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보는 사회] 점,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문화코드…

운명철학·전화운세 '돈되는 사업'

맞벌이 가정주부인 한수연(27ㆍ가명)씨는 처녀 시절 친구들로부터 ‘점 노이로제’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자주 점 집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는 소위 ‘잘 나가는’ 직장 여성인 한씨가 원시적(?) 점에 몰입하게 된 데는 말 못할 이유가 있다. 한씨는 1974년생의 소위 말하는 ‘범씨 아가씨’다. 그래서인지 사주를 보면 항상 ‘남자로 태어날 수, 그 중에서도 맏이로 태어날 기가 센 팔자’라는 소위를 늘 듣곤 했다.


궁합 안맞는다고 결혼 반대

그래도 별 생각 없이 지내던 한씨는 당시 결혼을 전제로 한 남자를 사귀게 됐는데 그만 남자 집의 어머니가 사주를 본 뒤 ‘궁합이 좋지 않다. 자식에도 단명 수가 꼈다’며 반대하는 상황에 부딪쳤다.

한씨는 ‘시부모 될 사람이 저런 반대를 딛고 살기는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그 남자와 헤어졌다. 이후 한씨는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함께 장안에 용하다는 점쟁이들은 모두 찾아갔다. ‘혹시나 다르게 사주가 나오는 곳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남자를 소개 받기 전에는 몰래 궁합을 본 뒤 만나는 장소에 나갔다. 한씨의 이런 오랜 방황은 현재의 남편을 만나면서 가시기 시작했다.

외국계 벤처회사에 다니는 남편을 만난 것은 다름 아닌 버스 안. 우연히 출ㆍ퇴근 시에 함께 버스를 타고 다녔던 남편이 한씨에게 반해 전격 프로포즈, 졸지에 결혼에 골인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궁합을 볼 사이도 없이 혼인하게 됐다.

한씨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직까지 남편과의 궁합을 보지 않고 있다. 한씨가 지금 접 집을 가면 으레 들었던 다음과 같은 말을 근거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있다.

“당신은 장남으로 태어날 수요. 그런데 당신은 차녀로 태어났소. 따라서 결혼은 장남과 해서 그 업을 풀어야 하오” 한씨는 그간 적잖은 남자를 소개 받았는데 장남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 장남이다.


신문 고정란으로 대접받는 '오늘의 운세'

국내 유수 종합 일간지와 스포츠신문에서 매일 빠지지 않고 실리는 고정란이 있다. TV 프로그램과 날씨, 그리고 바로 ‘오늘의 운세’ 코너다. 이처럼 운세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흥미를 끄는 관심 분야다.

‘첨단 과학 문명의 시대에 웬점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은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이런 심정적 의존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해방구’라는 강남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가면 일명 ‘사주 카페’라는 특이한 찻집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곳은 말 그대로 차를 마시면서 개인 사주나 궁합, 토정비결, 꿈 해몽 같은 운명을 봐주는 카페다.

이곳에서는 주인이 직접 역술을 공부해 점을 봐주거나 용하다는 역술인을 고용해 점술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개 사주나 궁합은 5,000원에서 1만원으로 기존의 운명철학관들 보다 훨씬 저렴해 인기가 높다.


사주 카페 주 고객은 20대 여성

사주 카페를 찾는 손님들의 주된 고객은 20대 여성들이다. 이들에겐 주로 애정이나 진로 문제가 주된 관심사다. 최근 취업 전쟁이 가속화 되면서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을 털어 놓는 손님들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1980년대 중반에 처음 생긴 사주 카페는 현재 압구정동에 20곳, 이화여대 인근 신촌에 10여곳,그리고 대학로에 4~5개가 운영되고 있다.

압구정동 토탈오즈스타 닷컴의 박근희(25)대표는 “카페를 찾는 손님 중 80% 정도가 점을 보기 위해 오는 손님들이 정도로 ‘운세’라는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로 특화 함으로써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며 “단순히 카페 운영에 그치지 않고 점과 인터넷의 결함을 통해 인터넷 사주 방송국과 사회 사업에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주 카페와 함께 최근 급속히 확산되고있는 것이 전화를 이용한 실시간 운세 상담 서비스다. 요즘 일간지나 스포츠 지면을 보면 ‘유명 점술인과 일대일 운세 상담을 해줍니다’고 하는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주로 700, 600, 800번이나 0600, 060번으로 시작하는 이 전화 서비스는 한 회사 당 20~30명의 전문 역술인을 통해 일대일 상담으로 운세를 봐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개 30초 단위로 900~990원(10% 부가세 별도) 정도의 이용료를 받는다. 역술인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세분화돼 있을 뿐 아니라 사무실까지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어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700 서비스 거센 점바람에 수입 짭짤

이 전화 운세 상당 서비스는 지난해말부터 데이콤에서 처음 실시하면서 늘기 시작해 지금은 한국통신 하나로 통신 온세통신 등 4대 통신 사업자들이 모두 간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역술인들이 모여 만든 것이 아니라 4대 기간 통신망 사업체로부터 회선을 임대해 전화 정보 사업을 하는 IP업자들이 새로운 사업 아이템의 하나로 상업화 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점보는 사회] 점,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문화코드… 궁합·사주·운명철학·전화운세 '돈되는 사업'

올해 초까지만 해도 IP사업자가 많지 않아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렸으나, 지금은 50여개 업체가 난립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이 사업의 수익금은 30초당 990원 정도하는 상담료가 전부다. 회사 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개 990원의 상당료 중 350원을 해당 역술인이 갖고 나머지는 IP업자가 갖는다.

전화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는 최모라는 역술인은 “능력급제라 역술인 개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개 월 150만원이상은 무난히 벌 수 있다”며 “특히 이 일은 전화만 있으면 재택 근무를 하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여성 점성가들이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국컨텐츠사업연합회의 한관계자는 “전화 운세 상담서비스는 기존의 음란 정보 서비스가 각종 정부 규제 강화로 쇠퇴 하면서 지난해말부터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부상한 분야”라며 “현재까지는 확산 추세에 있지만 앞으로는 운세의 정확도와 신뢰성이 차후사업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운명 카운셀러라 불러다오”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이미 운세 사업은 돈 되는 아이템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대부부의 포털 사이트들이 운세 코너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전문적으로 운세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수십여 사이트에 달한다. 최근에는 역술인이나 무속인들도 개인 사이트를 만들어 온라인 운세 상담을 하고 있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재미 삼아 보던 역술이 이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점쟁이’라 불리던 역술가나 무속인들은 이제 스스로를 ‘운명 카운셀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 더욱 부흥하는 역술 사업. 그것도 역술업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입력시간 2001/11/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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