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편'이 아닌, 인권의 '틀'마련이 과제

인터뷰/ 인권위 김창국 위원장

“인권위원회는 피해자와 피소 기관 양측으로부터 욕을 얻어 먹을 수 있습니다.” 12월 1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9층 국가 인권위원회 위원장실.

인권위원회 출범 6일을 맞아 열린기자회견에서 김창국(61) 위원장이 건넨 말이다. 독립적 국가 기관으로 인권만을 전담하도록 한, 국내에서는 전례 없던 이 기관이 맞닥뜨린 묘한 위상을 한마디로 압축하고 있다.

세계에서 인권위가 설치된 나라는 40곳. 1993년 UN이 인권위 설치를 권고 사항으로 채택한 뒤, 국내에서 이 문제가 구체화됐던 것은 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인권위원회를 만들어 선진국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5월 1일 UN인권위 회의장에 한국의 인권법 통과 소식이 알려지자, 참석자들은 기립 박수로 새 식구의 탄생을 축하했다. 바꿔 말하면 인권 현실에 관한 한, 한국은 후진국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머물고 말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의 말마따나 “기껏해야 수사 기관에 고발할수 있을 뿐인” 인권위는 가해자를 잡아 가둘 수도, 징계할 수도 없다.


기존 사법기관과의 마찰이 관건

1일까지 직접 방문, 팩스, 이메일 등을 통해 접수된 진정은 모두 750여건. 현재로는 인권 침해 신고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권 선진국형이랄 수 있는 인권 차별 관련신고가 폭주할 것 이라고 실무진은 내다 본다.

실정법적으로 말해서, 인권위는 하소연들을 수사 기관에 ‘고발’하는 선에서 끝난다. “여기서는 잡아 가둘 수도, 징계할 수도 없다. 권력 시스템은 권력 나름대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김 위원장이 말하는 대로다.

“발생 1년 이내이거나 공소 시효가 지나지않은 사건만 취급하도록 돼 있습니다.” 다시말해 해묵은 사건은 관할할 수 없게 돼 있다는 말이다.

고유 업무 침해라는 등 기존 사법기관과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충돌이외에도, 인권위는 매우 구체적인 위험에 직면해 있다. 설립을 앞두고 준비 기획단이 국가로부터 확보한 자금 6억(당초8억 요청)이 11월 24일로 바닥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인권위는 묘한 기억 하나를 갖고 있다. 인권위가 뜬다는 소식이 나오자 일부 언론이 “작은 정부라는 원칙에 어긋나는 또 하나의 기구일 뿐”이라는 식의 태도였다. 행자부의 관점을 언론이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돈 한푼 없는 기구로 전락한 인권위는 기존 공무원 사회의 길들이기 맛을 톡톡히 보았다는 자조어린분석 마저 나오고 있다.

힘없는 신생 기구로서 인권위가 부처 이기주의에 치여 맛봐야 했던 설움 몇 가지.

홈 페이지는 예산을 신청했으나 거부, 자원 봉사로 제작했다. 또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차별에 대한 기준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차별이란 경우에 따라 대단히 미묘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려면 외부 전문가에게 용역을 줘야 하는데 현재로선 이에 대한 예산 항목에도 없는 처지다.

언제쯤이면 문제가 해결될까? “기존 부처의 오해가 사그러드는 날이겠죠.” 실무자의 관측이다.


“인권은 학교 교육 정규과정이 돼야”

현재의 추세라면 인권위는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 안으로, 접수건수가 1,000건은 족히 넘어 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인권위가 생각하는 지상의 과제는? “인권 교육이죠. 교육부와 협의, 인권을 정규 과정에 넣도록 할 계획입니다.” 김위원장이 말한다.

김 위원장은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 1996년 참여연대 공동대표 및 밝은 사회만들기 본부 본부장 등 인권 관련 단체에서 일해왔다. 20년째 해 오던 변호사를 휴업하고 국가 인권위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장 임기는 3년. 인권위는 헌법10조에 명시된 행복 추구권을 보다 구체화, 개인의 기본 인권을 확인ㆍ보장하는 것을 최대의 의무로 한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2/06 19:05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