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바다, 다리 그리고 터널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대여섯 시간 내려가면 타이드워터(Tidewater)라는 지역을 만나게 된다. 버지니아 비치, 노포크, 햄프톤, 뉴포트 뉴스 등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지역 명칭이 말해 주듯이 이곳은 대서양과 체사피크 만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바다와 관련되어 마을이 생기고 발전한 곳이다.

먼저 버지니아 비치는 워싱턴 사람들이 여름철이면 찾는 대표적인 바닷가 휴양지 중 하나이다. 쭉 뻗어있는 해변의 모래사장을 따라 빽빽이 늘어서 있는 호텔과 콘도는 여느 해변가 휴양 도시와 다름이 없다.

그 넓은 모래사장이 한여름이면 온갖 색깔의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미국의 해운대인 셈이다.

그 옆에 있는 노포크는 미국 해군 대서양 함대의 기항지이다. 따라서 하얀 제복을 입은 수병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뉴포트 뉴스 역시 조선소로 유명한 곳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방위산업체인 제너럴 다이나믹스사와 노드롭 그루만사가 서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뉴포트 뉴스 조선소는 미국에서 핵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조선소 중 하나이다. 햄프톤 역시 해군 관련 연구소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사설 해양 연구소들도 많이 있다.

버지니아 비치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체사피크 만 쪽으로 접어들면,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구조물이 바다를 향해 뻗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언뜻 보면 다리 같기도 한데, 가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뚝 끊어진 것이 평범한 다리는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언뜻 보아서는 건너편이 망망 대해에 그것도 20만 톤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대형 유조선이 떠다니는 바다 한가운데로 다리를 놓을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궁금증을 삼키며 더 가까이 가보니 다리는 바다 한가운데서 끊어졌다가 한참 더 나가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끊어진 것이었는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현대 세계 7대 불가사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체사피크 만의 다리 터널(Bridge-Tunnel)이다. 진입로까지 포함해서 총 연장 23마일(36.8km)인 이 다리 터널은 버지니아의 남동부와 델마르바 반도(이 반도에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의 동부해안과 델라웨어 주가 있음)를 연결해주고 있다.

이 다리 터널을 이용해 버지니아 동남부나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델라웨어의 윌밍턴까지 달리면 육로로 가는 것보다 약 100마일(160km) 가량 단축된다고 한다.

1960년 9월 착공해 42개월 만인 64년 4월 개통된 이 다리와 터널을 완성하기 위하여 4개의 인공 섬을 만들어야 했다. 다리가 바다 한가운데서 끊어진 지점이 바로 인공섬이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에서 해저 터널이 시작되어 그 다음 인공 섬에서 다시 물위로 나온 뒤 다리를 따라가다가 또 다시 인공 섬을 만나 해저 터널을 지난 후 다리로 올라와 달리다 보면 어느새 저쪽 건너편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육지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해저 터널의 길이는 약 1마일 가까이 되는데, 볼티모어까지 원유를 실어 날라야 하는 몇 십만 톤 급의 유조선이 다니는 항로에는 다리를 바다 위에 놓을 수가 없어 터널을 설치한 것이다.

이 해저 터널을 위해 만든 인공 섬 4개는 면적 각각 10 에이커 정도이며 수면에서 약 30피트 정도 올라와 있다. 이 인공 섬들을 만들기 위해 쏟아 부은 돌덩이가 모두 120만 톤이고 다리 건설을 위해서 바다 속에 박아 넣은 콘크리트 파일이 모두 2,500여 개라고 하니, 공사의 규모를 짐작할 만했다.

이쪽 해안에서 저쪽 해안까지 정확히 17.6 마일 (28.4 ㎞)인 이 다리 터널은 사업을 주도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루시어스 J. 켈맨 주니어 브리지 터널(Lucius J. Kellman Jr. Bridge-Tunnel)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체사피크 베이 브리지 터널로 더 알려져 있다.

개통된 후 30년 동안 6,700만 대가 넘는 차량이 이곳을 통과하였고, 95년에는 다리의 복선화 공사가 시작되어 99년 또 하나의 다리가 원래의 다리 옆에 세워졌다. 해저터널은 추후에 복선화할 계획이다.

60년대에 2억불이 소요된 이 공사를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도움 없이 채권을 발행하여 공사 경비를 조달했다고 한다. 시장에 의해 움직이는 자본의 원리가 이 장대한 현대의 불가사의를 만든 것이다.

입력시간 2001/09/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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