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패트롤] "손절매가 수익을 창출한다"

증시 전문가 1세대 엄도명 닥스넷 사장

수많은 이론과 돌발 변수들이 끊이지 않는 주식시장. 이곳에서 수익을 얻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머리와 순발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흔한 생각이다. 헌데 이런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버린 사건이 올해 초 증권가의 화제가 됐다.

바로 내로라 하는 국내 펀드 매니저 4인방들과 침팬지가 벌인 수익률 게임. 도중에 게임자체가 흐지부지 끝났지만 승자는 놀랍게도 침팬지였다. 과연 침팬지의 투자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KOSPI200와 KOSDAQ 50에 속한 우량주들의 종목번호가 적힌 탁구공을 임의로 3개씩 집어 종목을 정한 것이다. 이에 반해 펀드 매니저들은 자신의 분석에 따라 투자종목을 골랐다.

이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한 가지. 주식 투자는 자신만의 기본 원칙만 있으면 침팬지도 수익을 낼 수 있다.


기본 지키고 정도 가는것이 투자비법

닥스넷의 엄도명 소장(그는 자신을 사장보단 소장이라고 부르는 걸 더 즐거워한다)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가 생각하는 주식 투자의 비법은 투자의 기본을 지키고 정도를 가는 것이다.

“전 유치원생의 지적 수준으로도 선물이나 주식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선물은 더욱 그렇지요. 선물이란 오르기 아니면 내리기거든요. 매수를 했을 때 지수가 상승하면 끝까지 상승 흐름을 타서 최고의 이익을 내고, 지수가 하락하면 얼른 손절매를 하면 손실을 최소한으로 방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런 단순한 원칙을 거꾸로 한단 말입니다. 참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죠.”

엄 소장의 또 다른 답답함은 주식시장이 한국판 라스베이거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뚜렷한 투자원칙과 철저한 자기 절제 대신 한탕의 대박을 꿈꾸는 투자자들이 넘쳐나면서 거대한 도박장으로 변질됐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요즘 선물이나 옵션 시장은 국가가 공인한 도박장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아무 생각이나 느낌 없이 무모한 베팅을 하고 있어요. 선물이나 옵션은 장난삼아 치는 고스톱과는 달라요. 고스톱 치면서 패가망신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선물이나 옵션은 조금만 잘못해도 패가망신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대로 엄 소장은 증권가의 1세대다.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곳은 한일합섬의 기획실이었다. 그러나 기획실 업무보다 주식투자에 매력을 느낀 그는 주경야독으로 주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국내 최초의 증권 서적인 ‘실전주식투자’를 발간해 명성을 얻었다.

“책을 발표한 뒤에 증권협회에서 발행하는 시세일보에 연재를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대학 선배이신 대유증권(현 브릿지 증권)의 배창모 사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증권가에 정식으로 입문하게 되었죠.”

처음 맡은 업무는 기획, 조사 업무. 점점 일이 익숙해지면서 그는 하루의 주식시장 전망과 종목 추천을 신문 형식으로 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엔 1주일동안의 주식 시장 상황을 알려주는 주보만 있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모험일 수 있었지만 회사에선 그를 믿고 ‘데일리(일일시황지)’를 ‘일보’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행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 소형 증권사였던 대유증권이 일보를 내자 20여개의 다른 증권사들이 6개월도 안돼 일보 발행에 나섰을 만큼 그가 냈던 일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당시 증권사 영업부 여사원들은 엄 소장의 일보를 얻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설 정도였다.

“제가 만든 이후로 속속 증권사들이 따라서 내기 시작했어요. 아직까지도 모든 증권사가 제가 처음 만든 그대로 주요 목차를 정하더라구요.”


증권정보업 새 장 연 연구소 설립

이렇게 시황전문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그는 오랜 꿈이었던 자신의 이름을 건 증권 연구소를 내기 위해 증권사를 떠나기로 했다. 1989년의 일이었다. 회사를 나온 뒤, 엄도명 증권 연구소를 설립하고 ARS 전화상담, PC 통신을 이용한 증권 정보 제공, 인터넷 사이트 오픈 등을 통해 증권정보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흔히 저를 증권 정보 산업의 개척자라고 얘기하는 데 그게 다 금전적 필요에서 나온 겁니다. 처음 연구소를 설립할 때 자금이 많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회원들을 모집해서 제가 증권사에서 썼던 시황보고서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 서울 지역에 배달을 했죠.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필요한 자금을 모을 수가 있었죠.”

