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8마일

우리시대의 위대한 백인래퍼 마샬 마더스의 자전적 스토리

감독 커티스 핸슨 (Curtis Hanson)하면 누군지 잘 모를 테지만 그의 대표작들을 보면 ‘아! 그 감독’하면서 무릎을 칠 것이다.

그의 대표작은 캘리포니아 썸머 캠프 (Losin' It, 1983), 요람을 흔드는 손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1992), 리버 와일드 (The River Wild, 1994), LA 컨피덴셜 (LA Confidential, 1997), 원더 보이스 (Wonder Boys, 2000) 등이고, 그중에서도 ‘요람을 흔드는 손’과 ‘LA 컨피덴셜’은 우리가 재미있게 본 영화로 기억한다.


■ 2003년 02월 21일 개봉/ 18세 이상/ 드라마/ 미국
■ [네티즌] ★★★★
■ 감독 :커티스 핸슨
■ 출연 : 에미넴, 킴 베이싱어, 브리태니 머피, 메키 파이퍼,
유진 바이어드, 오마 벤슨 밀러, 태린 매닝
■ 각본 :스콧 실버
■ 제작 :커티스 핸슨, 브라이언 그레이저, 지미 러빈
■ 음악 :에미넴

그가 만든 최신작 ‘8마일’은 개봉이전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우선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속칭 ‘흑인들의 나와바리’인 랩음악계에서 최고의 랩퍼(랩가수)로 군림하고 있는 에미넴(Eminem)이 출연하는 영화라는 점이다.

커티슨 핸슨 감독은 ‘8마일’과 관련한 버라이어티지와의 회견에서 “에미넴에게서 오늘날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적인 투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그것은 분노, 불안, 좌절, 그리고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감독의 말은 이 영화가 에미넴이라는 가수의 자서전적 영화로 제작된 이유를 대변한다.


뛰어난 작품성 인정

감독에겐 미안하지만, 한 가수의 자서전적 영화라고는 해도 에미넴의 인기가 워낙 대단하고, 또 본인이 직접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무턱대고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실 에미넴의 명성과 인기는 이 영화를 집어 삼키고도 남을 것이다.

인기 가수든 스포츠맨이든 그 인기를 등에 업고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 혹평을 받고, 그로 인해 인기를 깎아먹기도 하는데 영화 <8마일>은 작품성 면에서 거의 만장일치의 호평을 듣고 있어 ‘2월 외화 라인업’의 마지막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8마일’은 지난해 11월 미국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으며 1월 개봉한 영국에서도 흥행 선두에 오르는 등 음반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가요계가 랩에 점령당한 한국 역시 이 열기의 대열에서 예외일 순 없다. 2월 5일 대한극장에서 열린 국내 언론 시사에서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국내에서도 에미넴의 인기돌풍을 실감케했다.

때문에 영화 ‘8마일’을 논해야 할지 에미넴을 논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냥 에미넴에 대해 이야기 하면 자연히 영화 이야기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그는 어떤 사람인지를 중심으로 보도록 하자.

에미넴이라는 이름은 물론 가명인데 본명인 마샬 마더스(Marshall Mathers)의 이니셜 M&M을 소리나는 대로, 발음하기 편안 대로 만든 이름이다. 그는 생후 6개월 때 아버지가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가출하는 바람에 어머니와 가난에 찌들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흑인의 영역에서 인정받기까지

힙합에서는 백인이 그렇게 많지 않다. 과거에 힙합을 추구했던 백인들은 결국 조롱과 농담의 대상이 되어 힙합계에서 ‘물러나거나’-Vanilla Ice(바닐라 큐브), Marky Mark(마키 마크), 자신만의 독특한 요소를 합하여 본래의 힙합과는 좀 변형된 형태로 성공을 거두는 경우 - Beatie Boys(비티 보니즈)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에미넴은 다르다. 백인이면서도 인종을 불문하고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는 서부갱스터랩의 전성기를 이끈 프로듀서겸 랩퍼 닥터 드레(Dr. Dre)가 앨범 전체의 프로듀싱을 맡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에서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초 발매하여 큰 성공을 거둔 그의 앨범에서는 4개의 싱글곡들이 들어 있고 다른 여러 힙합퍼들의 앨범에도 참여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그는 래퍼의 꿈을 잃지 않았는데, 14살 때 그는 디트로이트에서 ‘솔 인탠트’라는 그룹을 결성해 힙합클럽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피부색 때문에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실력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는 96년 ‘인피니트’(Infinite)라는 솔로앨범을 내놓았으나 ‘나스’스타일을 따라 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참패를 맛보았다. 이 앨범의 참패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는 등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후 그는 ‘슬림 샤디’란 이름의 새 랩스타일을 개발, 9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랩 올림픽 프리스타일에서 2등을 차지했다. 그 대회 수상경력으로 그는 LA에서 스웨이(Sway)와 Tech(테크)가 진행하는 유명한 라디오쇼인 ‘Wake Up Show’에 초청받았고 여기서 그가 보여준 랩은 방송국의 관객들, 호스트 그리고 라디오쇼를 듣던 청취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중에는 유명한 프로듀서 닥터 드레도 끼어있었다. 에미넴의 실력에 감명을 받은 닥터 드레는 그를 자신의 애프터매스 (Aftermath) 레이블에 소속시켰다. 97년 말 언더그라운드에서 Slim Shady EP를 발매했고, 수록곡 는 어두운 가사와 그의 독특하고 과장된 하이톤 랩스타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또 샤반 사딕크 등 다른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함께 녹음한 <5 Star Generals>가 크게 히트하여 언더그라운드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그의 이름은 미국의 뉴욕, 로스앤젤레스를 가로지르는 동서부 전체를 비롯하여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99년 2월 많은 기대 속에 그의 앨범 Slim Shady LP가 발매되었고, 이 앨범은 빌보드차트에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후 승승장구.


랩가사 대부분이 자신의 이야기

그의 앨범은 랩가사의 90%가 자신의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울한 분위기에 비난과 비아냥, 그리고 분노와 증오로 표현되어 있다. 또 이 표현 방식에 있어 ‘미성년자 절대 금지’라는 딱지가 붙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엽기적이며 반사회적이나, 특유의 코믹함과 재치를 더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치밀함을 갖추었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10대 시절 에미넴은 친구들 사이에서는 랩 실력을 인정 받고 있었지만 정작 무대 위에서는 운이 없었다. 작은 대회에 나가기 전 화장실에서 긴장을 풀고 있던 에미넴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변기에 토하기도 한다. 옷에 토사물을 묻힌 채 무대로 나간 에미넴.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메모지 만을 만지작거릴 뿐…. 자신의 현실처럼 구겨진 종이 속에 적어둔 수많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가사들, 그리고 손에서 배어나오는 땀. 자신을 이기지 못한 그는 무대에서 단 한마디도 못하고 거친 야유와 함께 내려오고야 만다.

하지만 그는 세간의 야유와 비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극복하고 서서히 가슴속에 담아왔던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 그리고 절규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믿음대로 영혼을 담아 읊는 진정한 래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거짓 분노가 아닌 진정으로 분노한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위에 쏟아놓음으로써 무대를 휩쓰는 에미넴. 마지막 장면에서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져가며 나오는 주제곡 lose yourself은 가슴을 파고 드는 써늘한 느낌을 안겨준다.

윤지환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2/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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