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 마지막 '정치베팅'

JP엎고, DJ업고 대망을 꿈꾼다

“20여년 정치 생활에서 네 분의 대통령을 모셨지만, 명예총재님(JP)에게서 크고 작은 은혜를 받았다. 총선도 제대로 못치렀는 데 총리로 가도록 배려해 주셨다.”

이 총리는 지난해 5월 총리에 임명되자, JP의 극진한 배려에 이처럼 몸둘 바를 몰라 했다. 중부권 보수세력의 대표주자로 자민련 총재로 영입돼 4ㆍ13 총선을 치렀지만 참패한 뒤끝이었다.

자신의 측근들은 전원 낙선했고, 스스로도 지역구에서 조차 턱걸이 당선돼 정치생명에 큰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DJP 공조복원과 함께 JP의 천거로 재기의 발판인 총리직을 꿰차는 행운을 누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 정무위원회에서 이한동 총리가 의원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 뒤 인사하고 있다.<오대근/사진부 기자>

그로부터 1년 3개월여 뒤인 2001년 9월6일. 이총리는 자신을 총리 자리에 앉혀 준 JP의 만류를 뿌리치고 총리직 잔류를 선언한다. 총리직에 대한 미련, 청와대의 유임권유, JP의 사퇴압박이라는 3각 구도속에서 오락가락했다.

정치적 신의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결국 JP와 결별하고 마이웨이를 택했다. 정치적 배신자라는 자민련의 비난, 신의를 저버렸다는 여론의 따가운 비판 등을 무릎쓴 이 같은 행보는 DJ와의 협력 속에 왕건의 꿈, 즉 대망에 다가서려는 포석으로 관측된다.

이 총리는 “당분간 JP를 만날 계획이 없다”며 “언젠가는 찾아 뵙고 소상히 경위를 설명하면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사실상 JP와 완전히 갈라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양지에 길들여진 정치체질

이는 한마디로 JP품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DJ곁에 남아있는 것이 자신이 꿈꾸는 ‘왕건의 꿈’을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물론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1981년부터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등 여당 생활을 해오면서 음지보다는 양지에만 길들여진 정치체질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이 총리는 “당보다는 국가와 국민이 우선이라는 평소의 소신” “고위 공직자로서 국가에 대한 무한 책임”등을 JP와의 결별 이유로 제시했다.“정부가 어려운 때에 개혁지속과 대북화해 정책추진, 내년예산안 확정 등을 마무리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온갖 비난에 맞서 나름의 명분을 세운 것이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총리는 일단 현 국면에서 총리직을 유지해야 자신의 대권행보에 유리하다고 판단, JP와 갈라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사실 JP나 DJ, 또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처럼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다.

경기 포천 출신으로 중부권 주자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려 노력해 왔지만 이 지역은 영남이나 호남과 달리 지역색이 옅고, 특정인을 자기지역 지도자로 간주하는 분위기도 미약하다.

이 총리도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총리직을 발판으로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갖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총리직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섭단체마저 무산된 자민련보다는 여권에 몸담아야 잠재적 대권후보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래야만 중부권ㆍ보수를 대표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특장으로 될 수 있고, 현재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신한국당때처럼 9룡의 반열에라도 오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총리로서는 앞으로 정국 변화에 따라 DJP 공조가 복원될 경우도 상정했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자민련측과 원수가 되겠지만, 정치판이 늘 그렇듯 대선국면에서는 민주 자민련간 합당이든 연합이든 어떤식의 합종연횡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격앙된 자민련 측에서 자신을 제명했지만 정치상황에 따라 DJ와 JP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이 주어질수 있는 것이다.

또 자민련에 돌아가봐야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도 감안됐을 것이다. 당에 아무 기반이 없을 뿐 아니라 JP 대망론이 무성한 당을 이끌어가기가 쉽지않다.