최근엔 독자적인 시스템 트레이딩을 이용한 선물 매매 사이트인 닥스넷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선물 투자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선물은 무엇보다 기술과 투자 원칙이 중요해요. 하지만 기술이나 원칙은 아주 간단해요. 상황이 유리하게 될 땐 끝까지 따라 가서 이익을 극대화 시키고 상황이 불리하면 얼른 손절매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통제가 중요해요. 조금만 이성을 잃으면 깡통차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현물이야 주식쪼가리라도 남지만 선물은 정말 빈털터리가 되는 거에요.”

무엇보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엄 소장은 선물만큼 정석적인 투자방법이 필요한 건 없다고 얘기한다.

“저희 사이트에서 선물을 매매하는 펀드 매니저들을 모집한 적이 있는데 지망한 사람들의 경력들이 화려했어요. 펀드 매니저에서 아마추어 고수라고 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는데 결국엔 모두 몇백만원 손해를 보고 그만두더라구요. 헌데 딱 한 사람 꾸준히 이익을 본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제 딸이에요.

그 아이는 선물에 대해 잘 모르니까 제가 가르쳐 준 시스템 매매 원칙을 철저하게 지킨거죠.(웃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확실한 투자 원칙을 가지고 매매 타이밍만 잘 지켜낸다면 전문가보다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 투자자들은 자신의 투자 성향을 빨리 파악해서 원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대박주 선호는 위험한 게임

선물 투자 외에 그가 선호하는 주식은 외국인이 선호하는 우량주들. 외국인들은 종목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엄청난 공을 들이기 때문에 우량주 중의 우량주만을 고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백개 종목 중에서 외국인들이 매수하는 주식들은 불과 2,30개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흔히 투자자들은 작전주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전 작전주와 우량주를 토끼와 거북이에 비유하고 싶어요. 토끼는 속력이 빠르기 때문에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자신의 발만 믿다가 결국 느린 거북이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주식 투자도 마찬가지에요. 대개 주가 상승이 급상승하는 종목일수록 하락도 그만큼 빠르고 깊습니다. 차라리 상승은 느리지만 하락폭도 작고 안정적인 우량주에 투자하는 것이 결국엔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작전주나 대박주만을 선호한다. 한마디로 ‘가늘고 길게 먹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먹는다’는 얘기다. 그는 이런 조급증이 투자 실패는 물론 깡통의 지름길이라고 단정한다.

“한 예로 제가 전화 ARS 상담을 했을 때에요. 전 우량주 매수야말로 정석투자라는 확신에서 투자자들에게 우량주 만을 추천 종목으로 내세웠어요. 그랬더니, 한 통도 상담 전화가 오지 않더라구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누가 우량주 좋은 걸 모르냐. 그것보다 한번에 많이 먹을 수 있는 작전주를 소개해달라고 그러더라구요.”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시장 분석과 투자 전략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 고독한 작업을 벌이는 그에게 최근 지원군이 생겼다. 바로 아버지의 뒤를 이은 훌륭한 애널리스트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현재 동원투신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는 아들 준호씨다.

“처음에 아들이 애널리스트가 되겠다고 얘기했을 때 제가 아내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는지 몰라요. ‘그 힘든 일을 당신이나 하지 왜 아들에게 대물림 하냐’는 불만이 대단했죠.”

그러나 나중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아버지의 뒤를 밟을 것이라고 결심했다는 아들의 고백에 결국 아내는 손을 들고 말았다. 이제 한 길을 가는 부자는 매일 오전 6시에 서울 화곡동 집에서 여의도까지 같은 승용차로 출근하면서 증시상황과 향후 주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엄 소장은 아들이 미국 증시 분석을 담당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장세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 아들의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된다고 웃는다.

“주식은 귀신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이는 잘못된 말입니다. 주식은 올바로 분석하고 뚜렷한 원칙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적정한 대가를 주는 재테크 수단이에요. 우리 개미 투자자들도 자신의 원칙을 뚜렷이 세우는 것이 성공 투자의 제 1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오유경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2/12/2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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