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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미디어아트] 미디어아트, 예술·과학 결합 꿈꾸다
'랩탑 오케스트라'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등 다양한 시도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1- isAT2008의 일환으로 열린'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와 한국의 전통음악 연주자들의 협연 장면
2- Erika Harrsch,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2008




시간과 공간을 절약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다. 디지털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는 아날로그 시대의 불편함을 점점 더 편리한 환경으로 대체되고 있다.

예술 역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아날로그적 감성은 예술이 예술이게 하는 충분조건이었다. 명작 혹은 위대한 예술은 오랫동안 하얀 캔버스와 텅빈 연습실과 무대 위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지는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시대의 예술은 아날로그적 노력이 아닌 디지털적 ‘감각’ 혹은 ‘기술’로도 예술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주는 매력 중 하나는 이런 디지털 예술의 세련됨 대신 서툰 아날로그적 감성을 복귀시킨 데 있다.

오만하고 독선적인 괴짜 지휘자와 치매 노인, 나이트 클럽 연주가, 주부, 청각 장애를 갖게 된 악장 등이 뭉쳐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디지털 기기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음악에는 없는 휴머니즘을 자극한다. 인간 감성간의 유기적 결합이 필수적인 오케스트라의 특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를 이용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미디어 퍼포먼스는 디지털 예술의 한계로 지적되던 비인간성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과 과학 기술의 진일보한 결합을 꿈꾸고 있다. 가령 얼마 전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 ‘랩탑 오케스트라’가 그것이다.

■ 시공을 초월하여 제시되는 새로운 차원의 공연예술

‘랩탑 오케스트라’는 지난 10월 열린 예술과 과학기술의 통섭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isAT (International Symposium for Arts and Technology)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통섭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으로 출발한 isAT는 올해로 2회째를 맞아 축제적 성격을 부각시켜 학술 행사 외에 전시와 공연을 추가하며 진정한 지식축제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예술적 실험과 과학기술의 결합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했던 이번 행사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네트워크 퍼포먼스’로서의 오케스트라를 시도한 것이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컴퓨터 음악/음향 연구소인 CCRMA(Center for Computer Research in Music and Acoustics)에서 새로운 전자음악의 형식을 도입해 만든 ‘스탠포드 랩탑 오케스트라’는 랩탑 하나당 악기소리를 부여해 연주를 한다. 그러면 랩탑 오케스트라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전송받아 한국의 전통음악 연주자들의 연주와 협연하게 된다.

무대 위의 화면 속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다름아닌 컴퓨터 전문가들이다. 크고 무거운 악기 대신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의 앞에는 랩탑 컴퓨터가 놓여 있다. 컴퓨터 음향 기술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랩탑 컴퓨터로 악기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예술이 가진 미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고뇌도 충분히 엿보인다. 특히 오케스트라 형식 안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협연은 음악을 통해 ‘천지인간(天地人間)’의 의미를 구현하며 미학적 성취까지 얻어냈다는 평가다.

isAT 사무국 관계자는 “생황연주는 천(天), 타악연주는 지(地), 정가는 인(人)을 나타내고,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매개로서 또는 네트워크로 생기는 딜레이(Delay)의 개념을 음악적으로 이용해 간(間)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의 진보로 만들어내는 전자음악과 혼이 살아있는 한국 전통음악과의 상생을 통해 하나의 통섭을 이뤘다는 것이다.

■ 대중에게 손 내미는 미디어 아트

3- CEB Reas,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2008
4- Carlos Coronas,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 2008
5- 백남준


isAT의 작업이 미디어 아트의 첨단을 걷는 진보적 성격이라면,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는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비엔날레가 내건 주제는 ‘전환과 확장’이었다. 전환이란 미디어 아트가 과학기술을 이용해 기존 예술을 극복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성하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미디어 아트 작품의 창작과 수용, 그리고 유통은 기존 예술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국면의 예술은 기존의 예술에 대한 창작자 혹은 관람객의 인식을 더욱 확장시킨다. 특히 일방향적으로만 제시되던 기존의 예술과는 달리 미디어 아트는 보는 자의 뜻에 따라 응용되고 재창조될 수 있는 쌍방향적 특성으로 열린 자세를 취한다. 이는 미디어 아트가 비단 ‘예술’의 차원뿐만 아니라 문화상품이나 산업 일반에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빛’, ‘소통’, ‘시간’으로 구분되어 전시되는 비엔날레의 컨셉트에는 미디어 아트를 대중에게 쉽게 접근시키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나타나 있다. 흡사 레이저쇼를 연상시킬 만큼의 현란한 빛의 향연은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둔다. 네온 아트, 레이저 아트, 홀로그램, 키네틱 아트, 라이트 스틱 등 미디어 아트의 여러 종류들을 접하는 기회도 함께 얻을 수 있다.

인터랙티브(interactive·상호작용) 작품으로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시도는 미디어 아트의 ‘미완결성’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기존의 예술작품처럼 완성된 상태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참여로 완성되며, 그 형태는 가변적이다. 때문에 미디어 아트는 결과의 예술이 아니라 과정의 예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아쉬운 점도 이런 데서 비롯된다. 비록 대중성에 방점이 찍힌 행사지만, 뉴미디어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고 그에 따른 미디어 아트의 세계적 조류도 빠르게 변화하는 양상을 감안하면 이러한 기획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비엔날레에 쏟아진 대중의 많은 관심은 앞으로의 미디어 아트에 대한 담론의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백남준에서 뉴미디어 아트 시대로

예술과 미디어가 급격히 가까워진 것은 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은 전통적인 재현 양식을 벗어나 미디어와 결합했고, 이제는 오히려 미디어를 빼놓고 현대예술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최근 다시 자주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비단 지난달 ‘백남준 아트센터’가 개관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의 미디어 아트 전시의 유행이 새삼 백남준의 우수성을 돌이켜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디어 아트의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 필요한 것은 백남준의 업적이 아니라 바로 그의 정신이다. 백남준의 창의력은 ‘탈경계성’에서 비롯된다. 예술의 정의, 장르의 경계, 예술작품과 관객의 구분 같은 것들은 그의 시선으로는 타파의 대상이었다.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성격은 그때까지 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샘솟게 했다. 시공간의 평행성 또한 그의 관심사였다. 여러 대의 TV를 산을 쌓듯이 설치하는 실험은 한 개체의 수많은 움직임들을 동시에, 보다 완벽히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결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는 일종의 혁명이었다.

이 같은 생각들은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의 모습과도 몹시 닮아 있다.

특히 미디어 전반에서 웹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며 웹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인터랙티브 아트가 뉴미디어 아트의 주된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백남준의 생각처럼 이제 미디어 아트는 기존의 예술 장르를 융합해 경계를 허물고 관객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미디어 아트는 이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상태에 불과하다. 뉴미디어 기술에 있어서는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자랑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점은 작가로 하여금 ‘미디어’에만 치중하게 하고 ‘아트’에는 신경쓰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실제로 요즈음의 대중성을 지향하는 미디어 아트 전시에는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내용은 부실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뉴욕에서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이번 서울 국제 미디어 아트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를 맡은 라울 자무디오의 충고는 그래서 유의미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환타지아>에서 미키 마우스가 마법사의 책에서 나온 유령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의 작가들도 각종 기술들에 경도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미디어의 현란한 외양보다 내용에 좀 더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적 형식주의에 굴복당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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