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

청풍은 옛 제원군(제천시)의 1개면이었으나 충주댐으로 인해 면 전체가 수몰되어 버린 고을이다. 청풍이란 땅이름처럼 한줄기 ‘맑은 바람(淸風)’이 되어 버린 것일까. 충청도를 흔히 청풍명월(淸風明月)에 비유하는데, 그 청풍이 옮겨가고 명월만 허공에 남은 것일까.

청풍은 제천시의 1개면에 지나지 않지만, 옛 고구려 때에는 사열이(沙熱伊)현이던 것을 신라 때 청풍(淸風)으로 고쳐 오늘에 이른 고을이다. ‘사열이’란 ‘서늘이(冷, 寒, 風)’라는 우리 말이다. 때문에 청(淸), 한(寒), 벽(碧) 등이 붙여진 고을 이름과 누각이 이 고을 곳곳에 남아있다.

고려와 조선조에는 이 곳을 중심으로 군(郡), 현(縣)이 들어서고 도호부(都護府)가 들어섰을 만큼 꽤나 번성했던 고을이었다.

예로부터 이 고을을 찾았던 숱한 선비와 관리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명승인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보물 제 528호)를 비롯하여 금남루(錦南樓), 팔영루(八詠樓) 및 동헌(東軒)과 민가 등 전통 가옥과 건축물들을 이 고을 물태리(신청풍) 어귀 ‘청풍문화재단지’에 옮겨 전통 가옥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민속촌을 이루고 있다. 옮겨 놓은 한벽루 앞에 서니, 문득 고려 고종 때 문장가 주열(朱悅)의 ‘한벽루시’가 새롭다.

‘강물빛 말고 맑아 거울인 듯 아닌 듯(水光燈鏡非鏡)/ 산기운 아른 아른 연기인 듯 아닌 듯(山氣靄靄煙非煙)/ 차고 푸름이 서로 엉켜 한 고을 이루었거늘(寒碧相凝作一縣)/ 이 맑은 바람 만고에 전하는 이 없네(淸風萬古無人傳)’

또 조선 명종 때 문장가 박순(朴淳)은 청풍에 들러 ‘다락위 나그네 외로운 심사/ 강물소리 듣느라 내려 못가네/ 내일이면 또다시 떠날 것인데/ 단풍은 누굴 위해 붉으려는고’라고 읊고 있다.

옛날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던 물굴, 바람굴, 부엉이굴도 모두 물속으로 사라졌다. 안에서 못을 이루어 배가 뜨던 물굴과 봄부터 여름내 가을 바람이 나오고 가을이 깊어 겨울에 이르면 봄바람이 감돌았던 신비의 바람굴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물굴의 물이 청풍에 물을 불러들인 것인가, 아니면 바람굴의 바람이 청풍의 이름 그대로 고을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한 것일까.

빼어난 산수의 용모로 아름다운 이름을 떠받쳤던 청풍고을. 그러나 그 청풍은 지금 물에 잠겨 간데없고, 오직 물태리 산등성이 위에 옮겨 다 꾸며 놓은 박제품 같은 텅빈 가옥에 찬바람만 을씨년스레 부는 청풍이 있을 뿐이다.

온통 사방이 호수로 둘러 쌓인 청풍문화 재단지 망월루(望月樓)에 서면 북으로 금수산(錦繡山)이, 동으로 월악(月岳)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빼어난 절경임을 느낄 수 있다. 이따금 푸르디 푸른 물결을 가르며 유람선이 고요한 산속의 정적을 깰 뿐이다. 조용한 호심 위로 오늘도 한 줄기 서늘한 바람(淸風)이 불어오니 역시 땅 이름처럼 청풍인가 보다.

<사진설명> ‘물이 차오른다’는 물태리에 옮겨놓은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보물 제528호).

입력시간 2002/04/09 15:0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