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사이버 공포 시대

“기사 송고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마감 전쟁을 치러야 하는 일요일인 1월26일 오전, 주간한국에 기사를 보내기로 한 한국일보 편집국 선배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유일한 휴일이었던 전날, ‘인터넷 불통’이라는 한낮 뉴스 속보를 별반 대수롭지 않게 접한 터였다. 순간 이런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인터넷이 불통돼도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 시간, 주간한국은 물론 한국일보 편집국 전체가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인근 KT 혜화전화국의 DNS서버가 정지된 여파였다. 몇 십분 쯤 지났을 무렵 전산실이 내놓은 해법은 명쾌했다.

“문명의 이기를 포기할 수밖에요.” 기사작성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기능 설정을 제거하고 ‘원시적’인 전화 접속 방식을 택하는 것이었다. 이마저도 안된 편집국 기자들은 아예 허겁지겁 노트북 가방을 짊어지고 회사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이 다시 살아난 건 오후 2시 무렵. 여기저기서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휴일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인터넷 불통의 파괴력은 무서울 정도였다. 항공사 여행사 철도청 등은 인터넷을 통한 예매와 결제가 이뤄지지 않아 시민들의 발길을 묶었고, 대목인 설 연휴를 목전에 뒀던 수백 곳의 인터넷 쇼핑몰은 된 서리를 맞고 손해배상 소송에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업무 상, 혹은 개인적인 이유로 e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주요 문서를 주고 받아야 했던 이들은 뜻밖의 사태에 낭패를 겪어야 했다. 짧게는 10시간, 길어야 24시간 동안의 ‘대란’에 전국 2,000만 네티즌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사이버 테러일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인터넷 망을 타고 번진 ‘SQL 슬래머’라는 웜 바이러스가 ‘주범’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졌지만, 정작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아왔던 ‘사이버 대란’이 결코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는 것이 아찔할 뿐이다.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컴퓨터 바이러스 하나가, 혹은 뛰어난 해커 한 명이 전 세계를 파탄으로 몰아갈 수 있는 공포의 시대에 살고 있음이 입증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기사작성 프로그램의 해법처럼 인간들이 수많은 편리를 안겨주는 인터넷을 포기하고 ‘원시 상태’로 돌아갈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1/30 11:06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