지리란 무엇인가. 땅의 기(氣)와 바람의 흐름과 자연으로 생긴 땅의 생김새를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속에서 왔다가 자연속에서 희비애락의 몸부림을 치면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지구상의 최고의 삶을 살기 위하여 생명에 매달리다 보면 생명을 연장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죽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많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먼저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인왕산과 관악산의 형세를 살펴보자. 관악산은 화산(火山)으로서 인왕산을 정면으로 쫓는 형이다. 인왕산이 관악산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재해가 있을 형국이다.

한강수 역시 인왕산을 감싸주지 못하는데다 관악산의 기가 너무나 강하기에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고 강화쪽으로 도망가는 형상이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개성(송악)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때 무학대사와 정도전 간에 궁의 방향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무학대사는 관악산을 정남쪽에 두고 왕궁을 지으면 그 화성(火性)에 눌려서 앞으로 내우와 외환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현무로 하는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하면 왕업을 영원히 전할 수가 있으나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하면 정면의 관악산이 궁전을 위압해 내우외환이 많을 것이라는 인왕현 무설을 주장했다.

관악산은 화덕을 가진 ‘불기운의 산’으로, 이 산의 화기(火氣)가 경복궁을 내리치니 궁이 기운과 서기를 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옛날부터 일국의 군왕은 남쪽으로 향을 잡아서 백성을 다스리는것이 천하의 통법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다며 관악산은 정면에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고 한강이 가로막고 있으므로 화기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태조는 정도전의 손을 들어주었다. 정도전도 관악산의 화성은 인정한 듯 방향을동쪽으로 조금 변경한 입좌방향으로 궁터를 정했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예언대로 1, 2차 왕자의 난, 세조반정 등 조선 500여년 역사는 파란만장했고 국민의 불행도 많았다. 경복궁도 몇번이나 화재를 당했다.

이에 흥선 대원군은 불에 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위해 돌로 해태를 만들어 광화문 앞에 배치했다. 또 관악산에 우물을 파고 그 안에 구리로 만든 용(龍)을 넣기도 했다.

부모와 형제자매 모두가 자유와 평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후손들에게도 그 같은 삶이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한 가정의 가장이 건강하여야 그 가정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국사의 중심인 청와대 자리는 어떨까.

청와대도 풍수지리상으로 볼 때 입수의 향이 잘못돼 있다. 언뜻 보기에는 명당(明堂)같지만 대적(大賊)과 대파(大破)에다 화(火)까지 겹치니 땅의 좋은 기운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파(破)의 힘이 강해 앞으로도 재난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주변의 북악산 인왕산 도봉산 관악산 등의 산세로 미루어 볼 때 보자기형으로 도망가는 형이다. 청와대를 거쳐간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새겨보라.

이 세상의 모든 힘은 상대성의 원리에 따른다. 약한자가 강한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인간의 힘과 재력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없다. 지혜와 재력과 과학적인 힘을 합쳐 자연의 원리에 맞게 일을하는 사람만이 자연과 더불어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의욕과 욕망, 행복, 자유, 평화 모든 것에는 눈이 밝은지 몰라도 대자연의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원리에는 무관심하거나 그 무한한 힘을 무시해 화를 자초하니 안타깝다.

* 백천(白天) 정판문(丁判文)선생

193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2세때 도계(道溪) 스승을 따라 입산했다. 해남한등사(漢登寺)와 전국의 명찰을 스승과 함께 두루 답사하며 28세까지 풍수지리를 배웠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대자연풍수지리원을 열고 있다.(02)548-3322

백천 정판문 대자연풍수지리원 원장

입력시간 2001/08/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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