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사랑과 섹스, 그 이중적 잣대의 모순


■섹스 중독자의 고백

국민 소득과 영화 수준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영화일수록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의 영화에 그려지는 사회상이나 사람들의 생각은, 60년대에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과 유사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의 영화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결혼관, 가족관, 성 정체성, 낯선 직업 등을 볼 수 있어, 우리도 저렇게 바뀔지 모르니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최근 다소 신기한 심정으로 보았던 영화를 꼽자면, 존 슐레진저의 2001년 작 <더 넥스트 베스트 씽 The NextBest Thing>이다. 게이인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이 "남편이 아닌 아이 아버지 노릇만 해도 된다면 한 집에서 살아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친구로서나, 아이 아버지, 한 인간으로서 완벽한 이 게이를 이성으로 대하게 된 여주인공은, 밤마다 남자 애인을 만나러가는 아이아버지를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결혼 신고를 하지않고, 아이를 위해 부모 노릇만 하는 이들을 부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원제목대로 최선을 택할수 없을 때의 차선인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물 은 <엘리의 사랑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연속출시되고 있는데, 극중 재판 사건들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부적절한 관계>편에서, 한 남자와 두 여자가 공동 가정을 인정해달라는 재판을 청구한다.

중년의 변호사는 아내, 두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있던 중 다른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이혼을 하고 새로운 여인과 결혼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으며, 더구나 새 여인으로 인해 아내와의 성 관계가 더 좋아졌음을 알게된다.

두 여인도 어느덧 친구가 되어, 새로운 여인이 임신을 하자 그 여인의 난자를 아내에게 착상시켜 세 사람의 아이를 낳는다.

이러한 사례는 경제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비가 새는 단칸방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는 새로운 가족 형태와 행복 추구는 불가능할테니까. 섹스 중독증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셉 브럿츠만의 2001년 작 <섹스 중독자의 고백 Diary of a Sex Addict>(18세, 콜럼비아)을 들어보자.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 요리사 혼(마이클 데스 바레스)은 아름다운 아내(로잔나 아퀘트)와 어린 아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길거리 창녀, 술집에서 만난 여자는 물론 자기 레스토랑의 젊은 요리사, 단골 고객, 이웃집 여자, 처형 등 닥치는대로 관계를 맺는다. 아내와의 관계는 사랑이지만, 이들과는 섹스 관계일 뿐이라며 거칠게 대한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아내가 속이 훤히 보이는 야한 레글리제 차림으로 유혹을 하자 몹사 화를 내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두 세계를 너무 자주 오가던 혼은 정숙하기를 바랬던 아내를 바깥 여자 대하듯 거칠게 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염증 때문에 드나들던 병원에서는 아내가 에이즈에 걸렸다지 않나. 혼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마저 망치고 있음을 깨닫고 정신과 의사(나스타샤 킨스키)를 찾는다.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섹스 행각을 털어놓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Pleasure와 Happiness의 차이를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독에 빠진 몸은 4개월의 정신과 치료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를 알아내지 못한다. 임신한 아내에게 용서를 비는 혼의 얼굴에는 비굴의 그림자만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사랑보다 섹스에 대한 욕구가더 강해지는 것도 지나치게 배부른 탓 아닌가.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11/1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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