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그후 1년] 땜질처방은 그만, 사전예방책 세워라

지지부진한 복구사업, 요란벅적한 수방대책

6월14일 토요일 오전 중앙재해대책본부 상황실. 행정자치부 장ㆍ차관과 부서장 등 50여명의 직원들이 모였다. 2003 여름철 수해방지대책 보고회. 올 여름 기상 전망과 수해방지 대책, 그리고 지난해 수해복구 마무리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김두관 행자부장관은 기상청장과 최첨단 ‘기상영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영상 통화를 시연해 보며 ‘만반의 준비’가 이뤄졌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기도 했다.

다시 장마가 코 앞에 닥치자 공무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중앙 부처에서, 혹은 각 지자체 별로 하루가 멀다 하고 대책 회의를 갖고, 도지사나 시장 등은 헬기나 관용차를 타고 공사 현장을 두루두루 순회하고 있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예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재난관리 전담청을 신설키로 하는 등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헌데 수해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 수방 대책은 주먹구구 식이고, 복구 사업은 지지 부진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공무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실속은 없을 거라는, 그래서 또 뒷북을 치게 될 일이 한 둘이 아닐 거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기상청은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전국이 장마 전선의 영향권에 들고 7월에는 장마 전선에서 발달한 저기압의 영향으로 지역에 따라 폭우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게다가 8월에도 남쪽에서 다가오는 저기압과 태풍의 영향으로 2,3차례 집중호우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주먹구구식 뒷북 행정으로는 해마다 거듭되는 수해를 올해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상 왜곡하는 복구 진척율

수해 복구 공사 진척률을 묻는 질문에 공무원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도로나 하천 등이 조금 미흡할 뿐 거의 대부분 완료됐습니다.” 6월말 장마가 오기 전에 공사를 끝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게는 힘들겠지만 수해 취약 부분은 우선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거다”는 답변이다.

수치 상으로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하다. 행정자치부가 6월15일 현재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주택은 총 대상 8,714동 중 8,338동(95.7%)이 복구가 완료됐고, 농경지는 총 대상 1만6,858㏊가 모두 복구됐다. 도로, 하천 등 공공시설은 3만9,524건 중 2만8,396건(71.8%)의 진척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치가 실상을 왜곡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다. 지난해 수해 피해가 워낙 컸던 탓(피해 규모가 6조원이 넘었다)에 아직 복구되지 않은 30%의 공공 시설은 결코 만만히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완전히 유실됐던 1㎞ 도로 중 이제야 기껏 700m가 복구됐다는 의미였고, 강릉 지역의 경우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으니 도시의 30%는 아직도 공사 중이라는 얘기다.

강원도청 한 직원은 “하천 제방이나 하상 공사 등은 단 1~2%의 복구 지연에도 엄청난 화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사가 늦어진 것이 꼭 공무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워낙 피해가 컸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최대 피해지였던 영동 지역의 경우 수해에 이어 폭설, 그리고 다시 적지않은 봄비에 제대로 공사할 겨를도 없었다.

보상을 둘러 싼 분쟁도 한 원인이었다. 강릉 강동면사무소 장동준씨는 “지역 주민들이야 장마가 오기 전에 하루 빨리 공사가 이뤄지길 원하지만 땅을 소유하고 있는 외지 사람들이 보상 금액을 올려달라며 민원을 제기해 공사가 중단된 곳이 허다하다”고 했다.

돈이 부족해서, 혹은 인력과 자재가 부족해서이기도 하다. 강원 지역의 경우 시ㆍ군들이 공사 과정에서 수해 복구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행정자치부에 총 1,300억원 가량의 복구비 추가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강릉시청 방제계 최종호씨는 “워낙 많은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공사가 이뤄지다 보니 인력이나 자재가 달려 감당하기 힘들다”며 “게다가 단순 복구 공사가 아닌 개량 복구 형태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추가 소요 예산이 적지 않은데 중앙 정부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전 예방만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는 공무원들의 ‘남의 탓’ 타령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제도의 문제이고, 공무원들의 인식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 폐쇄성이 낳은 인력난 문제다. 국립방재연구소 이재준 소장(금오공대 토목공학과 교수)은 “일선 시ㆍ군에서는 인력난을 외부 요인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제 그들의 지역적 폐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방 하천 등의 경우 하천 정비 계획을 수립할 때 해당 지자체에 등록된 회사에게 우선 입찰권을 주고 있다”며 “각 지자체가 지역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이나 인력, 자재 등이 뒷받침되지 않는데도 공사를 수주하게 함으로써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상을 둘러싼 갈등도 결국 주먹구구식 체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해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극성을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주민들이 이번 기회에 보상을 많이 받겠다는 심산으로 떼를 쓰기도 하고, 지자체 역시 보상을 많이 받아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에 피해 액수를 부풀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땜질식 대책이 갖는 한계에 있다. 수해가 나고, 폭설이 내리고, 지하철 참사가 나도 경각심을 갖는 건 그 때 뿐이다. 사전 예방 보다는 사후 대책에만 초점이 맞춰진 탓이다.

이 소장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며 사전 예방의 필요성에 대해 목청을 높였다. “자연 재해로 인한 복구 사업은 단기간에 끝날 수 없습니다. 교량이나 저수지 축조 등은 최소 2~3년이 걸리기 마련이죠. 수해가 일단 난 후에는 재정이 뒷받침된다 해도 다음 장마철까지 복구를 마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기대 사회과학부 송태호 교수 역시 정부의 안일한 수방 대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수해가 난 다음에 뒤늦게 차량을 통제한다 인력을 동원한다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후약방문 격이지. 게다가 중앙 정부는 중앙 정부 대로, 지방 정부는 지방 정부 대로 대책을 수립한다고 수선만 요란하게 떨지 않습니까. 자연 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간, 그리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간 유기적인 연결 시스템이 절대적입니다.”

복구 사업에 생색을 내며 100억원을 투입할 거라면 그의 절반인 50억원만 사전 예방 사업에 투자한다는 인식만 갖고 있어도 수해는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6/18 15:27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