자민련의 내부는 한나라당에 경도된 세력, JP대망론을 전파하는 세력, 기타 충청권 비주류 세력 등으로 4분5열된 측면이 적지 않다.

또 연말이나 내년 초 정계개편이 이뤄질 경우 자민련의 존립 여부도 불투명하다. DJP 공조 파기를 계기로 여권과 한나라당의 자민련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애초부터 당복귀는 생각도 안했다”

만일 자민련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문제가 복잡하다. 자민련 총재 사표를 냈지만 당장 대타가 없는 JP로서는 이 총재의 사표를 반려하고 총재로 다시 앉힐 게 뻔하다.

이 경우 이 총리는 얼마 전까지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한 DJ를 공격해야 한다. 한 측근은 “당 사무총장이 명색이 당 총재에게 당내 상황을 제대로 보고도 않는 당이 JP당이지 우리 당이냐”고반문했다.

그는 또 “당으로 돌아갈 경우 얼마전까지 총리로서 머리를 맞대고 국정을 논한 DJ와 각을 세워야 하는 데 그게 가능한 얘기냐”며 “ 애초부터 당 복귀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고 잘라 말했다.

문제는 이 뿐이 아니다. 당 총재로서 교섭단체가 깨진 자민련의 살림을 챙겨야 한다. 총리를 막 하고나온 사람이 기업체에게서 손을 벌려 사무처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정치도의적으로 잔류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이 총리 입장에서는 총리직 잔류를 선언할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진로이다. 일생 일대의 결단을 내렸지만 과연 대권을 향한 가시적인 길이 보이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이 총리는 그동안 민주 자민련의 합당이든 연합이든 여권의정계개편을 전제로 DJ와 JP의 낙점을 받아 대권을 쟁취하겠다는 나름의 포부를 갖고 있었다. DJP공조가 깨졌고 불가피하게 JP와 갈라서기는 했지만이 총리에게 이 구상은 아직 살아있다.

김 대통령에게 충성, 김심을 얻고, DJP공조가 복원되면 여권의 후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설령 DJP공조가 끝내 복구되지 않는다해도 이 총리에게 김중권 대표가 김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비서실장에서 민주당 대표로 간 점도 하나의 참고가 됐을 것이다. 연말 이후 레임덕이 심화하고,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하면 김 대통령은 여권 후보들을 견제하는 또하나의 카드로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재의 이 총리로서는 가장 기대하는 상황일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총리를 주저앉히기 위해 여권이 이총리에게 총리직 플러스 ‘알파’를 확약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간에 잠재적 대권후보 보장 등의 언질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DJ낙점, 독자세력 구축에 총력 쏟을 듯

하지만 이 총리가 기반이 없다는 이유로 자민련 행을 거부한것과 마찬가지로 여권에서도 자신이 뿌리내릴 터전은 여전히 좁아 보인다. 이 총리의 최대 고민이자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래서 DJ의 낙점이라는 단순한 외부 조력에 의지하지 않고, 대권 쟁취를 위한 자력갱생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이 총리의 외곽 측근들에서 신당 얘기가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당장 신당이라는 간판을 걸지 않더라도, 여권내의 보수성향 인사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결집시켜 하나의 세력으로 만든다는 구상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강한 돈 줄이 필요하다. 한 정계 관계자는 “ 이 총리는 한국 정치에서 돈의 위력을 잘 알고 있다”며 “대권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자금 동원력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총리직 잔류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떻게든 자기세력을 꾸려야 대선가도에서 밀리더라도, 생존의 길이 있다. 보수ㆍ내각제론자로서 정치권에서 지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총리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가라앉고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할 연말이후 자력 갱생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한편, DJ의 낙점을 받기 위한 노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한 정계 관계자는 “이 총리는 내년 대선이 자신의 20년 정치생활을 총 결산하는 마지막 기회로 보고, 당락에 관계없이 무조건 대선에 출마한다는 목표로 임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박진용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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