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학문의 혁명적 전환에 대한 모색

■ 지식의 최선전
김호기 등 52인 공동집필
한길사 펴냄

저질이라던 대중문화가 홀연히 고질(高質)이 되고, 영원히 고상한 것같던 인문학이 어느날 개똥이 됐다. 사이버 게놈 인간복제 디지털 나노 IT 등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경하기 짝이 없던 용어와 개념들이 미래의 현신인양 판을 치는가 하면 다른 한 켠에선 LP 교복 대폿집 등 복고풍에 열광하고 있다.

또한 보수의 등식 같던 여당이 북한에 추파를 던지고 진보와 민주의 상징이던 야당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딴죽을 거는가 하면 망가진 자존심에 속앓이를 하다 이민까지 꿈꾸던 국민이 축구에 취해 눈물까지 흘리며 대한민국을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뭐가 뭔지…지식과 학문은 대답할 수 있으려나. ‘네’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식의 최전선’에 참여한 52인의 전문가들은 “변화가 현실이라면 이를 진단하는 동시에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 지식과 학문의 본연의 사명”이라며 담대한 도전을 시도했다.

권두언을 쓴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 세 사람은 “변화를 수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통찰, 기존의 관념 틀을 벗어나 그것에 대적하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기획할 수 있는 대안 모색이 오늘날 지식과 학문의 최전선을 이루고 있다”며 “이 책은 바로 이 혁명적 전환을 주도하려는 지식의 최전선, 그 학문적 전투의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대학교수부터 영화감독에 이르기까지 52명의 필자가 참여해 만든 이책은 크게 8개의 주제 아래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첨단과학 예술 및 대중문화 등 29개 분야 70편의 글을 통해 학문적 쟁점을 소개하고 전망을 곁들였다.

‘네’라는 약속을 이 책은 지킨 것일까. 글쎄, 애는 썼지만 다루어야 할 분야가 워낙 많은 탓에 괜찮은 현대문명 개론서에 머문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활화산 같은 현대 지식의 역동성을 진지하고 꼼꼼하게 추적한 노작이다. 이 책에는 미덕이 있다. 방대한 내용을 최신 지식을 중심으로 712쪽에 짜임새 있게 꾸몄다. 정치학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주요 학문적 쟁점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의 기본적인 지식을 사전처럼 빨리 그리고 쉽게 얻을 수 있다. 각 단원의 끝에 정리한 참고서적과 볼만한 인터넷 사이트가 제법 쓸모 있다.

국내의 많은 연구자들이 팽팽한 현실감을 전방위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수확이다. 그러나 자생적인 한국식 연구 틀이 아닌 외국의 이론이나 모델, 그래서 다소 어색해보이는 접근법도 있다. 그만큼 우리 연구자들이 더욱 분발해야 할 구석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경철 차장

입력시간 2002/06/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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