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높이로 보는 '시네마 천국'40여개 영화 평 읽다보면 세상보는 안목까지 넓어져이대현 지음/ 다할미디어/ 12,000원

소년이 어른 흉내를 내기는 차라리 쉽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소년 흉내를 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생각이 너무 자란 어른은 이미 높아진 눈 높이를 소년의 키에 맞추기가 수월치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키 높이를 낮춘 어른이 있습니다.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는 청소년 자녀를 둔 한 일간지 영화기자 출신 아버지가 제목 그대로 15세 소년의 생각만큼 키를 낮춘 채 오순도순 영화를 말하는 책입니다.

책에 실린 영화들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신작들입니다. 세간의 영화평을 읽은 지 아직도 따끈한 기억이 그리 식지 않은 화제작들이 대부분이지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어거스트 러쉬>등입니다.

저자는 차근차근 영화 이야기판을 벌입니다. 한창 지식욕이 꿈틀대며 자라는 15세 친구들과 편안하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듯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습니다. 이 해박하고 자상한 영화가이드는 ‘비평’이라는 이름 아래 영화를 마구 헐뜯거나 편애하지 않습니다. 이 자체가 어른들 세계에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제의 대상은 영화들이지만, 가만히 듣다보면 영화 얘기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 이야기, 사람 이야기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영화를 ‘가르치려’ 들지 않아서 소년들의 마음에 더욱 들 만 합니다. 어른이랍시고 삶을 ‘계몽’하려 들지 않아서 더더욱 편안합니다.

영화가 훌륭한가 아닌가의 좁은 흑백 울타리를 벗어나 영화를 보는 눈, 영화의 이면을 읽어내는 안목까지 길러주어서 가장 든든합니다. 의심나시면 그토록 호불호의 공방이 뜨거웠던 <디 워>에 대한 대목만이라도 한번 읽어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너무 자란 아이들에게도, 덜 자란 어른들에게도, 그 누가 읽어도 여운이 남는, 곱씹어 볼 화두를 여럿 던져주고 갑니다.

책에는 약 40편의 영화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그 곱절의 곱절만큼 많은 영화들과 만나게 됩니다. 영화와 얽혀있는 다른 많은 영화들이 함께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게중 아는 제목이라도 나오면 ‘공감’이라는 소박한 희열도 덤으로 얻습니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호기심이 발동해 즐겁습니다. 종국엔 각 영화마다 넝쿨처럼 걸쳐진 다른 영화들까지 다 찾아보게 만듭니다.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더 자주 비디오 가게를 들락날락하게 만드는 재주를 저자는 가졌습니다. 책 한권이 손 안에서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글쓴이는 현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자 영화평론가입니다. 그는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작인 ‘14세, 극장에 가다’는 청소년 권장도서로 지정될만큼 특히 호응이 뜨거웠습니다. 이번 책은 또 어떨지 제3의 관찰자로서 역시 궁금합니다.

저자에게 양해를 구하며 끝을 맺어야겠습니다. 저자의 어투에 전염된 것에 대해서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영화만이 아니라 세상 앞에 새삼 공손해지는 이 증세를 저도 어쩔 도리가 없더란 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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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