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광장의 문화를 보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실린 국민의 염원이 ‘광장의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코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먼저 세계가 놀랐고 이어 우리가 스스로 놀랐다.

에어컨 바람 속에서 느긋이 즐길 수도 있었지만 전 국민의 30% 에 이르는 1,326만 명이 거리 응원이라는 지독히 원시적인 방식을 택했다. 사이버 문명에 대한 아날로그의 대반격이다.

3ㆍ1 운동, 4ㆍ19 혁명, 5ㆍ18 민주화 투쟁 등 한국 현대사가 증언하는 ‘광장’이란 곧 피의 함성이었다. 그러나 12번째 선수들은 우리도 축제와 질서가 함께하는 새로운 광장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레드 콤플렉스는 악마들의 함성에 달아난 지 오래다. 레드 신드롬을 거쳐 이제는 레드 마케팅까지 왔다.

북미 원주민 콰큐틀 인디언에게는 포틀라치(potlatch)라는 독특한 소비 의식이 있다. 출생ㆍ사망ㆍ성인식 등 통과의례를 다른 부족에게 알리기 위해 축제를 벌인 후 쓰고 남은 음식이나 예물은 모두 파괴해 버린다.

인류학은 이것을 재화의 많고 적음으로 초래된 불평등을 축제의 형식으로 해소한다는 의미로 본다. 포틀라치가 인류학적 사건이라면 붉은 악마 현상이 그렇게 되지 못 할 이유란 전혀 없다. 이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는 6월 23일 ‘붉은 비상(red alert)’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붉은 악마들에게 뒤끝은 없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는 1980년대의 표어는 이제야 참 주인을 만났다. 서구 제국주의에 편승, 한때 세계를 잠식했던 일본을 제외한다면 이번 월드컵은 진정한 아시아 세계가 자생적 힘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올라가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잡다한 인맥을 끊어 버리고 공정함과 소신으로 가치를 공유해 나간 거스 히딩크 감독은 신선한 리더상으로 한국인을 사로잡았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구호를 일부 국민의 즉흥적 발상으로 몰아 부칠 수 있는 정객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올림픽 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서울 올림픽 직후 열렸던 5공 청문회가 그랬듯 이번 월드컵이 극단적 정치 불신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2002/06/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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