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추진" 정권 건 정부, "반대" 목숨 건 노동계

철도·전기·가스 민영화 추진에, 공기업 노조 총파업 불사

노동계가 심상치 않다.

IMF 이후 명예퇴직제 도입, 임금동결 등 수세에 몰려 있던 노동계는 올해를 세 전환의 호기로 판단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 8월 국회의원 재ㆍ보선, 12월 대통령선거 등 굵직한 선거를 최대한 활용, 얻을 것은 얻어내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노동계의 최대 이슈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 투쟁과 주5일제 근무제 도입 문제. 철도 전력 가스 등 민영화 반대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공기업 노조들은 총파업 강행 등 정부와 일전을 불사할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동계의 ‘뜨거운 감자’인 공기업 민영화 진행 여부가 올 시즌 노동계의 투쟁 성과를 판가름할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있다. 3년여에 걸친 지리한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부와 노조간의 공기업 민영화 찬반 논쟁의 진실과 진행 상황을 해부 한다.


시장논리냐 공익성이냐

국민의 정부가 추진해온 국가 경제정책의 근간은 구조조정과 개혁이다. IMF의 파고가 한창이던 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DJ 정부(집권은 98년2월)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사회 전반의 부패 관행, 관 주도의 경제 운용으로 인한 비효율, 외국 자본 유입을 막는 폐쇄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대우, 동아그룹 같은 거대 재벌 기업까지 퇴출됐고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는 사라졌다.

그러나 현 정권의 구조조정 작업이 완수됐다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구조조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 부문의 개혁이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8년 7월 정부는 ‘제2차 공기업 민영화 및 경영 혁신계획’에 따라 기획예산위원장을 위원장으로하는 ‘민영화 추진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분할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3년반이 지난 현재 11개의 민영화 대상 공기업 중 한국중공업 대한송유관공사 등 6개사가 진행됐을 뿐 한국전력, 한국통신, 한국가스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핵심 공기업의 민영화는 아직 작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자회사의 경우도 61개 대상 업체 중에 한국가스해운, 한국통신CSC, 노량진수산시장, 한양산업 등 30개사가 민영화 또는 통폐합 됐고, 절반이 넘는 나머지 31개사는 이렇다 할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가 주춤하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노조의 강력한 반발. 민영화 대상 공기업 노조들은 ‘민영화는 공공성을 훼손해 공급 불안과 요금 인상을 초래하고 국부를 유출시키는 망국적인 정책’이라며 극렬 반대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들 노조들은 지난 주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 부문 인력 감축 중단과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에 대한 TV 토론 개최 등을 요구했다.

철도 가스발전 등 6개 공공분야 노조들은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철회하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집단 연대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공기업 노조는 철도와 가스 민영화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되느냐 않느냐가 앞으로 민영화의 진행 여부를 판가름할 시금석으로보고 사활을 건 반대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공기업의 한 노조 간부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겉으로는 시장원리 도입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내걸지만 실제는 미국의 압력에 따라 체결된 한미 투자협정에 따라 진행되는 굴욕 외교의 대표적 사례”라며 “정부는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에너지 통신 교통 등 국가 네트워크 기간 산업을 외국에 팔아 넘기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간부는 “정부는 노조가 고용 불안 등 잇속을 챙기기 위해 민영화에 반대한다고 선전하지만 이는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행위”라며 “노조가 반대하는 이유는 국가 기간 산업이 민영화 될 경우 수혜를 받는 쪽은 민영화된 공기업의 주주들 뿐이며 다수의 국민들은 요금 인상과 공급 불안정 등으로 큰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ㆍ공기업 노조입장 팽팽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등 국책 연구기관에서도 졸속 민영화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 노조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박태준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공익성이 적용되는 국가 기간산업 분야에서 목표 달성을 일컫는 ‘효과성(effectiveness)’이 자원 배분을 가리키는 효율(efficiency)에 우선한다”며 “공기업에 시장 경제원칙을 적용해 경영 효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칫 국가 기간산업이나 필수 서비스 부문이 해외 자본에 마구 매각돼 국민의 삶을 볼모로 잡히게 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무리한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기보다는 정부의 낙하산 인사, 정경유착 등 그간의 내부 비리를 청산하는 쪽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며 “정부와 전문 경영인, 소비자 단체,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공공참여적 전문경영체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KDI 임원혁 연구위원도 “거평의 대한중석 인수에서 보았듯 독점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공기업의 소유권이 단순히 민간에 넘어간다고 해서 경영 효율성의 제고가 이뤄지지는 않는다”며 “실질적인 경쟁 구조가 이뤄지지 않는 현 상태에서의 민영화는 민간사업자의 시장력(market power)만을 높여 공공 요금 인상을 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정부는 ‘기간 산업의 경영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는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의 분할 매각 등 민영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결코 후퇴할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며 오히려 민영화작업의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정부는 노조가 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고용 불안과 민영화 협상 과정에서 더 많은 수혜를 받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당초 원칙에 따라 올해 말까지 모든 공기업에 대한 민영화를 마무리 하겠다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공기업 민영화는 해외 자본을 유치해 국부를 증진하는 효과는 물론 그간 방만하게 운영돼온 공기업의 경영 효율을 높여 국민들에게 낮은 요금에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대상 공기업의 노조가 공공성 훼손 등의 이유로 반대하지만 외국인 소유한도 설정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해 충분히 공공성을 지켜 나갈 수 있다. 실제 외국에서는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영투명화와 재정 건전화를 달성한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같이 사는 지혜 필요한 때

정부는 민영화 외에도 구조조정의 하나로 98년부터 올초까지 16만명의 공기업 인원 중 25%에 해당하는 4만여 명을 감축했다.

또 관광교육원(관광공사) 중계동물류센터(농수산물유통공사)등 227건의 공기업 자산을 매각했으며, 조달 관련 비용 절감과 비리 척결을 위해 전자 구매ㆍ입찰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간 문제가 됐던 20개 공기업에 대해 퇴직금 누진제를 폐지하고 2급 이상 임직원에 한해 연봉제를 도입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부는 공기업 노조의 극렬 반대에도 불구하고당초 계획에 따라 올해 안에 민영화 등 공기업 구조조정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정부와 공기업 노조는 민영화 문제를 놓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펴며 3년반 동안 한치의 양보 없는 대결을 펴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정부와 노조 양측의 주장 사이에서 어느 것이 옳은 해법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제 정부와 노조 양측은 서로를 비방하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 주길 국민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2/28 14:06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