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금발의 꽃뱀, 인터걸 24時

'코리안 드림' 쫓아 입국 러시안걸 5천명

‘러시안 걸’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욕심에 불나방처럼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퍼져있는 러시아 윤락녀(인터걸)는 약 5,00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인형 같은 외모에 늘씬한 몸매까지 갖춰 남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러시아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워 유리방, 출장마사지 등 각종 윤락업이 성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반 주택처럼 위장한 후, 러시아 윤락녀가 접대를 하는 ‘기사방’까지 성행하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신종 윤락이 판을 치고 있다.


이태원 등 환락ㆍ유흥가 헤매는 ‘히빠리’

8월 22일 새벽 1시 속칭 ‘러시아 거리’. 서울 이태원 소방서 뒤쪽에 포진해 있는 이곳은 이태원에서도 ‘러시안 걸’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쭉쭉빵빵’ 러시아 여성들의 몸매를 감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조명을 따라 어렵게 R외국인 전용클럽으로 들어가 보았다. 클럽 내부는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남녀가 어울려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늘씬한 외국인 무희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클럽 밖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요염한 포즈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모습이 이곳 저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쪽에서는 지나가는 여성들을 상대로 추파를 던지는 외국 남성들도 눈에 보였다. 20년째 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모(57)씨에 따르면 이태원에서 이같은 모습은 흔하다.

김씨는 “저러다 맘이 맞으면 어디론가 간다”고 말한 뒤, “외국 사람은 그렇다고 치지만 한국 사람까지 몹쓸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중에서도 유독 눈에 띠는 여성들이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은 아니었지만 조각 같은 이목구비와 몸매 탓인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이 여성들은 클럽을 나와 소방서 사거리 방향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이들을 따라 두 명의 외국 남성이 따라붙더니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모범택시 기사에 따르면 이곳에서 이들은 ‘히빠리’ 혹은 ‘나까이’라 부른다. 정처없이 떠돈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주로 자정 넘어서부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남자를 엮어 어디론가 사라진다”고 귀띔했다.


배후엔 조폭, 전문직 출신도 윤락행위

이들이 하룻밤 화대로 받는 금액은 보통 10∼15만원선이다. 러시아 초등학교 선생님의 월급이 3∼5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입이다. 이곳에서 만난 레나(24)라는 여성에 따르면 수입이 좋기 때문에 간호사, 약사, 교사 등 전문직 출신들도 한국으로 넘어와 윤락행위를 하는 경우 많다.

물론 이들의 배후에는 항상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의 러시아 여성들은 예술흥행비자(E-6)로 한국에 들어온다. 때문에 이들의 입국 과정에는 브로커가 관여하는 게 업계의 관례다.

요컨대 현지 송출회사가 러시안 걸을 모집해 한국에 있는 기획사에 사진과 간단한 이력서를 전달한다. 기획사는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 등을 검토해 적당한 여성을 선택한다. 소개비는 보통 300만원 선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온 러시아 여성들은 특별 관리를 받으며 유흥업소에 취업하게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갖가지 불이익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 이태원 C클럽의 한 관계자는 “드물긴 하지만 단독으로 행동할 경우 조폭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경찰에 신고할 경우 다음날로 강제출국 당한다”고 귀띔했다.


전국으로 확대되는 활동무대

눈에 띠는 점은 러시아 걸들의 활동무대가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종전까지만 해도 러시안 걸들은 이태원, 동두천 등 외국인이 많은 곳이나 강남 등 유흥가를 선호했다. 그러나 경찰의 집중 단속으로 점차 본거지를 수도권 일대 신도시나 지방으로 옮기고 있다.

인천 R단란주점의 김모(29) 상무는 “종전에는 손님이 부르면 인천이나 안양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그러나 요즘은 수도권 일대에 아예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국적으로 222곳의 외국인 전용 클럽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는 으레 러시아나 필리핀 여성들이 상주해 있다.

유흥가를 떠나 주택가로 스며드는 경우도 많다. 신종 윤락형태인 ‘기사방’이 바로 그런 경우다. 기사방은 기사 딸린 자가용으로 직접 데려 오기 때문에 붙여진 예명이다. 기사방의 내부는 다과방과 침대방으로 나눈다. 다과방은 손님과 윤락녀가 분위기를 돋우는데 사용한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하면 침실로 들어가게 된다.


신종 윤락 기사방, 회원제 운영

방이나 거실의 인테리어는 최고급으로 꾸미기 때문에 30∼35만원 정도로 조금 비싼 편이다. 그러나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라는 게 경험자의 귀띔이다. 친구를 통해 기사방을 경험했다는 김모(33)씨는 “겉은 가정집처럼 꾸며져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다”고 설명했다.

기사방은 또 철저하게 회원제 형식으로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김씨는 “회원에 가입하려면 한번 이용한 손님의 추천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인터걸 쇠창살 갖힌채 박봉 시달려

‘코리안 드림’을 쫓아 한국에 온 러시안 걸 상당수가 수입의 75% 정도를 착취당하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경찰청이 최근 법무부의 협조를 받아 조사한 결과 국내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은 1만여명. 이중 5,053명(7월말 현재) 이상이 러시아 및 필리핀 국적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가 화대의 절반 이상을 유흥업소 업주나 알선업체가 가져간다. 때문에 한달 내내 몸을 던져 일하고도 5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하고 있다.

생활 환경도 문제다. 외국인 윤락녀들이 몰려있는 동두천 보산동의 경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3평 남짓한 방에 4, 5명이 모여 살고 있다. 환기가 잘되지 않아 방에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일부 업소의 경우 윤락녀가 도망갈 경우를 대비해 쇠창살까지 설치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5월 미국 폭스TV는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 윤락녀들의 비참한 생활을 방송했다. 당시 방송국 게시판에는 ‘어글리 코리안’을 외치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한편 경찰청은 조만간 영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인권 지킴이’ 봉사단을 구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외국 윤락녀들의 고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계획이다.

경찰청 방범과의 한 관계자는 “외국 여성에 대한 착취 사례가 계속해서 나갈 경우 어렵게 쌓아올린 국가 이미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외국 여성에 대한 착취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2002/08/2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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