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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찬 일본 만화, 텅빈 한국 만화
日 분업으로 세밀한 묘사 배경 빽빽… 韓 캐릭터 외 대부분이 여백




김청환기자 chk@hk.co.kr



‘산업’으로서 한국만화는 한마디로 주춤하는 모양새다. 2003년부터 급성장하던 국산만화의 수출액의 증가폭이 최근 들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2008년초에 펴낸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한국만화 산업 수출액은 2005년에는 2004년보다 139만 9천달러 늘어난 326만 8,000 달러에 이르렀으나, 2006년에는 2005년에 비해 64만 9,000달러 느는 데 그친 391만 7,000 달러다. 국내 출판만화 시장의 침체로 수출 가능한 신작, 특히 창작물의 공급이 크게 줄어들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국내 만화 출판계 역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용성에 집중한 학습만화만 인기를 끌고 있어 경쟁력 있는 창작만화는 가뭄에 콩나듯 한다”고 업계는 입을 모은다.

창작물이 아닌 원작이 따로 있는 만화 <로마인이야기>나, 만화 <한국사>는 1,000만부가 넘게 팔렸다. 하지만, 창작의 빈곤으로 수출입은 ‘역전세’를 맞고 있다. 2006년부터는 만화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했다. 당초 만화 수출액은 수입보다 2004년에 5배 정도, 2005년에 거의 4배 많았다.

2003년에 한국만화가 세계시장에서 호기를 맞은 데는 이유가 있다. 2003년 프랑스의 앙주 부근의 앙굴렘에서 열린 국제만화전시전에서 열린 한국만화특별전을 열어 국제적인 호응을 얻은 것이다.

이경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운영팀장은 “손으로 세밀히 그려 예술성이 높고, 섬세한 붓놀림이 강점인 김동화의 <황토빛 이야기>나 이두호의 <임꺽정>등의 작품에 유럽인들이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만화가 유럽을 중심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박시영 한국문화콘텐츠협회 만화애니캐릭터팀 대리는“이전까지 유럽인들은 아시아 만화 하면 일본만화인 ‘만가’를 떠올리는 경향이 강했다”로 말한다.

수출입 통계는 이런 원인 분석을 입증하고 있다.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2006년 한국 만화 수출지로는 유럽이 36.1%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북미와 일본, 동남아, 중국이 각각 21.6%, 19.7%, 11.2%, 9.9%로 뒤를 잇고 있다. 수입은 ‘일본편향’이 심하다. 일본작품의 비중이 86.4%로 절대비율을 차지하는 가운데 북미, 중국, 유럽이 각각 5.5%, 4.1%, 4.0%를 차지하고 있다. 총 수출액은 391만 7,000달러에 이르고, 수입액은 396만 5,000달러에 이른다.

■ '꽉 찬 만화'vs '텅 빈 만화'

‘롱런’한 만화들은 한결 같은 공통점이 있다. 만화를 만화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캐릭터산업으로 발전시켰고 만화영화, DVD, 팬시 제품(장난감), 피규어(모형) 제작 등을 통해서 다양한 활로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만화산업에 높은 수익을 지속적으로 안겨줬다.

뿐만 아니다.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마니아 층을 공고히 했고, 대중적인 사랑을 오랜 시간 받는 데 기여하게 했다. <배트맨>, <슈퍼맨> 등의 미국만화와 <월레스 앤 그로밋> 등의 영국만화, <키티> 등의 일본만화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원작에서 3할의 수익을 얻고 ‘멀티 유스’로 7할을 얻었는데, 그나마 수출을 한 <뽀로로>, <뿌까> 등의 한국만화는 정반대였다.

‘규모의 경제’ 역시 비결이다. 만화강국들은 제작을 작가 혼자서 하지 않는다. 일본 만화 <시마 과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12명의 스태프 이름이 적혀있다.

작가 뿐 아니라 스토리 프로듀서, 배경화면 작가 등 많은 사람의 공동작업임을 나타내고 있다. 기획과 출판을 한 <히로카네 프로덕션>이 저작권, 판권을 공동관리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작가 한 사람이 ‘북치고 장구치는’ 국내 만화제작 현실과는 확연히 다르다.

‘규모의 경제’는 작품의 ‘완성도’에도 직결된다.

여럿이 분업을 하는 <환상 게임>을 비롯한 일본 만화는 배경화면 등의 세밀한 묘사로 화면이 빽빽하지만 국내만화는 캐릭터 외에 여백이 많은 것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캐릭터 그림과 화면구성 등에 치중하고 배경그림과 시나리오, 기획 및 출판을 분담하는 ‘산업화’된 만화강국들의 작품에 비해 작가 한 개인의 노력이 산출물에 대한 상대평가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작가 개인의 노력이나마 이런 경향의 작품 성공사례는 ‘규모의 경제’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타짜>, <식객>을 만들 때 작가 허영만은 문하생들을 동원해 배경그림을 그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두호 화백은 1년여간 한옥짓기 강좌를 들은 후에 만화 <가라사대>에 광화문을 그려 넣었다는 후문이다. 작가 지현곤의 세밀한 묘사와 붓터치로 그린 카툰 작품은 뉴욕 전시회에서 국제적인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는 1급 장애인으로 알려져 ‘휴먼 스토리’로도 감동을 줬다.



■ '해적판'까지 동원하는 일본의 만화산업 전략

결국엔 ‘스토리’라는 지적이 새롭다. 이경배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운영팀장은 “먹히는 캐릭터 등 원 소스 멀티유스로 발전했거나 규모의 경제를 동원한 작품들이 사랑 받은 원동력은 재밌는, 감동적인 이야기”이라며 “스토리가 주어지는 학습만화뿐 아니라 만화산업의 기반인 창작물 제작을 만화 출판계가 독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마 과장>은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각광받아 <시마 부장>, <시마 사원>, <시마 이사>, <시마 사장>을 연이어 출간했다.

실제로 중견작가의 페이지당 원고료는 20만원 내외여서 때에 따라 외국작품과 수준을 맞추기 위해 한 페이지당 2~3일을 들이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힘든 실정이다. 외국과 같이 분담 제작 구조가 갖춰지지 않은 마당에 작가 개인의 노력으로 ‘디테일’을 살리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 만화의 ‘여백’을 작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단기간에 당장 돈이 되는 작품만 요구하는 만화출판계의 혁신 역시 요구된다. 단기수익을 낼만한 작품만 자꾸 요구하다 보니 창작물이 설 자리가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반면, 일본 만화출판계는 제작 뿐 아니라 수출도 전략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해적판을 의도적으로 흘린 후에 일본만화에 ‘중독’ 될 때쯤 저작권을 들고 나오는 꼼수까지 구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중국판 일본 만화 해적판의 일부가 원본의 4페이지를 한 면에 인쇄한 경우가 있는데, 일본 출판사에서 원본 필름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그런 정도로 세밀한 완성도의 해적판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게 만화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서울시 등의 지방자치단체가 만화지원사업을 하며 임기 내 결과물을 독촉하는 관행, 소비자들이 만화는 당연히 빌려보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 역시 산업으로서 한국만화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우리나라가 베를린 영화제 금상을 받은 일본작품 <센과 히치로의 여행>, 디즈니의 TV용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등의 원제작자였다는 점을 되새긴다면 더욱 아쉬운 현실이다. 기획력, 자본 투자, 마케팅이 작가의 역량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한국만화시장은 4,000억원대, 일본만화시장은 5,000억엔대다. 미국, 유럽시장은 각각 5억 5,000만달러, 5억달러 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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