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졸업' 축하위론 먹구름 가득

최악의 경제상황으로 위기 지속, 국민고통 여전

2001년 8월23일 오전 10시30분 한국은행 총재실. 전철환 총재가 국제통화기금(IMF)차입금 가운데 마지막 1억4,000만달러를 상환하는 서류에 결재를 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97년 12월 이후 IMF로부터 빌린 195억달러를모두 갚아 IMF체제에서 졸업했다.

전 총재는 “감개무량하다. 국민과 기업, 금융인 모두에게 감사한다”고소감을 피력했다. 경제주권을 회복한 사실은 축하할 일이다. 더구나 당초 예정보다 3년이나 앞당겨져 대단한 축하를 받아야 할 조기졸업이다.

그런데 그 ‘졸업식’을 보는 사회 분위기는 밝지 않다. 일자리는 없는데 졸업을 하는 대학 졸업생 같다고나 할까.

IMF 체제동안 국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실로 엄청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개혁)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대명제 아래 거리로 내몰렸다.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통을 감수했다. 그 결과 ‘졸업’을 했다. 그렇다면 고통은 끝이 났는가. 그렇다고 얘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구조조정 답보상태 등 위기 요인 그대로

국내외 경제여건은 환란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우리경제의 2ㆍ4분기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하는 등 내우외환에 휩싸여 있는데다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전망마저 불투명해 제2의 IMF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우리경제의 견인차인 수출은 올들어 7월이후 전년동기대비 20%이상 급감하고, 주가도 죽을 쑤는 등 거시지표와 체감경기가 모두 바닥을 기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을 털어내기위해 그동안 1, 2차례에 걸쳐 쏟아부은 150조원규모의 공적자금은 대부분이 회수가 어려워 국가빚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IMF 자금은 갚았지만 세계은행의 구조조정차관과 경제재건차관, 아시아개발은행의 차관 등은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주요 국가중 총외채는 7위, 단기외채 규모는 1위다. 공공부문의 개혁은 여전히 미흡하다.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해왔다고 하지만 영업을 해서 이자도 갚지 못하는 기업이 상장사의 35%에 이르고 있다. 기업들의 금융비용이 전례없이 낮은 상황을 감안하면 심각하다. 경실련은 국민이 부담해야 할 공공채무를 400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야당은 이보다 더 많다고 주장한다. 대우차, 서울은행, 대한생명 등 부실기업의 처리가 난항을 겪으면서 외국투자자들은 정부의 개혁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환란이후 심화하고 있는 중산층의 몰락 및 실업자 양산, 기업들의 투자의 욕실종 등 각종 개혁의 후유증도 앞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힘든 숙제로 남아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지금처럼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다시금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일 연구위원은 “외환보유액 1,000억달러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공공, 기업, 금융, 노사부문 등 4대개혁이 여전히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위기요인은 잔존하고 있다”면서 “환란당시 모든 경제주체들이 고통분담했던 개혁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조기졸업을 축하할 것이 아니라 우리경제가 이제 외부의 지원자 없이 ‘상어’들이 먹이감을 노리고 있는 망망대해로 진입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량 실업 등 국민 ‘초과 희생’

우리 국민이 IMF체제에서 겪은 고통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것이 한국금융연구원 최흥식 부원장이 발표한 자료다.

최 부원장은 IMF 체제 극복을 위해 우리 국민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과 희생은 가혹한 ‘IMF 처방’ 및 당국의 초기 대응실책 등으로 외환ㆍ금융위기를 겪은 다른 나라들 보다 훨씬 컸다고 주장했다.

그는 23일 열린 ‘IMF 자금 조기상환의 의미와 과제’ 심포지엄에서 “1997~1998년중 경상수지 적자를 흑자로 돌리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감당해야했던 경제적 희생의 정도를 ‘희생비율(Sacrifice Ratio)’로 산출해본 결과 3.34에 달했다”며 “이 같은 수치는 아르헨티나 태국 등 9개 여타 경제위기국 평균 2.32보다 훨씬 높다”고 분석했다.

‘희생비율’은 적자로 돌아선 경상수지 1달러를 개선하기 위해 실질 GDP가 얼마나 감소했는 지를 따져 경제회복을 위해 국민이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맸는지를 가늠하는 접근법.

최 부원장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86억1,800만 달러 적자에서 403억6,500만달러 흑자로 전환된 반면, 불변GDP는 4,476억달러에서 2,849억달러로 감소했다.

이는 우리 국민이 경상수지 1달러 개선을 위해 3.34달러의 실질 생산 감소를 지불했다는 것으로 실질 생산 감소는 결국 대량실업 등 국민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최 부원장의 설명이다.

반면, 유사한 경제위기를 겪은 다른 나라의 ‘희생비율’은 아르헨티나 1.44(1995년), 태국 1.07(1998년) 등이었고, 인도네시아가 11.84(1998년)로 우리보다 유일하게 높았다.

IMF 극복과정에 수반된 국민의 ‘초과 희생’은 대부분 경제주권을 상실한 대가이지만, 이처럼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도 상당한 원인이됐다는 게 금융연구원측의 시각이다.


“또 다른 경제위기의 시작” 관측

어려운 국내외 여건으로 앞으로 국민들이 받을 고통의 조짐들은 많다. 기업들의 긴축경영으로 많은 직장인들이 퇴출위기에 전전긍긍이다. 실업률은 상승추세이고 구직을 아예 포기한 실업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반기 취업전선은 한마디로 먹구름만 가득하다. 상당수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규모와 일정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IMF 환란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졸업’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나올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어 경제가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될 소지가 다분하다. 짜임새 있는 지출이 되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이 악화하고 이는 곧 국민의 부담을 더욱 크게 한다.

국민의 고통 감소를 위해 정부와 정치인이 그 시작의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장인철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8/30 11:08


장인철 경제부 icj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