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유일 강국 자격 없다"

공격적 일방주의에 우방들도 분노, 가치있는 국제사회적 공헌 요구

조지 W 부시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유일 강국의 지위에 합당한 역할을 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절대 우위의 경제와 군사력에 바탕한 ‘일방주의’ 외교 노선은 갈수록 이런 의구심을 부추기고 있다. 9ㆍ11 테러를 미국의 ‘오만’이 낳은 ‘자업자득’으로 해석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 다트머스대 행정학과의 스테판 브룩스, 윌리엄 월포스 조교수는 격월간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최신 호(7ㆍ8월 호)에 발표한 ‘유일 강국 미국의 전망’이라는 글에서 미국의 현 위상과 그 역할을 분석했다.

브룩스 교수 등은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현 유일 강국 체제는 과거의 강대국 경쟁 체제보다 세계 문제를 더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으며 미국은 그에 걸 맞는 한 차원 높은 시각을 갖고 이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글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포린 어페어스' 미국의 위상과 역할 분석

3년 전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고독한 슈퍼 파워’라는 글에서 유일 강국 체제를 ‘복수의 강대국 없이 하나의 슈퍼 파워와 한 차원 낮은 다수의 영향력 있는 국가들’로 구성된다고 지적했다.

이 체제에서 유일 강국은 중요한 국제 문제를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고 다른 국가들이 연대하더라도 그 행위를 막을 수 없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로는 그럴만한 능력도 없고 또 그만한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미국이 외부의 공격에 얼마나 취약하며 해외의 반미 감정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 9ㆍ11 테러 이후 이 같은 시각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이 앞서 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 강국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이런 행동을 지속할 것이며 그것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분석하는 일이다.

미국의 지배력은 여러 분야에서 쉽게 드러난다. 미국의 내년 국방 예산 규모는 차(次) 상위 15~20개 국의 국방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다. 핵 무기는 물론 공군과 해군력에서 미국은 다른 어느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전세계에 걸쳐 군사 작전을 펼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해마다 독일이나 영국의 전체 국방비보다 많은 첨단 군사 기술 연구ㆍ개발(R&D)비를 쏟아 붓는 미국은 정보 기술 개발과 원격 조준 타격 기능 향상 등에서 결코 다른 나라들이 넘볼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

현대사에서 이만큼 다른 나라를 압도할 군사 능력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이런 이들을 위해 미국이 들이는 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고작 3.5%이다.

경제 역시 현대사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절대 우위에 있다. 미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라는 일본의 2배이며 캘리포니아 주만 따져도 프랑스보다 앞서는 세계 5위 규모다. 1999년 세계 직접 투자의 3분의 1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같은 군사ㆍ경제력의 바탕에는 앞선 기술력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의 R&D 지출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한 통계에 따르면 1990년 말 미국의 R&D 지출은 경제력이 수위에 있는 다른 7개 국가 R&D 지출의 합과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금의 국제 체제를 결정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미국이 이런 모든 분야에서 동시에 우위에 있다는 점이다. 대영 제국이 전 세계를 휘어잡듯 했을 때 통상과 해군력에서 다른 나라를 앞선 것은 사실이나 인구나 재정, 전체 군사 규모에서는 프랑스와 러시아에 뒤졌다.

냉전기의 미국이 우세한 경제력과 해ㆍ공군력을 보유한 것은 사실이나 지금과는 달리 옛 소련 역시 당시에는 미국과 맞먹을 군사력을 지녔다.


미국 독주, 전형적 강대국과 달라

미국이 독주하는 현 상황은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강대국의 모양새와 다르다. 동서와 남북을 따져봐도 주변에서 미국을 위협할 나라는 없고 미국 역시 이웃을 겁줄 이유가 없다.

늘 침탈의 위협에 시달렸고 때로 정복의 야욕에 불탔지만 주변국을 완전히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던 합스부르크가나 나폴레옹, 냉전 시대의 옛 소련과 지금의 미국은 다르다.

과거의 세력 균형이란 나라들이 서로 강대국으로 힘을 키우는 것을 견제하면서 현상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절대 우위 자체가 현상이다. 수개의 주요 국가들은 미국의 견제 세력이라기보다는 미국과 결속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다.

새로운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국가를 억제하려는 세력은 있지만 현재의 헤게모니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의 대항 세력으로 곧잘 거론되는 유럽연합(EU)이나 중국은 각각 합의 집행이라는 현실적인 의사 소통의 한계나 미국에 비해 아직은 너무 낙후한 실정이라는 이유로 가시적인 적수에 들지 못한다.

심지어 외형으로 미국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를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조차 뜯어보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두 나라가 손 잡는 구석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힘의 균형’이라는 수사가 현실로 존재하는 ‘감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외치는 나라들조차도 국제 문제나 일부 지역의 갈등, 심지어 국내 문제에까지 미국이 어느 순간에는 개입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대영 제국의 권위에 독일이 도전하면서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이나 미국을 향해 옛 소련이 군사ㆍ이념으로 맞서면서 생겨난 냉전 상황이 재연할 가능성은 없다. 헤게모니를 다투는 적수가 부재하고 상황을 오판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9ㆍ11 테러를 두고 어떤 사람은 유일 강국이 필요한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테러리즘은 영원히 인류 역사와 함께 해온 문제다. 20세기 주요 강국의 지도자들도 무정부주의자들이 저지른 암살을 막아 낼 재간은 없었다.

복수 강국 체제로 되돌아 가는 것은 현 상황에서 국가간의 대립으로 생기는 테러리즘을 추가하면서 그 상황에 대처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 낼 뿐이다.


주변국 자발적 협조 막는 '독주'

미국이 마음 먹은 대로 행동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관대하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일방주의는 당장 수확을 낼 수는 있지만 결국 주변국은 자발적인 협조를 줄이고 말 것이다.

유일 강국 체제에서 미국은 불량배 두목이 될 수도 있지만 국내라는 좁은 관심을 넘어 장기적으로 세계 문제에 관심을 두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이 공격적인 일방주의를 견지할수록 우방들의 분노가 커진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결국 가치를 발휘한 건 ‘힘’이 아니라 ‘영향력’이다. 시선을 멀리 잡으면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환경, 질병, 이민, 세계 경제의 안정과 같은 문제들이 보인다.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도 미국은 관세 인하 등 여러 조치로 줄 수 있는 혜택이 많고 이는 해당국의 미국 이미지 개선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최근 “세계의 빈곤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지금 미국은 혼자서도, 전세계와 함께도 움직일 수 있다. 오늘 이득을 좀 덜 볼 생각을 하면 내일 수확은 더 클 것이다.

김범수 기자

입력시간 2002/06/30 14:47


김범수 bs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