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광고방식 한계 봉착, 소비자·매체 변화 발맞춘 'IMC' 전략 부상국내 재벌들도 '인하우스 에이전시' 다시 보유하며 통합마케팅 나서

광고산업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광고의 정의에 대한 전통적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광고 전략과 접근방식이 뿌리부터 변화할 조짐이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sㆍ이하 IMC)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국내 광고업계에는 ‘재벌들의 귀환’이 활발하다. 외환위기 이후 그룹 구조조정 차원에서 계열 광고대행사(인하우스 에이전시)를 잇달아 매각했던 재벌들이 다시 광고대행사를 인수하거나 새로 설립하고 있는 것. 현대자동차그룹은 2005년 설립한 이노션을 불과 3년 만에 업계 2위권으로 도약시켰고, SK그룹과 LG그룹도 올해 들어 각각 SKM&C와 HS애드(옛 LG애드)를 출범시켜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벌의 광고업계 귀환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룹 계열사 광고물량을 손쉽게 따내는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득세하게 되면 광고산업 고유의 창의성과 경쟁력이 저하될 뿐 아니라 독립 광고대행사의 생존기반마저 잠식된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해당 재벌들은 나름대로 합당한 명분을 제기한다. 2000년대 이후 그룹 규모가 커지고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광고전략 자체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이들의 출사표에 공통적인 요소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바로 새로운 광고 패러다임으로서 IMC를 주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노션은 스스로 회사 정체성을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컴퍼니’로 규정하고 있으며, SKM&C도 ‘통합 마케팅 회사’를 표방하고 있다. SKM&C라는 회사명 자체가 SK마케팅앤컴퍼니의 약자다.

또한 그룹 명칭인 LG를 과감히 떼내고 신장개업한 HS애드에서도 IMC의 정신이 읽힌다. HS는 영어로 하이브리드 솔루션(Hybrid Solutions)의 약자. 하이브리드는 사전적으로 이종(異種), 혼합 등을 뜻하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예에서처럼 경제적으로는 서로 다른 것을 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조적 통합의 의미에 가깝다.

HS애드 측도 지난 4월 사명 변경과 관련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조합을 통해 최적 마케팅 솔루션을 광고주에게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국내 재벌 계열 광고대행사들이 너도나도 IMC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왜 이 시점에 IMC가 광고산업의 거대담론으로 부상하는 것일까.

우선 IMC의 개념에 대한 이해부터 필요하다. 미국 광고업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IMC는 ‘광고, DM(우편광고), SP(판촉), PR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의 전략적인 역할을 비교 검토해 전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플랜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합해 명료하고 일관성 있는 최대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제공하는 것’ 등으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IMC란 소비자들에게 일관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종래 광고 기능을 포함한 기업의 모든 마케팅 활동을 하나의 전략으로 통합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속성을 빗대 IMC는 ‘빅 픽처’(Big Picture), 즉 ‘큰 그림’이 필요한 활동이라고 강조한 학자도 있다.

IMC의 등장 배경에는 소비자 특성과 매체 환경의 변화라는 큰 시대적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매스미디어가 지배하던 시대의 소비자들은 ‘비슷비슷하고 수동적인 대중’이었지만, 인터넷, 휴대폰 등 디지털 개인미디어가 일반화된 오늘날 소비자들은 ‘깐깐하고 능동적인 개인’으로 바뀌었다. 정보를 주는 대로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동의대 김일철 교수(광고홍보학과)는 ‘복잡계와 IMC: 새로운 광고이론의 패러다임 확장을 위한 논의’라는 논문에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연결시키는 전략적 개념으로 등장한 마케팅은 이미 탈(脫)대량과 구매자시장(buyer’s market)으로 전환한 오늘날 그 의미와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라며 “분리와 융합을 거듭하는 멀티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발전은 종전의 매체 전략(media mix)을 무력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즉 개인이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매체를 통한 일방적인 광고(마케팅) 메시지는 더 이상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IMC는 바로 이런 구조적 변화에서 비롯된 광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전략인 셈이다.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는 가두 마케팅, 판촉행사 등도 소비자 접점으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IMC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4가지 핵심적 요소가 전제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고객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한 소비자시장의 세분화된 이해 ▲다양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통합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통일성과 일관성 유지 ▲전략 실행의 결과 평가를 통한 순환적 피드백 시스템 구축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전체 전략과 부합하지 못한다면 당초 목표한 IMC 성과를 달성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주 ‘처음처럼’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처럼’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TV, 잡지, 온라인, 업소판촉, 광고포스터, 가두마케팅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런 많은 수단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이자 메시지는 바로 모델 이효리(또는 그녀가 상징하는 젊고 매력 있고 유혹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만약 각각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서로 다른 모델과 메시지를 담는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처음처럼’의 브랜드 이미지는 정체성을 잃어 희석되고 말 것이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각종 신매체 발달로 소비자 접점이 점차 분산되고 있어 조만간 전통적 방식으로는 광고효과를 달성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며 “능동적 소비자들이 친근하고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정교한 IMC 전략을 구축하는 게 절실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