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급변하는 한국 출판시장, 살길은 '독서는 마음의 양식' 믿음

해마다 출판계는 ‘불황’을 말한다. 그것도 “유사 최대 불황”이라는 표현으로, 오늘 출판계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 출판 역사는 불황의 역사이다.

■ 서점가의 맹주, 자기계발서

2008년 10월, 한국 서점가는 자기계발서 독무대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대부분 자기계발서들이 독식한 지 오래다. 간혹 소설이 명함을 내밀지만 오래지 않아 뒷자리로 밀려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출판계에서 인문학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이 출판계의 맹주처럼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IMF 이후 한국의 사회적 지형도가 격랑을 탄 것과 동시에 출판계도 거센 폭풍을 맞았다. 대학가의 인문사회학 서점들이 서서히 문을 닫는가 싶더니, 서점가에도 인문사회 서적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바로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 바람은 사회적 변화, 즉 IMF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부’와 재테크, 그리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직장인들의 고용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직장인들은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무한경쟁 체제를 이겨내고자 ‘아침형 인간’은 물론 ‘프리젠테이션 잘 하는 법’, ‘처세’ ‘상사와 대화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살아남기 위한 모든 법을 책을 통해 찾았다. 또한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도 톡톡한 재미를 보았다.

자기계발서 붐은 독자 개인의 능력 향상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책들이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 자칫 출판계 전반에 대한 불신을 낳을 수 있다.

또한 대다수의 출판사들이 자기계발서에만 집중하고 있어 출판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IMF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출판 전문가들은 ‘자기계발서’ 시장이 확대되면 확대되었지, 퇴보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거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출판계의 현실이다.

■ 인터넷 서점, 동네 서점을 접수하다

사실 2000년대 들어 출판과 독서 환경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인터넷 서점의 등장이다. 현재 출판시장에서 인터넷 서점이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을 대략 30% 안팎.

주머니 사정이 뻔한 젊은 세대들은 대형서점 등에서 책 정보를 수집하고, 각 인터넷 서점에서 가격을 비교한 후 가장 낮은 가격대의 인터넷 서점을 이용한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은 초기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란을 낳았고, 한편에서는 동네 중소형 서점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물론 인터넷 서점은 나름의 장점도 많다. ‘착한’ 가격도 그렇지만 간편한 검색으로 책에 관한 정보를 한눈에 꾈 수 있고, 서평은 물론 연관된 도서들의 정보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의 과도한 할인은 자칫 책 가격에 거품이 있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서점 메인 화면에 띄우면 책의 판매가 현저히 증가하기 때문에 출판사로서는 책의 질적인 부분보다는 광고 마케팅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결국 출판 상업주의를 초래하는 악재로 작용한다. 인터넷 서점이 출판계의 오랜 아킬레스건인 사재기의 간접 창구로 이용된다는 일부의 지적도 무시 못할 이야기다.

■ 대형할인점과 문고본의 함수

인터넷 서점과 함께 출판시장의 강자로 떠오른 것이 대형할인점에서 운영하는 서점이다.

대형할인점 서점은 문고판 도서를 중심으로 매출을 확대하면서 인터넷 서점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은, 그나마 몇 안 남은 동네 서점들의 씨를 말릴 것이라는 게 출판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현재 대형할인점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고 매출 규모는 대략 2,300억 원대. 국내 출판 시장 규모를 2조 6,000억 원대로 추산할 때 대략 10% 선을 대형할인점이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대형할인점 서점이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문고판 도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킨 데 있다. 2007년 9월 이마트가 핸디북을 처음 선보였다.

일반 책 크기의 약 75%에 가격은 약 60%인 5,500~7,200원 수준으로, 세간의 베스트셀러를 핸디북으로 선보이면서 지난해 하반기에만 약 4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 원이라고 이마트 측을 밝히고 있다. 대형할인점 관계자들은 핸디북의 잠재적 시장 규모를 1조 원대로 예상하고 있다.

대형할인점 핸디북이 출판시장의 문고본 활성화에 기여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핸디북이 독자에게 어필하면서 몇몇 출판사들이 올해 문고본 활성화를 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어렵게 형성된 문고본 시장이 양질의 콘텐츠와 다양한 목록을 내놓기만 한다면 장기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시장성만을 염두에 둔 문고본 출판이 계속된다면 그나마 불씨를 일으킨 문고본마저 주저앉을 수 있는 게 출판계의 중론이다.

■ 역사서 바람과 TV셀러

2000년대 이후 출판계는 콘텐츠 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다름 아닌 역사서. 영화 <왕의 남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출판 분야에서 조선을 소재로 한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다.

이들 역사서의 선전은 또 다른 측면에서 TV셀러를 낳았는데, 최근 드라마로 만들어진 《바람의 화원》이 대표적이다. 책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역사적 인물에 대한 책이 서너 가지 이상 출간되는 현상이 요즘은 더 많은 분위기다.

한편 《다빈치 코드》를 시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팩션 분야가 한국 출판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는데, 역사를 소재로 한 책들에 주로 차용되고 있다.

IMF 이후 한국 사회에 고착된 사회적 양극화는 출판사에도 불어 닥쳤고, 이에 따라 ‘출판 기획’이라는 미명 아래 출판 상업주의가 횡행하게 되었다. “10년 후 종이책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일으키며 출판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던 ‘전자책’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지만 향후 변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2000년 이후 한국 출판계는 수많은 변화와 무침을 거듭했다.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형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 한 가지는,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의 경쟁력”이라는 구호를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한국 출판에는 희망이 없다”는 점이다. 오래되고 퇴색했으나 생명력 있는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만이 한국 출판이 살 길임을 기억할 때다.



장동석 출판칼럼니스트, 전 <출판저널> 편집장 97449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