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 모습.ⓒ연합뉴스
20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오전 6시를 기해 근무를 중단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 앞 모습.ⓒ연합뉴스

정부는 올해 시행되는 2025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의사 인력 확대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정책과 그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로 수도권 대형병원의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근무를 중단함에 따라 병원의 수술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면서 사회적으로 ‘의료 대란’에 대한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의과대학 정원과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을 발표해  매년 400명씩 증원, 이후 10년간 총 4000명의 의료인력을 늘리려고 시도한 바 있었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은 총파업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 10월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 2월 1일, 여덟 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지금이 의료개혁을 추진해 나갈 골든타임"이라며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개혁을 일부의 반대나 저항으로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인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의료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나타냈다.

의료문제를 해결할 ‘4대 정책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 네 가지의 큰 방향이 제시됐고, 그중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매년 2000명의 의대 증원을 강행하려는 것이다.

의대 정원 증가의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한국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교할 때 상당히 부족한 수준이다. 이대로 간다면 2035년에는 의사 1만5000명 정도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내놓은 ‘의사인력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8명으로 OECD 평균의 58% 수준이다. 2025학년도부터 전국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1500명 늘려 매년 4558명을 뽑는다면 2035년에는 1000명당 의사 수는 2.99명이 된다. 그런데 OECD 31개 회원국의 경우, 연평균 의사 증가율을 유지한다면 평균 4.45명이 된다. 우리나라가 1500명씩 늘려도 OECD 평균의 67.2%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저출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2만2000명 이상의 의사가 추가 배출돼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의 5%를 증원해야 2050년까지 필요한 의사 인력이 배출된다고 분석했다.

의료 인력이 부족해 생긴 의료 서비스의 부재는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다. 특히 의료인력이 부족한 데다 특정 전공에 대한 선호가 겹쳐서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실제 의대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는 소위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으로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에 따라 생사가 달린 환자들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과의 붕괴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수익성이 좋은 과로 인력이 몰림에 따라 그렇지 않은 과는 법정 인원보다도 부족한 실정이다.

인기과 편중으로 인한 문제도 심각하지만,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도 큰 문제다. 지난달 제 1야당 대표가 부산에서 피습당했고, 즉시 서울로 이송해 치료받았던 사건이 벌어지면서 지방 의료서비스에 대한 신뢰부족과 의료수준 격차 논란이 다시 점화됐다. 지역간 의료인력만 봐도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병원급 의료기관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서울은 1.7명이지만, 세종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모두 1명 이하다. 게다가 지역 간 의료 격차는 향후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2022년 기준 임시 사망률 통계에 따르면, 지역 격차가 1.34배에 이른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은 지역 간 의료 수급 격차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지방에서는 병상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해 응급실만 돌다가 사망에 이르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산간 벽지가 아닌 광역시, 지방 중소도시에서도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심각한 상황에 처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정도로 한국의 의료서비스 부족, 지역 간 격차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가 매년 2000명 의대 증원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지만, 이번에도 의료계의 반발은 거세다. 의료협회는 이미 지난해 12월 총파업에 관한 회원 설문조사를 마쳤고, 파업 시 현장 파급력이 더 큰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최근 설문에서 응답자의 86%가 의대 증원 강행 시 집단행동에 나설 의사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19일에 이른바 서울의 빅5 병원 전공의 상당 수가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보건복지부는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하면서 강대강 충돌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의대 증원만으로는 우리나라가 직면한 의료 시스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의료인력이 충원돼도 인기과 쏠림 현상, 수도권 편중이 지속된다면 그 심각성만 더해갈 뿐 문제의 뿌리는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대생을 늘리면 심각한 전공의 미달 사태를 빚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에도 지원자가 늘어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기대되기는 하지만, 졸업 후 자신의 전공이 아닌 일반의로 개업하는 추세를 봤을 때 낙수효과에 의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지역 의대의 전공의들은 절반가량이 수도권으로 빠져 나간다. 대학병원 응급실이나 상급병원도 진료 과목을 매일 운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비수도권의 의사난이 심각하다. 단순히 의대생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보다 먼저 의대 증원정책을 시행한 일본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2000년대 7000명대였던 의대정원을 2010년대 8000명대, 2023년에는 9300명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일본도 피부과, 성형외과 등 인기 과목이 있고 도시를 선호하는 경향은 있지만, 의사 부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며 지역 상주를 조건으로 의사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지역의사제' 등을 활용해 의사 수를 증가시켰다.

의대 증원과 더불어 지역 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일본 나가사키 현의 제도는 바람직한 방향의 사례다. 나가사키 현은 지역 출신이나 지역에 남겠다는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 장학금을 받은 의대생이 지방에 그대로 남는 비율은 95%가 넘는다. 추가 정책을 통해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는 오히려 의대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한 이유는 의사가 많아지면서 의료서비스도 늘어나자 정부의 보험재정 지출부담이 커진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상황을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단순히 의대 증원만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 패키지는 장기적인 의료체계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세부 정책들로 보충, 정부가 더욱 꼼꼼하게 로드맵을 구성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의료계가 원활한 협의 하에 건설적인 의료개혁이 진행되기를 희망한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국민들 76%가 찬성하고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의료계가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2020년 당시의 의료계 투쟁방식은 이번 2024년에는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끝으로 이번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본인들이 의대 졸업 당시에 다짐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다시 떠올리길 바란다. 제네바 선언에 담겨있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11개 구절 중 특히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라는 구절에 입각해 행동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시급한 수술과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을 외면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명백히 어긋나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 조하현 연세대 교수 프로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 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 상경대학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경제가 사회현상 뿐 아니라 정치적 흐름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경제의 광범위한 영향력과 다채로운 파급효과에 대한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하현 연세대교수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