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배신의 계절,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대통령 아들 비리, 다국적 제약사의 압력, 마늘 협상 은폐 의혹 등과 관련, 당시 장관들과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국정의 세세한 사항까지 모두 보고를 듣는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은 국정에서 중요한 부분만 결정하고 구체적 사항은 장관과 참모에게 일임한다. 장관과 참모는 대통령의 이 같은 신임을 바탕으로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추진한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장관과 참모들이 과연 대통령의 신임에 걸맞게 재대로 업무를 수행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문제를 볼 때 전혀 보고 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 대통령이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사전에 보고를 듣지 못했다고 발언한 것을 보면 청와대 참모들과 사정 및 정보기관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청와대 민정 수석실은 국정원을 비롯해 경찰청 등을 통해 대통령 친인척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비리 등을 내사하며 문제가 있으면 즉각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김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가 친구들인 김성환 유진걸씨 등과 함께 강남의 모 룸살롱에게 1주일에 2~3차례 술을 먹고 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뇌물을 받았는데도 이를 포착한 사정기관은 하나도 없단 말인가.

또 시중에는 이미 이 같은 소문이 파다했는데도 민정 수석실은 아무런 조사 조차하지 하지 않았단 말인가. 2000년 이후 대통령 아들 비리 보고 책임선상에 있던 인물은 대통령 비서실장인 한광옥, 이상주, 전윤철, 박지원씨 등이며 민정수석 비서관은 신광옥, 김학재, 이재신씨이다.

또 담당 비서관은 이재림, 김현섭씨이며 국가정보원장은 임동원, 신건씨이며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은 최성규, 김길배씨이다. 이중 최성규 총경은 미국으로 도주했다.

지난 7ㆍ11 개각에서 물러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다국적 제약사의 압력으로 장관직에서 퇴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측은 당시 대통령에게 약값인하 문제를 보고하려 했으나 청와대 참모진이 이를 제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 이 전장관은 왜 건강보험의 재정 압박 요인이 되는 약값 문제를 대통령에게 끝까지 보고조차 못했단 말인가. 장관직에 그렇게 연연했단 말인가. 물러난 후 떠들면 무슨 소용인가. 또 만약 이 전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역시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은 세력이 있었던 셈이다.

한중 마늘 협상의 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통상 교섭 본부장이었던 한덕수 청와대 경제수석과 농림부 차관보였던 서규룡 차관이 물러났다. 박선숙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이들의 책임을 물었다며 당시 협상의 자세한 보고는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00년 7월 중국과의 마늘 협상에서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 가드)가 3년간만 유지된다는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 ‘2003년부터 수입 자유화한다’는 핵심사항을 누구의 결정으로 은폐 시켰느냐는 점”이라며 “한덕수 전 경제수석 등 실무 책임자를 희생양 삼아 넘어갈 문제가 아니며 협상 은폐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는 당시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모든 협상방침을 정했고, 농림부에 합의문을 보내 김성훈 전장관이 서명까지 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전장관은 “당시 3차례의 경제장관회의에서 세이프가드 연장불가 방침을 논의한 바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마늘처럼 농촌의 민감한 문제를 농림부 장관이 과연 잘 몰랐을까. 한나라당은 “최소한 당시 보고라인에 있던 대통령 보좌진들은 모두 책임져야 하며, 특히 은폐의 최종책임자가 누군지 규명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레임덕 상황에 빠졌다고 대통령 측근 인물들 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현재 청와대 비서진들 중 상당수는 제 살길을 찾아 청와대를 빠져나갔다.

배신의 계절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 백악관 참모들은 대통령과 함께 임기를 같이한다. 결국 모든 책임은 이들을 믿고 중요 직책을 맡긴 대통령에게 있다. 정말 인사가 만사이다.

이장훈 부장

입력시간 2002/07/29 14:1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