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만난 아버지 응원에 눈물
유도 선수 꿈꾸다 3쿠션 신데렐라로 등극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지난 8일 막을 내린 ‘NH농협카드 LPBA 챔피언십’에서 예상치 못했던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바로 웰컴저축은행 소속의 최혜미(29)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최혜미의 우승은 여러모로 남다르다. 특히 당구 동호회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LPBA 정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당구를 사랑하는 누구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다는 희망을 던져 준 것이다.

최혜미의 가슴 아픈 가족사도 새삼 화제가 됐다. 이혼으로 헤어진 아버지를 10년 만에 해후한 계기도 LPBA 대회였기 때문이다. 결승전에서 목이 터지도록 응원해 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최혜미는 미안함과 고마움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TV로 딸 활약을 접한 부친
이혼 10년 만에 재회 계기

최혜미와의 인터뷰는 결승전 다음날 이뤄졌다. 첫 우승자의 들뜬 모습이 아닌 평소처럼 차분한 모습이었다.

“많은 분이 축하 메시지도 보내주는데 아직은 얼떨떨해요. 그냥 지금 내가 우승을 한 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평소처럼 구장에 연습하러 나왔죠. 인터뷰도 하니까 조금씩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덤덤한 소회와는 달리 최혜미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최근 2년간 두드러진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서 점점 잊힌 선수가 됐기 때문이다.

“제가 4강을 갔을 때가 2년 전이에요. 보통 팀 리그에 들어가고 나면 성적을 못 내는 선수들이 있다고 하는데 제가 딱 그랬어요. 운 좋게 팀에 들어가긴 했지만 부담이 커서 그런지 성적이 안 좋았거든요. 선수 생활을 그만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우승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솔직히 ‘동호회 출신 첫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뿌듯하긴 해요.”

최혜미는 PBA 출범 당시 동호인 대상 오픈 대회를 거쳐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동호회 출신 선수가 LPBA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혜미의 우승 뒤에는 10년 만에 재회한 아버지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초등학교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버지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부녀가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LPBA 대회였다. 방송에 나온 딸의 활약을 본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챙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지난 10월 셋째 오빠의 결혼식에서 10년 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사실 예선전에 경기장에 직접 아빠가 응원을 오셨다는데 저는 몰랐어요. 그러다 준결승 때 아빠랑 얼굴을 마주 보고 손을 잡았는데 눈물이 막 나더라고요. 감정이 많이 북받쳤던 것 같아요.”

결승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최혜미가 준결승전에서 많은 눈물을 흘린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3남 1녀 중 막내딸이 잘 성장해 프로 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본 아버지로서는 애틋함과 미안한 감정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딸에게 힘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준결승전 때 김민영 선수 소속팀인 블루원에서 응원을 많이 오셨더라고요. 아빠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제가 상대 팀 응원에 눌리는 것 같았나 봐요. 그래서인지 아빠도 더 크게 소리 지르시면서 응원을 하시는 거예요. 큰 소리로 ‘화이팅’을 혼자 외치시는데 그게 더 마음 아프고 부담스러워서 집중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1세트를 내주고 나서 쉬는 타임에 아빠 보고 짜증을 내면서 조용히 박수만 쳐달라고 부탁한 뒤 다음 세트에 들어갔어요. 막상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그게 생각나서 정말 미안하고 고맙기도 해서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구타에 환멸 느껴 때려치운 유도
당구장 알바 거쳐 LPBA 입문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최혜미의 구력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구기 운동을 즐기다가 중학교 때 유도부 감독의 눈에 들어 유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2년 정도 유도 선수로 지냈다. 하지만 구타 등 만연했던 악습에 상처를 입고 유도를 그만뒀다.

“성인이 된 후 생계 거리 일을 찾던 중 친구가 ‘꿀알바’라면서 당구장 알바를 권유했는데 마침 집 앞에 당구장이 새로 오픈해서 당구장 알바를 시작했죠.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손님들이 당구 치는 걸 구경하다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구를 처음 배우면서 단골 손님들과 재미 삼아 5000원 내기 게임을 시작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 승부욕이 작동했지만 용돈을 뜯기는 경우가 많았다. 제법 똘똘하게 일을 한 덕분인지 몇 개월 만에 새로운 당구장으로부터 섭외를 받아 일자리를 옮겼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 소재한 당구장이었다.

