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108)] 술을 약으로 만드는 지혜

수소폭탄주 중성자탄주 정통폭탄주 드라큘라주 박치기주 비아그라주..., 대한민국의 폭탄주는 무려 80여가지. 지금도 어디에선가 새로운 폭탄주의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폭탄주 문화는 이미 세계화된 문화상품이다. 한국인을 상대로 사업을 하거나 한국 사람과 친해지려 면 외국인도 폭탄주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은 이제 국제활동가들에게는 상식이 되었다.

유래 가 어디든 간에 폭탄주의 확대 재생산과 생활화에 성공한 대한민국.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술 을 덜 마시기 위해 폭탄주를 마신다는 슬픈 변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독증상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 출세할 생각을 말아야 하고, 조직의 단합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술 본위의 저 급한 폭탄주 문화.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우리나라 남성의 사망원인 중에 술로 인한 위암과 간암이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화 속에서 술은 만병의 근원이며 죽음을 재 촉하는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100살이 넘는 장수노인이 마신다는 한 잔의 반주에서 '술도 잘 마시면 보약'이 된 다는 엄연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적은 양의 술은 스트레스 해소 뿐 아니라 오히 려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는 전래하는 약술이 적지 않다. 현재 식물과 동물을 이용한 약술, 전래하는 토속주, 광물질 술 등 소위 약술로 분 류할 수 있는 술은 수백 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술은 술뿐만이 아니라 병을 다스리는 하나의 생활 약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약술이 대체의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과학도 술의 약효에 대하여 증명하고 있다. 특히 하루 한 두 잔의 붉은 포도주가 심장 병 예방에 좋다는 것은 이제 일반화된 지식이다. 때문에 한 때 포도주 매상이 치솟기도 했 지 않았던가. 그리고 맥주도 적당히 마시면 성인병 등 각종 질병의 예방에 좋다는 등 술의 약효 또는 예방기능은 입증된 사실이다.

특히, 가장 최근에는 호주 한 과학자가 하루 4잔의 술은 노인성 청력 상실을 예방할 수 있 다는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기도 했다.

호주의 맥과이어 대학교 필립 뉴올과 메리안 골딩박 사는, 1997년과 1999년 사이에 서부 시드니에 거주하는 55세 이상 노인 2천명을 대상으로 식습관과 음주 습관, 관련된 의료 및 청력과 관련된 기록, 조사 당시의 청각능력 그리고 소 음 노출에 대하여 조사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하루 4잔을 꾸준히 섭취한 사람은 노년기에 청 력 상실의 빈도가 감소했으며, 더 적은 양을 마신 사람도 감소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하루 4 잔 이상이 되면 역효과가 나타나 청력 상실의 빈도가 증가했다고 한다.

뉴올 박사는 이 결 과에 대하여, 알코올이 심혈관 기능을 개선하기 때문으로 추정했다. 즉 알코올이 귀의 털 세 포에 혈액 공급을 개선하여 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술도 잘 이용하면 약이 된다. 더구나 약술의 지혜까지 가진 조상을 두고도 폭탄주라는 어처구니없는 문화를 양산한 우리들.

신학기마다 대학가에 부는 술의 광풍, 새내 기들을 목표로한 광란의 술잔치 신고식. 사망사고까지 발생할 지경이니, 방송의 어느 공익광 고처럼, 잘못된 술문화는 우리 조상들이 제대로 물려주지 못한 가장 안타까운 문화 중 하나 가 아닌가 싶다.

술을 약으로 대하는 겸손한 음주문화가 폭탄주 문화를 이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2/06/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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