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3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후반전 주민규가 교체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3차전 한국과 태국의 경기. 후반전 주민규가 교체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지난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태국과의 월드컵 2차예선 홈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한 주민규(33)를 향한 박수와 환호는 뜨거웠다. 단순히 국가대표 데뷔전을 가지고 좋은 활약을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2부리그 연습생 선수로 시작해 두 번의 K리그 득점왕을 거쳐 33세, 343일로 최고령 국가대표 데뷔 신기록을 세웠다는 영화 같은 스토리를 아는 이들이 보낸 박수였다. K리그 신인 드래프트 미지명 후 2부리그 최하위팀 연습생으로 시작해 K리그 100골을 넘긴 득점왕, 그리고 최고령 국가대표까지. 주민규의 굴곡진 인생사는 지켜보는 이들에게 많은 의미와 감동을 남긴다.

드래프트 미지명서 득점왕, 국가대표까지

대신고를 거쳐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2013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지명을 당연히 예상해 드래프트장에 입을 양복을 살까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주민규는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서 끝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는 그의 부모님이 갑자기 일이 생긴 주민규를 대신해 갔다. 그는 이후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부모님께 그렇게 큰 상처를 드렸다보니 이후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일보다 힘들지 않았다”고 회상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드래프트도 뽑히지 못하고 번외지명, 즉 연습생 신분으로 지금은 사라진 K리그2의 고양Hi에 입단한 주민규. K리그2에서도 최하위 팀인 고양에서 프로 낭떠러지 앞에서 죽을 듯이 훈련하는 선배 선수들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렇게 서서히 출전 기회를 받은 그는 서울 이랜드로 이적한 후, 기존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공격수로 변신한 그는 2015년 23골이나 넣으며 단숨에 K리그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는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공격수로 기량을 키워갔고 이후 울산 현대, 제주 유나이티드 등을 거치며 K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인정받았다. 2021년 그는 21골을 넣으며 31세 나이에 첫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2022년에도 조규성과 함께 K리그 최다골(17골)을 기록했다. 이어진 2023 시즌에서도 17골로 두 번째 K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지난 3년 연속 득점 1위를 차지하며 K리그 최고 공격수임을 기록으로 증명했다.

계속된 ‘국대 발탁설’에 상처 많았던 주민규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국가대표 발탁설은 끊이질 않았다. 당장 2015년 23골을 넣었을 때 당시 울리 슈틸리케 대표팀 감독이 그를 발탁할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는 외면당했다. 이후 신태용, 파울루 벤투,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까지. 국가대표 감독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는 더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량이 더 만개해 득점왕을 두 차례나 기록했으니 당연한 여론이었다. 하지만 어떤 감독도 그를 호명하지 않았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공격수에게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요구하는 현대 축구와는 다른, 박스안에서 강점을 보이는 유형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황선홍 임시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황 감독은 그에 대해 “선수로서 여러 능력이 필요하지만 득점은 또 다른 영역”이라며 “지난 3년간 50골 이상 넣은 공격수인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라고 깔끔 명료하게 정리했다.

그 누구도 아닌 황선홍 감독이 말한 것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 황 감독은 A매치 50골로 차범근(58골)에 이어 한국 역사상 두 번째로 국가대표로 골을 많이 넣은 선수였다. 월드컵에서 2골을 넣고 한국 선수 최초 외국리그(J리그)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전설적 공격수였던 황 감독이 인정한 공격수 후배인 셈이다.

‘국가대표’ 주민규의 의미

그는 국가대표 선발 이후 “솔직히 말하자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다보니 결실을 맺어 뿌듯하다”며 “가족들이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난 견딜 수 있었다. 부모님은 자식이 최고고, 아내는 남편이 최고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는데 포기하면 안 됐다. 가족들의 꿈을 이뤄주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버텼다”며 그동안 수많았던 ‘대표팀 발탁설’ 끝에 진짜 국가대표가 된 소감을 밝혔다.

또한 비록 MVP 2위에 그쳤지만 첫 득점왕을 차지했던 2021시즌, 그는 K리그 MVP 투표 전 스포츠한국을 통해 “저는 프로 시작도 드래프트에 뽑히지도 못하고 번외지명으로 겨우 들어왔다. 제가 MVP를 타게 된다면 시작이 어긋난 선수, 첫 단추를 잘못 꿴 선수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시작이 어긋나도 정상에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성공과 국가대표 데뷔는 단순히 개인의 성공을 넘어 그처럼 무명의 10대 시절을 거쳐 시작이 쉽지 않은 20대까지의 대다수의 유망주들에게 크나큰 메시지가 된다. 또한 그의 이번 국가대표 데뷔는 결국 ‘리그에서 잘하면 국가대표가 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바로 세우는 의미도 남긴다.

그동안 축구 대표팀은 리그에서 활약과 별개로 감독의 기호나 해외에서 뛴다는 이유만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해도 무조건 발탁되는 경향이 심했다. 전 국가대표 양동현은 “국가대표팀이 뽑히는 선수만 뽑히는 클럽팀화 돼간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국가대표는 늘 한국 최고의 선수들만 발탁돼야 하는 영광의 자리다. 어리다고, 유망하다고, 해외에서 뛴다고 발탁되는 게 아닌, 꾸준히 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면 발탁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여야 한다. 여러모로 주민규의 최고령 국가대표 데뷔는 많은 의미를 남긴다.


이재호 스포츠한국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