“음봉면이 조금 외진 곳이라 당구장에 손님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당시에 혼자서 연습을 자주 오시는 단골 손님이 계셨는데, 혼자 치니까 심심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저랑 치실래요’라고 물어봤더니 ‘너랑 치면 재미없어. 너 3쿠션도 칠 줄 모르잖아’라고 거절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뭔가 오기가 치밀어 올라오면서 속으로 ‘3쿠션을 어떻게든 배워서 이 삼촌을 이길 정도로 실력을 키워야겠다’라고 마음을 굳혔죠.”

운동선수 출신답게 목표가 생기자 맹렬하게 3쿠션 연습에 매진했다. 당구장 사장의 자세나 기술을 따라 배우면서 대대 수지 20점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게임을 거절한 단골을 당당하게 꺾고 복수(?)에 성공했다.

알량한 복수심에서 시작한 3쿠션은 최혜미를 사로잡았다. 치면 칠수록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국제식 대대에서 정식으로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천안 시내의 대대 전용구장으로 매일 나가 당구를 쳤어요. 당구장 문을 닫고 새벽 12시에서 1시 사이에 가서 아침 7~8시까지 당구를 치다가 집에 와서 자고 12시에 일하는 당구장을 여는 생활을 반복했죠. 한마디로 당구에 미쳐 있던 때였죠. 천장을 보면 당구대로 보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 동호회 활동에서 현재 LPBA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상아·최보람·이우경(에스와이) 선수와 어울렸다. 그리고 이들이 LPBA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LPBA 문을 두드렸다.

구세주가 된 웰컴저축은행
팀원 김예은과 유쾌한 결승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2019년 LPBA 출범 때부터 합류한 최혜미는 2년 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2021~2022시즌 들어 8강 2회, 4강 1회 등의 성적을 올리며 팀 리그에도 발탁됐다. 하지만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면서 방출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갈 때였다. 생각지도 못한 웰컴저축은행이 손을 내밀었다. 최혜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웰컴저축은행이 그를 지명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도 웰컴저축은행에서 저를 왜 지명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감사하고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는데 이렇게 우승으로 보답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도 팀원들 덕분에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당구를 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팀원 중에서도 결승전 상대였던 김예은 선수에 대한 고마움과 칭찬을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경력은 선배이지만 어여쁜 동생이기에 더 남다른 감정이 든 듯하다.

“사실 결승에 간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저보다 실력이나 구력이 더 나은 선수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우승하고 나서도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싶더라고요. LPBA에 와서 정말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운 좋게 우승했다고 생각해요. 특히 결승 상대가 예은이라서 져도 좋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거든요. 그냥 행복했어요. 그래서 마음 놓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시합에 임했어요.”

실제로 두 선수는 결승전 내내 밝은 모습으로 경기에 임했다. 서로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 때보다 유쾌한 경기를 펼쳤다.

“예은이한테 당구든 당구 외적이든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여러 부분에서 정말 귀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요. 외국인 선수들이랑 소통하려고 영어도 배웠다는데 짧은 기간에 그렇게 잘하는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해요. 그런 동생이자 선배를 이겼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감사할 뿐이에요.”

최혜미가 결승에 오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신의 한 수’는 ‘팁’ 교체였다.

“슬럼프가 지속되다가 이번 대회 직전에 큐대 팁을 바꿨어요. 팀 선배인 이상대 프로님한테 고민을 털어놨더니 치우공방이라는 곳을 소개해 주셔서 거기서 큐팁을 맞췄는데 딱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어요. 그래서 더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프로님과 공방 사장님이 이번 우승의 가장 큰 공헌자이신 거죠.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최혜미는 자신을 응원해 주는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항상 응원해 주는 아빠, 너무 사랑하고 감사해요. 그리고 지금도 가끔 연락하며 응원해 주시는 저의 첫 스승님이신 천안 당구장 사장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제가 당구 인생을 걷게 됐네요. 그리고 지금도 응원하고 연락해 주시는 예전 당구장 삼촌들, 그리고 친구들과 팬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구보다 나의 ‘푸르니’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프로당구 선수 최혜미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혜영 기자)

 


홍성완 스포츠한국 기자 weeklyhk@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