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개월,시험에 든 한은 총재

박승 총재, 금통위원 중도교체·한은 독립 문제 등으로 안팎 시련

박 승 한국은행 총재는 20여년 전 집에 침입한 강도를 설득해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과 양주 한 병만 주고 그를 돌려 보냈다.

박 총재는 당시 물건을 훔치려고 담을 넘어 들어온 강도에게 “당신에게 강도 짓을 하게 한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잘못이며 나도 책임을 지기 위해 돈을 주겠다”고 말한 뒤 “하지만 전적으로 내 책임은 아니니 반은 남겨놓고 가라”고 설득했다.

그리고 그는 “양주 한 병을 가져가겠느냐”고 물었다. 강도는 “쌀과 옷 보다는 양주가 났다”며 양주를 갖고 총총이 사라졌다.


재경부 인사전횡 인식, 노조 극력반발

5월1일로 취임 1개월째를 맞는 박 총재가 안팎으로 고민에 휩싸였다.

한은이 최근 강영주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임기중 교체(증권거래소 이사장 선임)와 관련 직원들이 ‘직원일동’이라는 명의로 정부의 금통위원 중도교체에 대해 반대하고 나서면서 박 총재 역시 조만간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총재는 취임 당시 정부와의 관계를 ‘견제와 협력’이라고 규정했지만 한은 직원들에게는 이번 중도교체가 재정경제부의 인사전횡으로 비쳐지고 있다.

특히 한은 직원들이 별도의 발표자료를 통해 금통위원 중도교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1998년 ‘한은법 파동’이후 처음이다. 이번 발표가 총재ㆍ부총재 등 임원진이 개입되지 않은 국장까지의 의견이라는 점에 박 총재에게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다.

임기 4년의 금통위원이 잔여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두고 중도 교체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금통위의 독립성을 무시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한은 측의 주장이다.

한은노조는 4월19일부터 변성식 노조위원장 등이 단식농성에 돌입하는 등 정부의 금통위원 인사에 깊이 관여하는 것과 관련 강력하게 반발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측은 조만간 새로 임명될 금통위원에 대한 출근저지 운동을 벌이는 한편 6월로 다가온 한은 창립기념일을 맞아 대대적인 ‘한은 독립’운동에 나설 태세다.

그러나 박 총재의 고민은 내부의 설득작업에 더 모아지는 분위기다. 그는 현실적으로 금통위원 6자리중 3자리를 재경부 및 옛 경제기획원 출신에게 내어주어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직원들이 이해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한편 취임이후 거침없는 발언으로 관심을 모아온 박 총재의 직설화법에 대해 금융계 일부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많다. 박 총재의 “시장은 금리인상을 대비해야 한다”는 식의 명확한 메시지는 순기능도 있지만 정책 선택의 폭을 좁히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동성 과잉과 자금의 단기화, 이로 인한 자산가격 급등 등 금융시장 여건을 고려하면 금리 인상이 적절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수출과 투자가 확실히 살아날 때까지는 금리인상을 늦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와 재계 역시 일단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콜금리 인상 여부에 관심 집중

박 총재는 이와 관련 “(정부측과) 지엽적인 견해차는 있지만 항상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어 거시경제에 대한 시각차가 크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한은이 앞장 서서 금리인상 논리를 펴 선거 이후 경기가 만에 하나 후퇴한다면 그 책임을 한은 스스로가 져야 할 것”이라며 “금융은 깨지기 쉬운 계란과 같은데 총재의 발언수위는 건설 행정가라는 전력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도 현상을 놓고 임박한 금리인하 발표와 경제 수장들의 색깔 차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5월2, 3일로 예정된 금통위 회의에서 과연 그 동안 박 총재의 발언처럼 우리경제에 ‘술 한 병’을 선뜻 내 주듯 콜금리 인상이 단행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학만기자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2/05/03 13:44


장학만 주간한국부 @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