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는 심리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 성격장애, 약물중독 등인데요. 인구 당 정신과 의사 수가 한국에 비해 훨씬 많고, 그것도 모자라 상담치료를 주로 하는 임상심리학자의 수가 또한 그만큼 많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사물과 환경을 개인주의의 입장에서 보는 서양에서는 심리 질환도 각 개인의 병으로 정의가 됩니다. 각 개인에게 유전적 소질이 있다느니,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점이지요.

이런 서양인과는 달리 한국인은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신,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인식합니다. 따라서, 심리 질환도 각 개인의 병이라기 보다는 관계의 병이 되지요.

한국인에게 흔한 화병, 상처, 분노 등은 대표적인 관계의 병이고요. 그 외에도 따돌림, 외로움이 많은 사람, 간섭을 많이 받는 사람도 한국적인 관계에서 옵니다. 서양에서 흔한 약물중독은 개인의 병이지만, 한국에서 흔한 쇼핑중독, 아이중독, 인터넷중독, 은둔형 외톨이 등은 필요한 관계의 부재에서 오는 또 다른 관계의 병입니다.

입시스트레스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겪는 아이와 이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모든 책임이 있는 엄마는 둘 다 관계의 병을 앓게 되지요.

고부간의 갈등,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이 다른 세대간의 갈등도 관계의 병이고요. 한국 부인의 우울증과 자녀 출가 후에 종종 발생하는 황혼이혼도, 부인에게 강하거나 일중독인 남편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서양인의 자살은 개인의 병인 우울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한국인의 자살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차별하느냐가 더 큰 원인이 되는 관계의 병이지요. 서양인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고 한국인은 남이 비하하는 것을 못 참는 것입니다.

관계의 병도 각 개인에게는 서양인과 마찬가지의 고통스러운 증세를 일으키는데요. 우울, 불안, 공포, 불면증 등이 대표적입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우선 힘든 것이 이런 증상이기 때문에 먼저 이부터 낫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일단 증세가 좋아지면 병이 나은 것으로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증세들을 겪고 느끼면서, 관계의 문제에 심리적, 신체적으로 덜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렇게 인식될 수도 있지요. 여기서 주로 사용되는 치료법은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등의 약물입니다.

그렇지만, 병의 원인이 애당초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증세만 치료한다고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남과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치료이지요.

관계 재정립의 첫째는 자신과, 가족을 포함한 남 사이의 균형입니다. 하루 종일 자신의 몸과 마음에는 단 1분도 쓰지 않고 온통 가족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또는 가족이 원하는 대로만 자신의 취향을 맞추어 간다면 균형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관계 재정립의 둘째는 남이 나를 어떻게 인정하느냐가 모든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도 자신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이지요.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입니다. 성장도 그런 현재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셋째는 내가 남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내 선택이지만, 남이 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남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내 선택은 내 맘대로 할 수 있지만, 남의 선택은 남의 선택대로 존중해야 하고, 내 맘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넷째는 남은 기본적으로 나하고는 다릅니다.

나하고 같은 사람만 찾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나의 성장을 좁히기도 하지요. 나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은,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관계는 점점 더 편안해지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성장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관계의 병을 갖고 있지는 않나요? 관계는 바로 나부터 시작됩니다.



유태우 tyoo@unh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