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레이노·비디오 아티스트 비올라·판화가 클로스 작품전

세계적인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잇따라 국내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책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작품과 작가들이 한국을 찾은 것이다. 점차 국내 미술시장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 레이노- 화분이어 단어시리즈 선보여

국내 한 은행광고에도 등장한 바 있는 대형화분 ‘빅팟’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조작가 ‘장 피에르 레이노(Jean-Pierre Raynaud, 1939~)’의 작품이다. 올 여름 레이노는 빅팟 한 점을 포함해 총 26점의 작품을 가지고 처음으로 국내 관람객들을 찾았다.

유독 그는 형형색색의 커다란 화분에 주목한다. 정원사 집안에서 태어난 레이노에게 화분은 항상 함께해온 오브제이자 생명을 심고 키우는 작은 공간, 더 나아가 하나의 우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레이노가 30여년 간 이어온 ‘화분 시리즈’에는 동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려는 그의 의지도 담겨있다.

한편 레이노는 7월 1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갤러리 학고재 옥상 위에 ‘백의민족’이라는 한국인을 상징하는 흰색의 빅팟을 특별제작, 설치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중국 자금성, 일본 하라미술관에도 놓여있는 빅팟은 놓여지는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레이노는 최근 가진 작품설명회에서 “어린왕자가 꿈을 꾸도록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그래서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화분을 세계 곳곳에 보내고 있다”며 빅팟이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꿈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전시에서 ‘반 고흐’, ‘피카소’, ‘아트’와 같은 단어가 상징하는 의미를 예술로 승화시킨 ‘단어시리즈’를 선보인다.

이에 대해 그는 “현대에는 피카소나 고갱과 같은 유명한 화가 이름이 곧 유명한 상표와 같기 때문에 관객들은 미리 기대를 품고 전시장을 찾는다”며 “‘단어시리즈’는 특정 화가들이 현시대를 사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 비올라- '물의 장막'으로 인간내면 표현

레이노 작가와 작품‘빅팟’, 작업중인 척 클로스, 빌 비올라
레이노 작가와 작품'빅팟', 작업중인 척 클로스, 빌 비올라

개념미술가 ‘장 피에르 레이노’와 함께 올 여름 국내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Bill Viola, 1951~)’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백남준 선생의 제자이자 살아있는 비디오아트의 거장인 빌 비올라는 1970년대 비디오 아트 1세대로 지난 38년간 수많은 전시와 집필, 강연활동을 통해 비디오 아트를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2007년과 1995년에는 미국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바 있다.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리는 ‘Transfigurations(변형)’역시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Ocean Without a Shore(해변 없는 바다)’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비올라는 주로 정적이고 시적인 화면을 구사한다. 이번 전시작들은 총 10점으로 내적 변화와 쇄신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영상설치 작품들로 구성된다.

모두 물의 장막을 통과하면서 변모되는 인간의 외적 형상을 통해 내적인 인간 감정의 변화와 감흥을 표현하는 작품들이다. 여기서 ‘물의 장막’은 곧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이자 일종의 보이지 않는 힘, 또는 알 수 없는 신비를 의미하고 있다.

빌 비올라는 이번 전시회를 계획하면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배우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했다”며 “결국 물 밖으로 나오면서 살았다는 듯 물을 털어버리는 배우의 행동 그 자체가 진정한 경험이었고, 감정 표현이었다”고 전했다.

■ 클로스- 다양한 음각판화 소개

빌 비올라의 작품‘Five Angels- Fire’(위·왼)빌 비올라의 작품‘Five Angels-Ascending’(위·오른)
Emma
빌 비올라의 작품'Five Angels- Fire'(위·왼)빌 비올라의 작품'Five Angels-Ascending'(위·오른)
Emma

‘장 피에르 레이노’의 조각과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에 이어 사진 같은 ‘판화작품’도 눈여겨볼만하다.

1960년대 후반 극사실주의 인물화가로 또 사진가로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척 클로스(Chuck Close, 1940~)’가 9월 28일까지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위대한 모험, 척 클로스’ 전시회를 개최한다.

난독증으로 학교생활이 어려웠던 클로스는 그림을 그리며 세상과 소통,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한창 유행하던 1950년대 잭슨폴락의 추상화를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다 1988년 척추혈관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됐음에도 불구하고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불굴의 예술가’이다.

위대한 모험은 척 클로스의 다양한 음각판화형식을 보여주는 전시로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자리다. 1972년 첫번째 판화작품인 메조틴트 ‘Keith’를 시작으로 30여년간 판화작업의 변천을 보여준다. 특히 클로스만의 독특한 예술적 언어로 표현된 140여 점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인간의 얼굴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그에게 있어서 판화는 유화에서 얻은 상상력을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태도를 동시에 취해 기술과 예술이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이미지를 생산해낸다.

직접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고 사진을 모델 삼아, 실제 인간의 크기보다 몇 배 더 크게 그려진 대형 사이즈의 인물화를 통해 ‘실제와 일루젼, 그리고 시각적 인식의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다각적 실험을 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던진다.

척 클로스는 이와 관련해 “대단한 발상이 떠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구름이 갈라져 번개가 머리를 치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해 차라리 그보다는 작업을 진행하는 편이 더 낫다”며 “작품을 만들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결국에는 판화가인 자신이 ‘경험이라는 음악을 편곡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무엇보다도 판화작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일이 즐겁다”면서 “예술가만의 스타일이란 어떤 과정으로 제작했느냐 하는 것이지 무엇을 제작했느냐가 아니기 때문에”라며 작업에 대한 포부를 덧붙였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