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캐릭터 지지 모임서 올린 패러디 동영상 등 인기… UCF시대 열어

사용자들이 ‘스타’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내는 ‘팬픽’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을 활용한 패러디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팬픽’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팬픽(fanfic)이란 팬(fan)과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대중의 인기를 끄는 작품을 팬들이 마음대로 재창작한 작품을 말한다.

영화 <놈놈놈>은 무법천지였던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당대의 최고 악당들이 모여 한장의 보물지도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내용으로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분), 마적단 두목 박창이(이병헌 분), 열차털이범 윤태구(송강호 분)가 그 주인공이다.

블로그에서는 각자 동맹을 나눠 경쟁관계인 이들 캐릭터를 지지하는 모임이 생기고 있다. 블로그 전문사이트 이글루스(www.egloos.com)에서 놈놈놈 동맹으로 활동하는 블로거들이 주인공이다. 한 사이트(http://parkdowon.lil.to/)에서는 <놈놈놈>의 캐릭터에 따라 박도원, 박창이, 윤태구 동맹 별로 접속이 가능하다.

블로거들은 각각의 동맹사이트에서 각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의 사진과 정보, 동영상, 영화예고편 등을 올린다. 온라인상에서 일종의 팬클럽을 형성한 것인데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영화장면이나 캐릭터를 비틀어 패러디한 팬픽 동영상이다. ‘UCF(User Created Fanfic. 사용자 제작 팬픽)’의 시대가 열렸다해도 무방할 정도다.

■ 다양한 ‘팬픽’ 전달하는 ‘UCF’

이들 ‘UCF’의 특징은 대중이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뮤직비디오에 ‘놈놈놈’의 캐릭터를 덧입힌 경우가 대표적이다. 원더 걸스의 노래, 소핫(So hot)에 ‘놈놈놈’의 스틸 사진을 합성한 ‘쏘핫놈놈놈’이 그 예다. 윤태구(송강호)를 정점으로 한 추격전 위로 흐르는 ‘내가 그렇게 이쁘니? 왜 자꾸 따라오니?’라는 가사가 송강호의 코믹한 표정과 맞물려 폭소를 자아낸다. ‘쏘핫놈놈놈’은 네이버에서만 15만건의 조회수를 보이고 812개의 댓글이 달리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근의 취업난을 풍자한‘놈놈놈 취업 버전’ 역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이 버전에서는 취업준비생을 ‘게으른 놈(취업 준비는 안 하고 요행수만 바라는 스타일), ‘건방진 놈’ (중소기업 합격 따위 가당치 않다며 대기업만 꿈꾸는 스타일), ‘준비된 놈’ (완벽한 정보 수집 및 치밀한 준비로 입사를 일궈내는 스타일)의 세가지 부류로 나눴다. 각각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의 극중 캐릭터를 패러디한 것이다.

‘놈놈놈 취업버전’역시 네이버 조회수 72,000건, 댓글 156개의 기록적인 반응을 보였다.

■ 내 마음대로 확대 재생산

한번의 캐릭터 재창조에 그치지 않고 네티즌들이 결과물을 주고 받으며 확대 재생산하는 형태가 두드러진다.

박수동의 만화 <고인돌> 이미지로 유명한 삼강 ‘빠삐코’의 CM송과 ‘놈놈놈’의 테마음악을 합성한 ‘빠삐놈’ 음악 파일이 뜨자 다른 네티즌이 이 음악 파일에 가수 전진의 댄싱 동영상을 절묘하게 합성, 완전판 ‘전.삐.놈’(전진+빠삐코+놈놈놈)을 만들어 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외에도 놀이터의 목마를 타고 보물을 쫓는 ‘ 이상한 놈’ ‘ 나 뿐인 놈’ ‘ 조울증 걸린 놈’ 등 ‘놈놈놈’의 캐릭터를 위트 있게 비튼 ‘별 볼일 없는 놈놈놈’ 등이 인기다.

또, 7대의 피아노로 연주한 ‘놈놈놈’ OST, 마술 하는 ‘놈놈놈’, 네이버 오이깍이로 그린 ‘놈들’의 캐릭터 캐리커처 등 ‘놈놈놈’을 활용한 네티즌의 상상력은 경계가 없이 확장되고 있다.

(좌)블로거들이 만든 <놈놈놈>의 윤태구(송강호 분) 동맹 사이트 (우)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동방신기 팬픽 소설
(좌)블로거들이 만든 <놈놈놈>의 윤태구(송강호 분) 동맹 사이트
(우)한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동방신기 팬픽 소설

■ 세대불문 유행하는 팬픽 걱정거리 되기도

<놈놈놈>이 불을 지핀 ‘팬픽’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던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소설 형태의 팬픽이 특히 10대 소녀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동방신기, god, 신화, SS501, 슈퍼주니어 등의 인기가수 팬클럽 사이트에는 가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소설이 올라있기도 하다.

팬픽을 볼 수 있는 온라인 경로는 다양하다. 해피엔딩(http://happynding.er.ro/), 로맨틱 홀리데이(http://www.dbholic.net/) 등이 대표적이다.

팬픽을 즐기는 사람들은 나이대를 불문한다. 30대 이상의 소녀시대 남성팬들이 회원인 소시당(http://dp.sosi.kr/)에서는 소녀시대 9명의 멤버를 등장인물로 한 팬픽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를 스타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06년 2월 팬픽공모전을 열어 동방신기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에 상을 줬다.

그러나, 스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팬픽이 위험수위를 넘어 걱정을 사기도 한다. 일부 10대들의 팬픽 중에는 남성멤버들이 동성간에 서로 사랑하는 설정을 담은 소설까지 유포되고 있다. 일부 팬픽 소설이 일본에서 건너온 ‘야오이(동성애)’장르로 불리는 단계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는 자신이 동경하는 ‘오빠’가 여성과 사귀는 것을 질투하는 심리때문에 ‘오빠’들끼리 사귀게 하는 설정으로 소설을 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크리에이티브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측면에서 재창조에 대한 욕구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인간 본성 때문에 지나친 변형과 왜곡을 하는 것은 정신과 마음을 황폐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곽 교수는 이어 “오프라인상의 대화는 줄어든 반면에 IT기술은 발전하다보니 UCC에 집착하고 팬픽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