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전설의 시대, 음모와 집착의 역사

■전설의 시대
(안정효 지음, 들녘 刊)

“영화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소금이었고, 앞으로도 내내 소금일 것이다.”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그렇게 영화를 예찬했다.

안씨가 이번에는 영화의 역사 속으로 파고 들었다. 최근 빛을 본 그의 야심작 ‘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의 역사’는 안정효 버전 20세기 영화사이다. 그 첫 권 ‘전설의 시대’는 신화와 설화의 영화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 ‘천일야화 마왕의 사자’ 등 신화와 전설에 근거한 할리우드의 판타지 영화가 왜 우리 시대에 먹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신바드와 해리 하우젠’에서는 모험 영화가 어떻게 발달해 왔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내 소개돼 큰 인기를 끌었던 실베스터 스탤론의 ‘클리프 행어’는 조금만 따져보면 어설프고도 황당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 같은 허구에 열광, 속편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후 그 말은 ‘다음 편이 어서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리게 하는 제작 테크닉’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가 됐다. 이밖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 ‘클리프 행어’류의 영화에 대한 분석이 잇따른다.

의적 영화 ‘로빈 후드’는 세계 곳곳에 아류 영화를 만들며, 영화계의 전설이 돼 갔다. 책은 한국의 경우를 한 장에 할애, 의적 신하가 우리 영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형상화됐는 지를 보여준다.

‘슈퍼 홍길동’ 등 홍길동 시리즈물, ‘옥련공주와 활빈당’ 등 활빈당류가 왜 굳이 1960, 70년대 한국의 영화팬을 사로잡은 이유는 뭘까?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빈부격차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대리만족을 주는 대상이 절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자의 물건을 빼앗아 자기만 챙기는 도둑에게도 ‘대도’라는 존경의 호칭을 붙여주기에 이르렀다고 책은 말한다.

그 대도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있어, 의적들을 담은 영화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고 책은 말한다. 영화는 그처럼 한 시대의 집단무의식이 되고, 상상력을 제공하는 유효한 매개물이다.

‘원탁의 기사’나 ‘엑스컬리버’ 등 중세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일련의 걸작은 집단적 상상력으로서의 영화를 입증하는 사례다. ‘여전사 지나’ 등 여기사들을 다룬 일련의 영화들이 결국 여권의 신장을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은 영화가 사회의 산물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한국 최초의 무성 영화 ‘춘향전’(1922년)에서 시작하는 한국 영화 이야기에는 영화광인 저자가 우리 영화에 대해 쏟아 온 열정이 잘 나타나 있다. 책의 말미에는 ‘온달전’ 등 북한 영화 이야기가 살짝 언급된다. 이 책은 모방작 제작 관행 등 영화 산업의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진지한 접근법에서 여타 서적과 다른 호감을 준다. 특히 제멋대로이기 일쑤인 외국어 표기법상의 원칙을 밝히는 대목이 그렇다. 깜짝 출연(카메오)이나 대배우의 데뷔 당시 단역 등 흔히들 지나치기 쉬운 토막 상식을 밝혀 놓은 대목에서는 저자의 각별한 영화 사랑이 느껴진다.

각 단원 말미마다 관련 영화들을 따로 모아 둬, 영화에 관심 많은 독자들에게는 긴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앞으로 속편 형식으로 계속 발간될 예정이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차장


■음모와 집착의 역사
(콜린 에번스 지음/이종인 옮김/ 이마고 펴냄)

싸움구경을 마다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특히 역사를 주름잡는 욕망과 재능을 가진 영웅들의 싸움이라면 그 호기심과 관심은 한층 커질 수 밖에 없다.

‘음모와 집착의 역사’는 세기를 뒤흔든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등 세계 역사의 10대 라이벌들의 불화와 반목을 한 편의 소설처럼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낸 정치 비화 집이다.

저자는 갈등에 휘말린 당사자들의 성격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당시의 상황을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 갈등 막후의 상황과 불화를 일으킨 진짜 배경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분석, 설명해준다.

16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와 그녀의 고종 사촌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간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25년간에 걸친 갈등과 싸움은 과연 무엇 때문이었나. 겉으론 개신교 군주와 카톨릭 군주사이의 종교 전쟁인 것으로 역사에는 서술돼 있으나 그 실상은 다른데 있었다.

야심만만한 처녀 여왕과 성적 매력이 넘치는 미모의 여왕사이의 질투심과 시기심에 바탕을 둔 개인 감정의 싸움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또 지적이며 정치적인 영향력이 막강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애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이 거리의 깡패들처럼 권총결투를 벌여 결국 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건의 전말과 진짜 배경을 이 책에서 파헤치고 있다.

또한 소련 통치의 절대권력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정적 레온 트로츠키를 추적하는 요시프 스탈린의 철의 장막 뒤에 감춰진 검은 음모와 비정한 암살극을 세밀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밖에도 1963년 11월23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후 린든 존슨과 로버트 케네디간의 치열한 암투와 그 배후의 실상을 다루고 있다.

500년에 걸친 정치적 암투와 정신적 갈등, 가문의 불화 등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실화10편은 그들의 어두운 측면과 함께 그들을 분노와 파괴로 내몰았던 강박적 충동까지 유언비어가 아닌 근거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각 장 마다 서두에 동시대를 살았던 두 라이벌간 불화의 개요와 그들의 강ㆍ약점, 불화의 시기, 싸움의 초점들에 이르기까지, 마치 스포츠 경기 분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전선수조견표’를 통해 상세히 정리해 놓았다.

이 책에 소개된 10편의 라이벌간 싸움은 대부분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최근 우리 정치판에 음모ㆍ음해론이 횡행한 상황에서 인간의 야망과 질투, 공포, 자존심의 실체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하는 기회를 준다. / 장학만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2/03/26 11:4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