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76)] 시로(城)

일본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어느 지방에서나 크고 작은 성을 만나게 된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에야 일본에 편입된 오키나와(沖繩)에는 '슈리조'(首里城) 등 류큐(琉球)왕국의 성이 있고 홋카이도에도 '마쓰마에조'(松前城) 등이 남아 있어 일본 열도 전체가 성으로 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이 붙은 고유명사로는 한자를 소리로 읽어 '오사카조'(大阪城), '나고야조'(名古屋城) 식으로 부르지만 그냥 일반적으로 성을 가리킬 때는 고유어인 '시로'(城)로 부른다.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에 포함된 히메지(姬路)성은 물론이고 다른 크고 작은 성들이 하나같이 그 지역의 으뜸가는 관광명소가 돼 있다. 박물관이나 역사 자료관을 겸하고 있는 성들이 많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과거 영주의 유품이 관광객들에게 한때의 영화를 이야기해 준다.

일본의 성은 유럽의 성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었다. 도쿄(東京)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등 오늘날 일본의 주요 도시들이 한결같이 '조카마치'(城下町), 즉 성하촌(城下村)에서 발달해 왔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오랜 봉건제도가 남긴 유물이다.

성은 좁은 뜻으로는 건물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대개는 중앙 및 부속 건물, 이를 둘러싼 성곽, 주변의 방어시설 등을 포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의 성이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느 정도의 규모였던가는 현재 황궁으로 쓰이는 에도(江戶)성의 흔적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중심 건물인 '혼마루'(本丸)와 부속 건물, 정원 등을 높은 성벽과 해자가 둘러싸고 그 둘레를 다시 성벽과해자로 보호하고 있다.

바깥쪽의 해자를 '소토보리'(外堀), 안쪽의 해자를 '우치보리'(內堀)라고 하는데 에도성의 소토보리는 현재의 간다(神田)와 긴자(銀座)를 잇는 지역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이런 성이 한 둘이 아니었으니 당시의 경제력이 놀랍다.

이런 구조의 성을 함락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병사한후 1600년 세키가하라(關ガ原) 싸움에서 이겨 천하의 패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1614년에야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秀賴)가 장악한 오사카성 공략에 나섰고 20만의 대군을 동원하고도 6개월만에야 겨우 함락시켰다.

그것도 휴전을 틈타 소토보리와 우치보리를 메우는 술책을 통해서야 가능했다. 지금도 '소토보리, 우치보리가다 메워졌다'는 말은 모든 사전 준비가 끝났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다.

당시 오사카성 공략의 어려움을 전해주는 말이다. 오사카성이 구마모토(熊本)성처럼 성안에 미로가 펼쳐져 있고 성벽이 위로 올라갈 수록 밖으로 휘어진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면 더욱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일본의 성들이 처음부터 이런 난공불락의 모습으로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성곽 건축은 7세기 중반 백제기술자의 지도로 시작됐다는 것이 통설이다.

당시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해 규슈(九州)에서 야마토(大和)지방에 이르는 곳곳에 세워진성은 대부분이 오늘날처럼 평지에 세워진 '히라지로'(平城)가 아니라 '야마지로'(山城)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산성은 외적으로부터의 방어가 유일한 목적일 뿐 히라지로처럼 영지의 관리를 동시에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영주의 거처이자 지역 통치의 중심 기관, 방어 시설 등의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성은 무사들의 패권 싸움이 치열했던 전국시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세워졌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천하통일을 다짐하며 '비와코'(琵琶湖) 옆에 세운 '안도조'(安土城)가 대표적이다.

방어와 통치를 동시에 고려해 교통 요지의 얕은 언덕위에 자리를 잡는 한편 호수를 끼어 수상 교통의 이점을 살렸다.

이후 오사카성이나 나고야성, 에도성 등이 모두 강이나 운하를 끼었고 혼마루에 높게는 50m가 넘는 높이의 '덴슈카쿠'(天守閣)를 설치했던것도 모두 안도성을 모델로 삼았다. 평지라는 방어상의 약점은 거대한 화강암을 이용한 성벽과 해자로 보완됐다.

성과 동시에 조카마치가 계획적으로 건설된 것도 안도성이 출발점이었다. 조카마치는 가신단의 거처와 상업지구가 일체화한 형태로 존재했으며 그 자체가 성의 외곽 방어 기능을 맡도록 설계됐다.

일본의 도시는 17세기초에 잇달아 건설된 조카마치가 조금씩 넓어져 근대화 이후의 본격적 도시화의 길을 걸었다. 그것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의 모습을 가능하게 했다.

입력시간 2001/09/1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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